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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쓰기 프로젝트/그림일기

2020년 5월 22일 그림일기 - 미치도록 소변이 급한 꿈

by 라소리Rassori 2020.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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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좀 지나칠 정도로 생생하게 꾸는 편이다. 스토리도 길고 세세할 때가 많다. 주로 스트레스가 심할 때 꿈을 잘 꾸는데, 무슨 이유인지 그럴 때면 꿈이 영화처럼 박진감 넘치고 등장인물도 많고 내용도 길어진다.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은 기간엔 꿈을 훨씬 덜 꾼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남들보다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고, 몇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꾸는 꿈들도 있다.

정기적으로 꾸는 꿈은 주로 비행기가 추락하거나 추락 위기에 처하는 꿈(평소에 비행기 타는 걸 무척 싫어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여동생이랑 싸우는 꿈(분에 못 이겨 울면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소변이 급해서 필사적으로 소변을 보려 하는 꿈이다.

다른 꿈들은 그냥 정신적인 타격만 받는 걸로 끝인데 이 "소변꿈"은 정신적인 것이 아니다. 실제로 방광이 폭발 직전인 대위기 상황인 것이다.

이럴 때 꿈속에서의 나는 거의 항상 학교에 있다. 고등학교일 때도 있고, 대학교일 때도 있고, 내가 다녀보지도 않은 그냥 다른 어떤 학교 건물일 때도 있다.

나는 미친듯이 화장실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나에게 익숙한 건물이든 아니든 항상 화장실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방광벽은 점점 더 얇아지고 나는 거의 이성을 잃어간다.

그때쯤 화장실이 눈에 보인다.

허겁지겁 뛰어들어가면 항상 화장실은 끔찍할 정도로 더러운 상태이다. 그런 상황에 나는 반드시 맨발이거나 종이처럼 얇은 플립플롭flip-flop을 신고 있다. 내가 맨발일 때는 바닥 곳곳에 오줌 지뢰가 있고, 플립플롭을 신고 있을 때는 바닥 전체에 오줌이 얕게 깔려 있다. 어떻게 해도 더러운 게 발에 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즉시 소변을 봐야만 하는 급박한 상황이기에 나는 빈 화장실을 하나씩 열어본다.

이럴 때면 꼭 변기가 막혀서 물이 꽉 차있거나, 쪼그려 앉는 화변기이거나, 변기나 변기 주변이 온통 오줌이거나, 화장실 문이 안 닫히거나 등등 편하게 볼일을 볼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그래도 워낙 급하다보니 그나마 그중에서 양호한 칸을 골라서 소변 보는데 집중한다. 나는 문이 자꾸 열려서 한 손으로는 문고리를 잡고 있거나, 더러운 바닥을 조금이라도 덜 밟아 보려고 까치발을 하고 있다. 내가 들어가 있는 화장실 앞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와서 줄을 서고 기다릴 때도 있다.

 

왜 빨리 안 나오는 거냐고 누군가 짜증 내는 소리가 난다. 손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초조해진다. 신경이 분산되어서 볼일 보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냥 나갈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소변을 보려 애를 써본다. 

그런데 그 순간의 나의 무의식은 내가 실제로는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너무도 간절히 소변을 보고 싶은데도 이게 도무지 나오질 않는다.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릴랙스. 릴랙스. 마음을 편안하게. 자, 이제 누자. 제발 누자. 얼른. 침착해. 침착해야 해. 아, 드디어 나올 것 같아. 그래, 오케이, 조금만 더...!"

나는 끝까지 소변을 보기 위해 발악을 한다. 심호흡도 하고 명상도 해본다. 이 순간의 간절한 심정은 어떻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깬다.

그리고 놀란다. 아찔하다. 침대에서 그대로 오줌을 눴으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한순간에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소변 꿈에 대해 여동생에게 얘기를 했다. 올 초에도 또 그런 꿈을 꿔서 얘기를 해줬다. 이번엔 동생이 무서운 소리를 했다. "분명히 한 번은 싼다."라고 말이다.

그 말에 겁을 먹은 나는 얼마전 방수 매트리스 커버를 샀다. 그걸 매트리스에 끼워두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물론 그런 게 있다 해도 자다가 오줌을 싸는 건 결단코 원치 않지만... 그래도 이게 있고 없고의 차이가 꽤 크다. 잠든 이후의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무의식 속의 나는 방수 커버가 있다는 사실로 인해 분명히 예전보다 더 안심한 상태로 더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들 것이다.

그래도 무의식 속의 나 자신아, 꿈속에서 쉬 하려고 애쓰는 일은 제발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다음엔 그냥 벌떡 일어나주길 바랄게. 화장실 코앞이야. 그냥 벌떡 좀 일어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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