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핀헤드 폐사 이후, 저희 귀염둥이 왕사마귀 약충이 먹을 것은 극소 밀웜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이틀 전인 목요일 오후의 일이었네요. 그날 하필 아침부터 많이 바빠서 몸이 많이 피곤했지만 힘든 김에 한 번에 힘들자는 생각으로 바로 정글펫으로 직접 사러 가려고 했습니다. 우리 왕사마귀가 좋아하는 음식을 빨리 구해다 주려면 직접 매장에서 구매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죠. 그러나 혹시 몰라서 전화를 해보니 핀헤드는 팔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얼른 벌러지에도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왕사마귀 보내주실 때 서비스로 핀헤드를 보내주셨기 때문에 100-200마리 정도 소량 구매도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다른 물건도 한 3만 원어치 사면서 같이 사려고 시도해봤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아쉽게도 천 마리 대량 구매 밖에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핀헤드가 항상 매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있을 때만 그렇게 서비스로 보내주시는 거고, 핀헤드는 매장이 아닌 어느 농장에서 보내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대충 이해는 했고 전화받으신 분도 잘못 말하신 건 없었습니다. 다만 뭔가 느낌이 쌀쌀했달까요. 유튜브 방송하시는 목소리 좋은 사장님은 항상 친절하시던데 다른 분이 전화를 받으셔서 아쉬웠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벌러지에서의 쇼핑은 접고, 이번엔 트위터에서 한 고마운 분이 알려주신 "먹이창고"에 문의를 해보았습니다. 이곳은 소량의 귀뚜라미만 구입하기 죄송해서 나중에 좀 많이 살 때 사려고 했는데 급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먹이창고는 네이버 카페, 카카오톡 채널 (플러스 친구), 네이버 밴드가 있습니다. 저는 카카오톡이 편해서 카카오톡에서 먹이창고라고 검색을 하고, 채널 추가를 하고, 카카오 아이디 추가를 한 뒤에 문의를 드렸습니다. 바쁘실 텐데 답변도 친절하고 자세하게 해 주시고 몇백 마리 소량 주문도 흔쾌히 받아주셨습니다.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받아서 마음이 놓였고, 귀뚜라미가 핀헤드부터 시작해서 2센티 이상 귀뚜라미까지 크기가 총 다섯 단계로 나뉘어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저는 핀헤드(2-3mm), 극소(4-7mm), 소(8-12mm), 이렇게 앞쪽에 세 사이즈를 구입했습니다.
다 너무 좋았는데 심지어 배송까지 최고였습니다. 목요일 오후 늦게 주문했는데 토요일 아침 9시 반(한진택배)에 받았습니다. 택배를 많이 받는 편인데 이 정도 이른 시간에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신기했습니다. 살아있는 귀뚜라미인 것이 확 표시 나는 박스이기 때문에 경비 아저씨나 청소하시는 분들이 보기 전에 택배 기사님 문자 받자마자 잽싸게 들고 왔습니다. (들켜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안 들키고 싶어서요.)
예쁜 분홍색 테이프를 뜯어내고 뚜껑을 열자마자 바로 귀뚜라미가 보였습니다. 제가 주문한 사이즈보다 한두단계 더 큰 귀뚜라미들이 섞여 있어서 비명이 나올 정도로 식겁했습니다. 2cm 거뜬히 넘어가는 것들도 보였는데 사진에서는 숨었네요.
정말 놀라운 것은 냄새가 하나도 안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코를 가까이 대고 맡아봐도 그 특유의 꼬질꼬질한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역시 키우는 방식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모양입니다. 환기가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열어보니 한쪽 벽에는 핫팩이 붙어 있었고, 다른쪽 벽에는 귀뚜라미와 함께 구입한 귀뚜라미 먹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핫팩은 떼어낸 후의 사진입니다.) 계란판은 3층이었고, 그 사이에 핀헤드가 든 봉지가 안전하게 끼워져 있었습니다.
