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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쥐미 사육 일기 20200222-0312 무정란 대사건

by 라소리Rassori 2020.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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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사마귀 사육자와 애호가들을 위한 것입니다. 디테일한 곤충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주세요.


2월 22일

쥐미가 저와 함께 인천 송도로 이사온지 이틀째 되는 날입니다. 사는 곳이 바뀐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느긋한 모습입니다.


위 사진에서는 쥐미의 입이 여러 개의 조직으로 구성된 것을 볼 수 있어요. 3층으로 친다면 중간에 2층이 이빨이에요. 이것도 종마다 색이 다른지 쥐미는 이빨 안쪽이 새빨간데 효미는 겉이랑 안 전부 새까맣더군요.

이빨 아래위로 있는 촉수 같은 건 palps 라고 하는데 이것들은 아주 작은 손의 느낌으로 입의 보조 역할을 해요. 물기를 쓸어주기도 하고 음식이 떨어지려는 걸 받쳐주기도 합니다. 한 쌍씩 있어서 발 그루밍 할 때 보면 총 6개의 조직이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지금 사는 집의 침실에는 커튼이 있는데 쥐미는 커튼을 느릿느릿 오르내리는 것을 좋아해요. 무정란으로 배가 부른 것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평소엔 이렇게 느려요. 위기 상황에만 좀 빨라집니다.

어디에 발을 잘못 디디기라도 할까봐 두 번씩 톡톡 치고 나서 발걸음을 옮기는 게 정말 웃긴답니다.^^



2월 24일

제 손 위에서 응가도 하고,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저를 쳐다보기도 하고,


발 그루밍도 합니다.


아래는 웬일로 조그만 쥐미의 머리에 초점이 너무 잘 맞아서 스스로 감탄해서 올리는 사진입니다.


제가 뭘로 사진을 찍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삼성 갤럭시 노트 10+로 찍고 있습니다.

작은 물체 접사 찍을 때 초점 맞추는 비결을 묻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냥 렌즈를 가까이했다가 멀리했다가 하다가 초점이 맞는 순간 파바박 찍습니다. 무식해 보이지만 수동 촬영 포함해서 수많은 방법을 시도해본 끝에 나름대로 터득한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포커스 맞추고 싶은 부분을 톡 쳐도 생각처럼 초점이 잘 맞지 않아요.

접사는 경험상 엘지폰 수동 촬영이 정말 잘 됐어요. 그에 비해 현재의 폰은 초점 맞추기가 쉽지 않네요. (쥐미 머리처럼 바닥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물체일 때의 얘기입니다.)



2월 25일

밥을 먹는 행복한 시간입니다. 이번에 먹고 있는 건 밀웜 번데기예요. 번데기도 시간이 좀 지나면 표면이 거칠어지는데 이건 번데기가 된 직후라서 아주 부드럽고 말랑했어요.



2월 27일

배가 위태로울만큼 커졌습니다. 너무 커서 저런 상태에서 쥐미가 어떻게 아직 살아있는지가 신기했어요. 

혹시 무정란이 원인이 아닌 건가, 예전에 먹인 파리가 뭔가 잘못된 건가, 혹시 파리도 사마귀에게 기생충을 옮길 수 있나, 안에서 기생충이 자라고 있는 건가, 등등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습니다. 날개까지 위로 들려서 너무 불쌍했어요. 실 같은 다리도 몸을 지탱하기 힘들어 보였구요.


2월 28일

몸이 너무 무거워져서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커튼에서 잘 놀았습니다.

(깍꿍♡)

제 손 위에서도 잘 놀았고요. 무거운 배를 얹고 쉴 수 있어서 편안해 보였어요.

쥐미는 곤충이라 피부에 이렇게 닿으면 차가운 체온이 느껴져요. 등에 뽀뽀해줄 때도 마치 죽은 동물 같은 찬 온도가 입술에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저처럼 살아 숨 쉬고 있는 존재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예전에 탈피했던 루바망 위에서 쉬는 모습이에요.


제 눈엔 너무나 귀여운 모습입니다.^^


아래는 쥐미의 낫 그루밍 영상입니다. 저번 쥐미 일기에서 제 손가락 피부를 잘라먹은 속이 새빨간 이빨들이 보입니다. 용케도 자기 손은 자르지 않습니다.😂


2월 29일

얼굴은 여전히 이렇게 예쁜데... 배 때문에 앞으로 쥐미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3월 2일

그래도 밥은 안 먹일 수가 없죠. 무정란이라도 알이 쑥쑥 커가고 있는데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3월 4일

힘들어 보여서 배를 살짝 들어주었어요. 곤충의 배는 정말 약해서 원래는 배를 건들면 난리가 나야 하는데 태연하게 발 그루밍을 하고 있습니다. 

성충이 된 이후 저를 예전보다 훨씬 편하게 생각해주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건 좀 신기했어요.


3월 11일

시간을 훌쩍 건너뛰었습니다. 그 사이 사진을 안 찍었던 건 아닌데 그냥 항상 보여드리던 발 그루밍 사진들밖에 없더라고요.

