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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쓰기 프로젝트/그림일기18

2020년 8월 8일 그림일기 - 면도 나는 눈썹이 진하다. 머리숱도 많고, 팔다리에도 적지 않은 털이 나 있다. 나이가 들면서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보통 이상은 된다. 그냥 두면 보기에 좀 그래서 샤워할 때면 면도를 열심히 하는 편이다. 안 미는 게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그대로 두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털이 올라오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남의 털은 상관없는데 내 털은 보기가 싫다. 털 중에서도 겨드랑이 털은 정말 미워 보인다. 그다음으로 참을 수 없는 것은 팔에 난 털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20대까지의 내 팔 털은 정말 굉장했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는 선뜻 밀기가 두려웠다. 괜히 밀었다가 굵고 까만 털들이 가득히 올라온다면 정말 골치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늘 신경이 쓰이는데도 손을 대지 못하니 여름만 되면 자꾸 팔을 의식.. 2020. 8. 8.
2020년 6월 18일 그림일기 - 외모지상주의의 몰락과 영원성 시간이 빠르게 흐르면서 세상에 급격한 변화들이 일어나는 중에 문득문득 유난히 피부에 와닿는 변화들이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것도 그렇지만 종종 그보다 더 놀랍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 수준의 변화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외모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직 완벽한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한 변화가 진행 중인 것은 분명하다. 외모지상주의라는 표현이 꽤 오래전부터 잘 안 쓰이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웹툰 제외) 더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80-90년대만해도 외적인 단점을 가지고 사람을 비하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못생긴 사람은 종종 "폭탄"으로 분류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폭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쏟곤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 2020. 6. 18.
2020년 5월 22일 그림일기 - 미치도록 소변이 급한 꿈 나는 꿈을 좀 지나칠 정도로 생생하게 꾸는 편이다. 스토리도 길고 세세할 때가 많다. 주로 스트레스가 심할 때 꿈을 잘 꾸는데, 무슨 이유인지 그럴 때면 꿈이 영화처럼 박진감 넘치고 등장인물도 많고 내용도 길어진다.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은 기간엔 꿈을 훨씬 덜 꾼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남들보다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고, 몇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꾸는 꿈들도 있다. 정기적으로 꾸는 꿈은 주로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추락 위기에 처하는 꿈(평소에 비행기 타는 걸 무척 싫어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여동생이랑 싸우는 꿈(분에 못 이겨 울면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소변이 급해서 필사적으로 소변을 보려 하는 꿈이다. 다른 꿈들은 그냥 정신적인 타격만 받는 걸로 끝인데 이 "소변꿈"은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2020. 5. 22.
2020년 5월 10일 그림일기 - 안경 내가 안경을 처음 쓴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눈이 나쁘지도 않았는데 안경이 너무너무 쓰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랐다. 부모님은 필요 없는 걸 왜 사냐며 사주지 않으셨다. 하지만 난 좌절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울기만 하면 마음 약한 아빠는 뭐든 다 사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었다. 내 인생 첫 안경이 생겼다. 까맣고 동그란 안경테였다. 안경알엔 물론 도수가 없었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나고 나는 정말로 안경이 필요하게 되었다. 눈이 나빠져서 고등학교 때는 안경을 쓰지 않으면 칠판이 안 보였고, 대학생 때부터는 길거리에 아는 사람이 가까이서 지나가도 못 알아보게 되었다. 보고도 모른 척한다는 오해를 수없이 받았다. 안경이 잘 어울려서 안경을 쓴 게 훨씬 나은 사람이 있는 반면 나처럼 안경을 쓰면 훨.. 2020. 5. 10.
2020년 4월 24일 그림일기 - 미용실 3월 말의 일인데 늦장 부리다가 이제야 적는다. 이날은 미용실을 갔다. 오랜만이기도 하면서, 송도로 이사 온 뒤 처음 가는 미용실이기도 했다. 나는 머리가 어깨 밑으로 한 뼘 정도의 길이인데, 미국에서 (한인) 미용실을 가면 300불이 쉽게 넘어갔다. 팁까지 해서 500불 가까이 했을 때도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땐 미국보다 미용실이 확실히 더 쌀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대전에서 처음 갔던 미용실에서 30만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실력 좋은 샵 부원장님이 세심하게 머리칼을 다루는 방식은 마음에 들었지만, 미국과 큰 가격차가 없다는 것에는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용실 값이 비싼 미국에선 오래 전부터 아래의 짤이 유머로 돌아다닌다. 이제 한국도 이런 짤이 생겨야 하는 게 아닌가 .. 2020. 4. 24.
