*곤충 사진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이번엔 귀뚜라미 수컷의 우화 장면을 찍어보았습니다. 꽤 오래전부터 밥을 안 먹고 날개싹만 부풀어 올라 있는 녀석을 또 따로 분리를 했어요. 탈피할 때가 다 되어서 움직임도 둔하고 배도 예전의 반짝임을 잃은 상태입니다. 암컷과는 달리 꽁무니에 산란관이 없어요.
1월 3일에 격리해 두었는데 무려 5일이나 더 밥을 못 먹고 힘들어 하다가 8일이 되어서야 탈피를 시작했습니다. 탈피 직전에는 배에 숨이 들락날락하는 움직임이 커지는데 보고 있으면 안쓰러울 정도랍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특이했던 것이 망을 걸쳐놨는데도 사용을 못하더라구요. 지난 포스팅에 나와있듯 암컷은 제가 설치해 둔 망에 올라가서 제대로 잘 탈피했는데 얘는 탈피 직전이 되자 어쩔 줄 몰라하면서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항상 계란판 같은 종이 종류를 이용해서 탈피해 왔기 때문에 망에 매달려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던 걸까요.
어쨌든 상황이 급해 보여서 부랴부랴 종이 박스를 조금 뜯어와서 거꾸로 붙여주었습니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바로 탈피 자세를 잡았습니다.
드디어 힘든 우화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날개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터질 줄 알았는데 위쪽 날개싹이 끝나는 부분 바로 아래부터 터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귀뚜라미 몸 전체를 보면 거의 중간 부분에서 말이에요.
귀뚜라미는 원래 저기가 터지나 하면서 그냥 지켜보았습니다. 쥐미가 우화할 때 같은 긴장감이 없는 게 참 좋더라구요. 미안하지만 귀뚜라미는 수가 많아서 혹시 죽더라도 타격이 없거든요. 무엇보다 귀뚜라미가 탈피 실패하는 건 본 적이 없기도 하구요. 탈피 실패를 하고 부전이 일어났는데 동료들이 먹어치워서 제가 못 본 건지도 모르지만요.
초반에 좀 힘들어 보였지만 머리가 나온 이후부터는 쭉쭉 잘 빠져나왔습니다. 제가 조금 더 높게 붙여줬어야 했는데 항상 거리 계산에 실패하네요. 또 생각보다 크고 긴 몸이 나와서 결국 머리가 바닥에 닿으려 합니다.
이게 쥐미였다면 제가 종이를 살짝 위로 들어 올려줬을 텐데 그냥 둬 보았습니다. 역시 튼튼하고 강한 귀뚜라미여서인지 손으로 살포시 무게를 지탱합니다. 말랑한 몸으로 저렇게 있어도 탈피 부전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한참 후에 알아서 빙글 돌아섰습니다. 이제는 날개를 말릴 일만 남았어요.
예쁜 목도 생겼습니다. 남자인데 드레스를 입은 것 같아요. 이 시점에서 탈피 껍질은 동료들 먹으라고 던져줬습니다. 질겅질겅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맥주라도 한 방울 주고 싶었답니다.
몸이 말라가면서 목이 쏙 들어갔습니다.
색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날개도 모양이 잡힙니다. 암컷의 밋밋한 날개와는 달리 거친 굴곡이 잡힙니다. 교미에 성공하려면 바이올린을 켜듯 날개를 비비면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야 하거든요.
잠시 한숨 돌리고 다시 보니 귀뚜라미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탈출하면 찾기 힘들기 때문에 한숨이 절로 푹... 그런데 그 순간 더듬이가 보입니다. 사람 아기가 머리만 숨으면 다 숨은 줄 아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네요.
찾아서 꺼냈더니 시무룩한 표정을 짓습니다.
귀뚜라미는 정면이 못생겼는데 그나마 색이 연한 상태여서인지 평소보다는 덜 못생겨 보입니다. 귀여운 강아지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여기서 고개를 좀 더 들어서 입 구조가 보이면 그나마 남아있는 귀여움도 사라진답니다. 사진을 올리고 싶지만 여러분의 정신 건강을 위해 참겠습니다.
손으로 굴을 만들어주니 또 잽싸게 숨었어요. 확실히 이런 모습을 보면 인간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는 것 같아요. 가만히 앉아 있는 귀뚜라미의 더듬이를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건드려도 으악 무서워 하면서 도망가는 것보다는 이건 뭐지? 하면서 손가락을 타고 올라오는 애들이 많답니다.
날개 비교를 위해 이 녀석보다 하루 더 일찍 탈피한 수컷과 저번에 탈피한 암컷을 한 자리에 모아봤습니다. 딱 보면 암수 구분이 되시죠? 산란관과 날개 무늬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답니다.
수컷의 더듬이 한쪽이 왜 꺾였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탈피 도중 살짝 공격을 당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격리해두지 않은 상태에서 무사히 탈피한 것만도 다행입니다. 4마리만 있는 사육통에 있어서 안전한 편이긴 했지만 다리도 하나 안 뜯어 먹히고 멀쩡히 성충이 되었습니다.
아래의 영상에서는 위 사진의 녀석이 탈피 이틀 후에 울어보기 위해 노력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끼릭 끼드득하는 어설픈 소리가 너무 귀엽습니다. 귀뚜라미는 다 숨어서 거의 보이지 않아요.
아래 영상은 이틀 더 지나서 찍은 거예요. 소리가 아주 많이 나아졌습니다. 의외로 소리가 너무 예뻐서 새를 키우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랍니다.
찍는 게 의외로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우는 게 아니라 정말 잠깐씩만 울거든요. 우는 순간에 녹음하려고 다가가면 울음을 그치구요. 그래서 아예 한참을 폰을 들고 기다려서 찍었습니다.
제가 키우는 귀뚜라미는 쌍별귀뚜라미라는 외래종인데 한국 귀뚜라미에 비해 우는 소리가 높다고 해요. 그래서 몇 백 마리가 울어대면 지옥이라고 하네요. 다행히 저는 수컷을 두 마리만 성충을 만들었기 때문에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영상에서처럼 잠깐 울고 마는 게 아니라 계속 울게 되려나요? 그건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네요. 일단 현재로서는 소리가 아주 예쁘고 듣기 좋습니다.
듣기 싫어지면 날개를 자르는 해결책이 있답니다. 다른 수컷들은 오늘 전부 날개를 잘랐어요. 아직 성충이 되기 직전 단계라서 어차피 울지는 못하는데 미리 잘라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서른 마리 쯤 잘랐는데 생각만큼 힘들진 않았어요. 아무래도 성충이 되기 전에 자르는 게 더 쉬운 것 같네요. 귀뚜라미 건강에도 문제가 없다고 해요.
이런 저이지만 사실 한 한 달 전쯤만 해도 큰 귀뚜라미는 못 만졌었답니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27cm 길이의 긴 핀셋으로 겨우 잡아서 꺼내곤 했던 게 바로 엇그제 같아요. 수컷은 날개를 잘라야 조용히 키울 수 있다는 얘기에 만지지도 못하는데 날개를 어떻게 자르냐고 두려움에 떨었구요. 그랬는데 지금은 귀뚜라미 성충도 아무렇지 않게 잡고 심지어 볼 때마다 귀여움을 느끼다니, 사람 변하는 거 정말 순식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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