박스 양쪽에 이렇게 동그란 창문들이 만들어져 있어서 사장님의 세심함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신경 써주신 덕분에 귀뚜라미 대부분이 팔팔하게 살아있었고, 죽은 것은 핫팩이 덜렁거리면서 벽에 있는 놈을 치는 바람에 터져 죽은 개체 한 마리 있는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핀헤드 포장을 꺼냈습니다. 핀헤드는 정말 갓 태어난 크기입니다. 그다음 큰 사이즈가 섞여있는데 유용하게 쓸 것 같습니다.
핀헤드 포장에서 극소형을 하나 골라서 저희 왕사마귀에게 우선 건네주었습니다. 어제저녁에 극소 밀웜 먹은 이후 12시간이 넘게 지났는데 배가 고팠는지 아주 잘 먹었습니다. 이 아이가 살면서 먹은 귀뚜라미 중 오늘 것이 가장 컸습니다.
핀헤드 포장은 적당히 높이가 있는 플라스틱 통에 들이붓고, 일단 호박을 주었습니다. 워낙 작다 보니 마치 개미떼가 모여든 것 같습니다. 이제 계란판을 차곡차곡 놔두면 되는데 아무래도 통이 좁아 보였습니다.
결국 어디서 주워들은 것을 떠올려서 박스 안쪽에 테이프를 두르고 아예 큰 집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아침부터 밥도 못 먹고 생고생을 했네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절지동물을 키우는 것에 이런 험한 일들이 포함되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역시 세상엔 쉬운 게 없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맨 위에 살짝 더 큰 녀석은 손에 얹어 봤더니 제 손가락을 꽉꽉 깨물었습니다. 아프거나 살이 뜯기는 정도는 물론 아니었지만 무는 힘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왕사마귀에게 잘못 줬다가는 왕사마귀 다리 하나 끊어지는 건 일도 아니겠더군요. 핀셋으로 머리를 살짝 누르거나 턱을 자른 뒤 줘야 할 듯합니다. 그러다 아예 안 움직이면 왕사마귀가 먹이로 인식을 못해서 안 먹겠지만요.
아래 사진에 큰 녀석들에겐 호박, 당근, 그리고 자른 밀웜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10분 후쯤에 다시 보니 밀웜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 후 한참 지나서 다시 보니 한 녀석이 밀웜 조각을 물고 이리저리 다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래 사진 왼쪽 밑에서 두 번째 녀석이 물고 있는 노란 게 밀웜 조각입니다.
귀뚜라미 사료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이 봉투 안에 들어있습니다. 구충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적혀서 바로 사장님께 알아보았는데 이걸 먹는 귀뚜라미를 먹는 절지동물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장기적으로도 괜찮은 건지, 정확히 어떤 구충제인지 신경이 쓰이긴 합니다. 성분표가 없는 점이 살짝 아쉽습니다.
이것과 관련한 글이 있나 해서 먹이창고 카카오 채널을 다 뒤져보고, 네이버 밴드도 앱까지 깔고 들어가서 보았습니다. 그래도 쉽게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있다가 우연히 먹이창고님 카카오스토리로 흘러들어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 정보가 있었습니다. 귀뚜라미 먹이에는 항생제와 유해 성분 및 농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고, 방부제도 일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료회사 관계자분이 제공한 사료검정증명서가 올라와 있으니 각자 확인해보시면 될 듯합니다.
귀뚜라미 사료나 밀기울, 엿기름 등을 너무 많이 부으면 상할 수 있다고 해서 살짝만 뿌려 보았습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가루가 귀뚜라미 사료입니다.
저번에 환기 실패로 귀뚜라미를 폐사시켰기 때문에 이제는 망으로만 닫아두고 키우고 있습니다. 핀헤드는 놀라운 점프력으로 그 높은 박스를 뛰어넘고 나오는 녀석이 있어서 뚜껑을 살짝 얹어두었습니다. 2센티 넘는 거대한 애들은 제가 아직 다루기가 좀 두려우니 서로 좀 잡아먹었으면 좋겠고, 나머지는 관리가 잘 되었으면 합니다. 먹이창고 같은 좋은 업체가 있어서 저의 왕사마귀가 굶지 않고 즐거운 토요일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가게는 꼭 더 많이 번창하고 오래오래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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