2020년 3월 31일 그림일기 - T팬티 오늘 일기는 지난달 이사했던 당일의 이야기이다. 그날 나는 긴장해서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있었고, 이사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되었다. 포장이사였기 때문에 짐을 대충만 정리해두어서 집 여기저기에 물건이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물론 속옷 등 이삿짐센터 분들에게 보이기 뭣한 물건들은 미리 박스에 정리해서 잘 넣어두었다. 바로바로 플라스틱 박스에 싣기만 하면 되도록 대충의 준비를 해두었다. 외투와 니트처럼 부피가 큰 옷들은 전부 모아서 산처럼 높이 쌓아두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사가 시작되었다. 짐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발 디딜 곳 없던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산처럼 쌓아둔 옷이 모두 박스로 옮겨졌을 때 쯤이었다. 별로 눈에 익숙하지 않은 작은 천 쪼가리 하나가 바닥에 뒹구는 것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2020. 3. 31.
2020년 3월 29일 그림일기 - 중독 저번 그림일기를 올렸던 그다음 날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의 그림 일기는 앞으로는 서로 의무적인 답방을 줄이고 의미 없는 댓글은 달지 말자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함께 의견을 나누어보자는 내 말에 많은 분들이 좋은 얘기를 나누어 주셨다. 그런데 그 글에 대한 대댓글을 달다가 몸이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엄청난 두통이 밀려오고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침대에 드러누워서 끙끙 앓았다. 증세가 왠지 심상찮은 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죽을병인가, 코로나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도 전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온몸이 뭉개진 밥풀처럼 바짝바짝 뒤틀리며 말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을 텐데 열은 없고, 속이 메슥거렸지만 .. 2020. 3. 29.
2020년 3월 20일 그림 일기 - 블로그 답방 문화에 대한 고찰 오늘 일기는 예전에 인터넷을 하다가 우연히 접한 "특정 단어"에 대한 것이다. 어쩌다 들어간 블로그에서 보게 된 건데 이상하게도 그 블로그에서 봤던 내용은 머리에 없고 그 단어만이 강하게 남아 있다. 때때로 그게 생각이 나면서 괜히 웃음이 터진다. 여기 적을 수는 없는 단어라서 그림에 적어 넣었다. 참고로 난 욕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다. 듣는 것도 싫고 하는 것도 싫다. 남자를 이성으로 만나는 건 이제 안 하지만, 만약 만난다면 첫째로 흡연자가 아니어야 하고, 둘째로 욕을 하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그만큼 욕을 싫어한다. 영화도 욕이 많이 나올 것 같으면 일부러 피해 간다. 그런 내가 이런 욕을 보고 웃음이 터진다는 거다. 그냥 "엄청 고생했다"고 하면 될 텐데 글마다 뭐시기 뺑이를 쳤다고 하니 너무.. 2020. 3. 20.
2020년 2월 22일 그림 일기 오늘은 몇 년 전 나의 한국 생활 초기에 있었던 극히 소소한 일이 떠올라서 펜을 들어보았다. (그 이전 얘기가 필요한데 너무 길어서 스킵. 대충 말하자면 내가 20년 가까이 미국 살다가 몇 년 전부터 한국서 살고 있다는 스토리) 즐겁고 신기한 한국 생활을 하던 어느날이었다. 갑자기 비빔면이 먹고 싶어지면서 동시에 오이가 떠올랐다. 채 썬 오이를 가득 얹은 빨간 비빔면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다행히 팔도 비빔면은 집에 있었다. 그러나 오이가 있어야 하는데 냉장고에는 화장품과 우유밖에 없었다. (난 화장을 잘 안 하는데 가족들이 자꾸만 사준다.) 결국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정확히 어딜 향해 가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오이를 사려면 가까운 홈플러스로 가면 되었을 텐데 이때는 한창 여기저기 두리번.. 2020. 2. 22.
2020년 2월 15일 그림 일기 며칠 잠잠하다가 또 누군가가 특이한 검색어로 내 블로그를 찾아오게 되었다. 이번 검색어는 띄어쓰기까지 그대로 옮기자면, "고양이 밥먹고 한쪽발 긁어내는 이유"였다. 내 왕사마귀 쥐미가 고양이처럼 그루밍한다는 말을 내가 어딘가에 적어두었기 때문인 듯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참 신기한 검색어의 세계가 아닌가 싶었다. 나에게는 사실 한때 고양이 전문가 수준의 집사질을 했던 시절이 있다. 그 한때라는 게 무려 17년이다. 고양이들과 영원한 이별을 하기까지 꽤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런 나임에도 저 검색어가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양이가 바닥을 긁는 것도 아니고 "한쪽 발"을 긁다니, 아니 "긁어내다"니? 무슨 말인지 궁금해졌다.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이번에도 역시 일단 한 번 머리에 꽂힌 이상 그.. 2020. 2. 15.
