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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좀사마귀들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by 라소리Rassori 2019.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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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들에서 얘기했다시피 올 10월에 두 마리의 좀사마귀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작별했습니다. 둘 다 죽을 때가 다 되어서 만나는 바람에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작고 약한 녀석들이었지만 제 인생 첫 사마귀들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2019년 10월 18일부터 25일까지 저와 함께 지냈던 암컷 좀사마귀는 원래 살고 있던 곳까지 다시 가서 고이 보내주었습니다. 집에서 처리하려니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아서 귀찮은 것을 무릅쓰고 유등천 강변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좀사마귀들 덕분에 얼결에 10월은 충분한 걷기 운동을 할 수 있었네요. 운동을 너무 안 해서 걱정인데 앞으로도 절지동물을 핑계로 열심히 돌아다녀야겠습니다. 일단은 봄이 와야겠지만요.


풀과 나뭇가지에 섞이니 너무 색깔이 똑같아서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왠지 좀 불안한 위치인 것 같아서 좀 더 안쪽으로 넣어줬습니다. 머리가 아래를 향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큰 배가 더 커 보입니다. 알을 배고 있는 것 같았는데 결국 낳지 못하고 갔습니다. 밥 먹을 힘도 없는 상태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일주일간 극소량의 우유와 밀웜즙만 겨우겨우 먹다가 결국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었습니다. 

한 달이 더 지난 일이니 지금쯤이면 완전히 자연과 하나가 되었겠죠?

다음은 10월 21일부터 28일까지 함께했던 수컷 좀사마귀를 보내주었습니다. 27일부터 거의 움직이지 못해서 하루 동안 이렇게 휴지 이불을 덮어두었습니다. 작디작은 얼굴이 애처롭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 뒤 가까운 공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이 녀석 역시 유등천 출신이지만 또 거기까지 가려니 힘들고, 집에서 처리하기엔 미안하더군요. 그래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가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은 뒤 조심스레 내려두었습니다.

이 녀석도 자연 속에 눕혀두니 색깔이 너무 나뭇잎 같아서 구분이 힘듭니다. 꼬리 부분이 내내 저렇게 왼쪽으로 꺾여있었는데 역시 긴 교미를 마친 후에 힘없이 돌아다니는 걸 제가 잡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밀웜도 잘 받아먹고 하길래 잘 버틸 줄 알았더니 암컷과 마찬가지로 딱 일주일 살다가 갔습니다. 암컷은 아주 서서히 죽은 반면 수컷은 갑자기 죽었습니다. 둘 다 유등천에서 데리고 왔으니 서로 최소한 친척 사이쯤 되려나요. 말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혹시라도 부부였다면 이 녀석도 유등천에 보내줬어야 하는데 부디 부부가 아니었길 바랍니다.

그냥 저렇게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예쁜 낙엽을 골라서 덮어주었습니다. 


이만 집으로 가려고 하니 왠지 바람에 다 날려가버릴 것 같아서 불안합니다.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던 돌을 살짝 얹어 두고 솔방울로 장식도 했습니다.


이제 안심입니다. 이후로는 개미가 먹든 미생물이 먹든 자연에 맡기는 것입니다. 지금에서야 오른쪽 아래에 담배 필터가 보이네요. 금연 구역으로 알고 있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문득 곤충은 죽은 뒤 이렇게 해도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포유류였다면 이렇게 쉽지는 않았겠죠. 절지류를 키우면서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포유류가 죽었을 때와의 온도 차이입니다. 물론 절지동물이 죽어도 슬프긴 하지만 절지동물은 인간과 교감을 하는 동물은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예외가 있을 수는 있어도 인간과 많은 감정을 나누는 개나 고양이가 죽을 때와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절지동물이 죽으면 어떻게 처리하냐는 얘기가 오가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변기행"이란 말이 대수롭지 않게 나오더군요. 털 달린 동물들이 죽으면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려야 한다는데 만약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 정말 그렇게 버린다면 엄청난 욕을 먹을 것입니다. 그러나 절지동물의 세계에서는 변기행이란 말까지도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 게시물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에 대해 옳다 그르다 싸운다면 그것이야 말로 웃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직 초보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그냥 각자의 방법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우던 절지류를 잃어버렸을 때도 마찬가지 분위기였습니다. "아, 지네 유체 탈출해서 사라졌어," 라는 말이 가벼운 무게로 오가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소중한 지네나 타란툴라를 잃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속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키우던 개나 고양이를 잃어버리는 것과는 사건의 무게부터가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한 소리죠? 그냥 절지류 입문하면서 그 차이가 재미있어서 제가 느낀 것을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들은 절지류 사육의 큰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나 고양이는 저도 키워본 적이 있어서 알지만 나중에 죽는 걸 그냥 상상만 해도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그게 참 괴롭고 힘든 점인데 절지류는 잃을 경우 마음이 아프고 속은 쓰릴지언정 그 정도 고통은 따르지 않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저도 아직 몇 년씩 공을 들여 키운 절지동물을 보내본 적이 없어서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몇 달씩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일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키우면서 마음이 많이 가볍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큰 장점으로는 사마귀는 몰라도 타란툴라나 지네 성체의 경우엔 몇 주씩 여행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멋모르고 유체들만 들여서 신경이 많이 쓰이는 중이지만요.) 타란툴라 성체는 한 달에 한 번씩 배불리 먹이는 사육자들도 많던데 그렇다면 한 달도 여행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털 달린 동물을 키운다면 그냥 그렇게 집에 두고 가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죠. 밥도 자주 줄 필요없고, 목욕시킬 필요도 없고, 여러모로 홀가분한 절지류 사육입니다. 단점이라면 너무 예뻐도 쓰다듬을 수 없다는 정도이려나요? 알고 보면 매력이 넘치고 귀여운 부분도 많으니 많은 분들이 키워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참고로 지네는 외래종의 경우 한국의 기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의외로 까다롭고 잘 죽습니다. 그러니 분실한 사람들을 욕하는 것은 지네 외래종이 한국 야생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이 발견이 되면 그때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타란툴라 역시 한국의 추운 겨울을 날 수가 없고, 조금만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배가 터져 죽는 등, 보기보다 약한 생물입니다. 한국 야생에 퍼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외래종 지네나 타란툴라들이 황소개구리처럼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정말 기적같은 일일 것입니다.

좀사마귀들 죽은 얘기부터 시작해서 많은 얘기를 하게 되었네요. 유튜브에서도 그리 자주는 아니어도 계속해서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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