이날따라 쥐미는 굉장히 불안한 모습으로 커튼 꼭대기 쪽을 좌우로 오갔어요. 알을 낳을 적당한 스팟을 찾는 것 같았어요.


쥐미가 저 주변을 선택한 것 같았지만 그냥 둘 수는 없었어요. 떨어지면 큰일나는 높이거든요. 날개가 있지만 의자 같은 데서 실수로 떨어질 때 보면 자기한테 날개가 있다는 걸 항상 까먹더라고요.

그래서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쥐미를 데리고 내려왔습니다. 알을 낳더라도 안전하게 사육통 안에서 낳아주길 바랐어요.



3월 12일

왠지 알을 낳을 것 같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쥐미의 배는 그대로였고 사육통 어디에도 알은 없었어요.

그러나 이날도 금방이라도 알을 낳을 것 같은 행동은 계속되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하고 뭔가를 쌀 것처럼 꼬리 끝을 뾰족하게 벽 쪽으로 세웠어요.

아무래도 불안해서 저번에 이베이에서 샀던 곤충망 안에 넣어줬습니다. 나오고 싶으면 나오라는 뜻에서 입구는 열어둔 상태였어요. 제가 쥐미를 바로바로 볼 수 있게 제가 컴퓨터를 하고 있는 바로 옆에 두었고요.

역시나 쥐미는 곤충망 안에서도 계속 불안하게 좌우로 오가면서 적당한 스팟을 찾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그러다 결국... 오후 5시 반쯤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설마설마했는데 막상 시작되니 그냥 "헐..."이란 느낌이었어요.

자연은 미쳤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컷을 만나지도 않은 쥐미가 이런 일을 겪는 건 좀 부당하게 느껴졌어요. 몇 마리 더 키워보면 "얘들은 원래 이래"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지 몰라도 처음이다 보니 무슨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더군요.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속상한 것도 아니고... 뭔진 모르겠지만 이 모든 상황이 약간 코미디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비꼬아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말이에요.


좀 지켜보다가 쥐미는 자기 할일을 하도록 두고 저는 제 할일을 했어요. 지켜보고 있기엔 너무 오래 계속되었거든요. 저렇게 오래 하다간 쥐미가 죽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쥐미가 산란을 다 마친 뒤에 시계를 보니 무려 다섯 시간이나 흘렀더군요. 다섯시간이나 위의 자세로 힘들게 알을 낳은 거예요. 그나마 남아있던 수명을 모조리 짜낸 느낌이었어요. 


다 마친 뒤엔 조심스레 손 위로 오도록 해서 밖으로 꺼냈습니다. 애가 고생을 해서 시커메졌어요. 배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쥐미의 엉덩이에 허연 물질이 묻어 있었는데 위 사진을 찍기 직전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서 씻어주었어요. 알을 보호하기 위해 나오는 물질인데 알을 둘러싼 뒤엔 단단하게 굳는 성질을 갖고 있어요.

예전에 유튜브에서 알 낳은 뒤에 이 물질에 의해 항문이 막힌 사마귀를 본 적이 있거든요. 혹시 쥐미도 그렇게 될까봐 열심히 물로 닦아줬어요. 힘을 다 쓴 이후여서인지 가만히 있더군요. 


그 허연 물질이 굳기 전에 빨리 물을 뿌렸다고 생각했는데 알을 낳는 동안 묻은 부분은 이미 굳어서 아래 사진처럼 쥐미의 엉덩이 부분이 본이 떠졌어요. 너무 딱 달라붙어 있어서 떼어내다가 쥐미가 다칠까봐 조금 긴장했답니다. 다치는 거 없이 깨끗이 떨어져서 다행이었어요. (유튜브 덕을 정말 많이 보네요. 뭘 사육하든 그에 관련된 자료를 미리 열심히 봐두는 건 늘 중요한 것 같아요.)


작고 약한 곤충인데 너무 진을 많이 뺐어요. 아무래도 뭘 먹여야 할 것 같아서 작은 귀뚜라미를 줬습니다. 사람이 너무 아프고 힘들면 음식을 못 먹듯 쥐미도 잘 못 먹을 것 같았는데 처음에 좀 거부하는 듯하다가 천천히 먹기 시작했습니다. 
 


먹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립니다. 맛있는 뒷다리도 떨어트렸구요. (나중에 주워서 먹였습니다.)


왕사마귀의 알 ㅎㅎ 쥐미가 이런 걸 낳았다니, 뭔가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어요. 배가 비워져서 속이 좀 시원하기도 했고요.


이런 걸 앞으로 몇 개를 더 낳을지 모르겠지만 쥐미의 삶이 앞으로 얼마 안 남은 건 확실하네요. 배가 또다시 커지고 있긴 한데 요즘은 힘이 많이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막 심각해하고 있진 않아요. 그냥 "아 저것이 충생이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답니다. 앞으로 절지동물을 키우면서 죽고 새로 또 오고 하는 건 계속해서 반복되겠죠. 쥐미가 작년 10월에 태어났는데 이미 꽤 오래 살아서 나름 만족하고 있어요. 그저 알 낳으면서 너무 힘들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이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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