2020년 2월 10일 그림 일기 블로그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무슨 검색어를 통해 내 블로그로 오는지를 매일 보게 된다. 블로거들은 알겠지만 그게 참 신기하고 재밌을 때가 많다. 난 그냥 안동 여행을 다녀왔을 뿐인데 "오늘 안동 날씨"라는 검색어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내 블로그로 오기도 하고(이거 좀 잦아서 죄송한 마음), "쥐가 나는 이유" 같은 내 블로그의 그 어떤 글과도 관련이 없는 검색어로 들어오기도 한다. (쥐미의 쥐 때문인가...) 그러던 어느 날 정말 희한한 검색어가 내 눈을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바로 "들개쥐미." 들개쥐미라니 대체 무슨 말일까? 내가 키우는 왕사마귀 이름이 쥐미이긴 한데 그렇다고 쥐미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검색을 해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신기한 단어였다. 보통은 특이한 검색어를 봐도 그냥 .. 2020. 2. 10.
2020년 2월 8일 그림 일기 *귀뚜라미 영상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절지동물 사육 4개월 차. 이제 귀뚜라미 사육 요령이 꽤 많이 늘어서 아침마다 간단하게 귀뚜라미 사육통 청소를 해주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면 된다고 하는데, 나는 동글동글한 귀뚜라미 똥이 모래처럼 쌓이는 걸 그냥 보고 있기가 힘들어서 그냥 속 시원히 청소해버린다. 귀뚜라미 사육의 기본은 계란판에서 시작된다. 계란판을 여러개 지그재그로 겹쳐두어 숨을 곳을 많이 만들어주면 동족상잔의 대명사인 귀뚜라미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일이 줄어든다. 신문지나 골판지 같은 걸로 대체할 수도 있지만 움푹움푹 파인 계란판이 무엇보다 최고다. 먹이로는 기본적으로 충분한 채소와 밀기울을 주고, 육식을 좋아해서 귀뚜라미 사료나 토막낸 밀웜도 챙겨줘야 한다. 그렇게 해준다고 문제가 완.. 2020. 2. 8.
2020년 2월 5일 그림 일기 귀여운 절지동물들을 키우면서 겪게 되는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댕댕이나 냥아치들과는 달리 절지동물은 품에 꼭 끌어안을 수 없다는 거다. 타란툴라나 지네를 끌어 안았다가는 아마 물려서 손이 붓거나 타란툴라의 경우엔 배가 터지거나 할 것이다. 그나마 왕사마귀인 쥐미가 성충이 된 뒤엔 쥐미의 등을 손가락을 살살 쓰다듬거나 뽀뽀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하는 행동은 바로 노래. 너무 귀여워서 터질 듯이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꼭 쥔 주먹에 가두고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노래를 하는 거다. (아기나 동물 가족 키우는 사람들은 다 한번쯤 해봤을 그런 말도 안 되는 노래) 이럴때면 쥐미는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는데, 사마귀의 이 행동은 긴장하거나 적을 경계할 .. 2020. 2. 5.
2020년 2월 3일 그림 일기 사람의 손에 들어간 고구마의 운명. 이런저런 따분한 과정을 거친 뒤, 거의 모두가 똥이 된다. 고구마에겐 결국 누구의 똥이 되느냐가 가장 중요한 건지도 모른다. "와, 난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의 똥이 되었어," 라든가, "난 슬퍼. 나쁜 사기꾼의 똥이 되었거든," 하는 식으로. 그런데 딱히 그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똥은 다 그냥 똥이다. 똥의 세상은 공평하다. 전부 똑같이 그냥 냄새나고 더러운 똥이다. 어떤 색이든, 어떤 모양이든, 그 어떤 똥이든 간에 공평하게 "똥"으로 취급받는다. (원래 가사는 파란우산 깜장우산 찢어진 우산인가? 아무튼...) 다음은 오늘의 완전 생초보 중국어. 똥懂. 발음은 똥인데 정말 똥을 뜻하는 단어는 아니다. 이 글자의 의미는 "알다, 이해하다"이다. 자꾸 똥.. 2020. 2. 3.
2020년 2월 2일 그림 일기 어린이들은 보통 그렇겠지만, 나 또한 어렸을 때는 당연한 듯 내 몸을 씻는 것을 어른들에게 맡겼었다. 그러다 초등 5학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혼자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라기보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 혼자서도 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 깨달음을 얻고 혼자 샤워하는 방법을 터득한 뒤부터는 주로 집에 아무도 없을 때를 노려서 샤워를 했다. 그것이 마음이 편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갈아입을 깨끗한 옷을 욕실 문 앞 바닥에다 꾸며두기 위해서였다. 콧노래를 부르며 우선 상의를 발랄한 포즈로 펼쳐두고, 그 밑에 하의를 끼워 맞춰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봐가며 포즈를 만들었다. 양말은 발을 표현해야 했기에 빠질 수가 없었다. (속옷은 욕실 앞에 있던 금고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2020.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