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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약충 구사일생 스토리 (쥐미와의 첫 만남)

by 라소리Rassori 2019.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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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5일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일이네요. 벌러지닷컴에서 왕사마귀가 부화를 했고, 그 약충들이 두세 번 탈피를 한 뒤 판매가 시작되었습니다.

벌러지닷컴 유튜브 방송에서 소식을 접하고 나서 그때를 기다리고 있던 저는 여러 다른 것들과 함께 냉큼 한 마리를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11월 초라서 이미 밤에는 많이 추워져서 보온 포장 옵션으로 주문을 하고 나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택배 포장은 스티로폼 박스에 핫팩이 붙여진 상태였습니다. 겉포장에는 문제가 없었어요. 그런데 왕사마귀 자체 포장에 조금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보자마자 당황해서 전체를 찍진 못했는데 1회용 종이컵에 망이 씌워진 상태였습니다. 단단한 통이나 닫힌 뚜껑 같은 게 없었죠. 그래서인지 조그만 왕사마귀 약충이 핫팩의 후끈한 열기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모습이었습니다.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는데 왕사마귀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왔는지 머리 위쪽으로 연한 갈색 물이 말라붙어 있었고, 핀헤드들도 죽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전부 바짝 말라 있어서 딱 봤을 때의 느낌은 "탈수로 죽었다"였습니다.


어찌 보면 한낱 미물일 뿐이지만 컵 째로 그냥 버리기는 좀 그래서 다리를 잡고 조심스레 당겨보았습니다. 등 쪽 전체가 젖었다가 바짝 마른 탓에 바닥에 몸이 들러붙어서 떼어내는데 드드득 하는 소리가 나더군요. 순간 아찔했는데 다행히 몸에 손상 없이 잘 떨어졌습니다.

떼어낸 뒤에 손에 놓고 보니 말라 비틀어진 몸이 너무나 작더군요. 불쌍했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 어쩌겠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로 하고 추운 계절이 아닌 따뜻한 계절에 다시 구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목소리 좋으신 벌러지 사장님께도 알렸는데 아주 친절하게 만족스러운 대처를 해주셨습니다. (생물은 환불이 안돼서 다른 방법으로 보상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혹시나 해서 사마귀의 입에 물이 닿도록 했더니 물을 마시기 위해 입이 오물오물 움직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죽은 줄 알고 버리려 했는데 한순간에 버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물을 마음껏 마시게 한 뒤에는 통으로 옮겨서 조심스레 놓아두었습니다. 설 힘도 없어서 벌러덩 누워 있는 상태였죠. 겨우겨우 물을 마시긴 했지만 어떻게 봐도 곧 죽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곤충은 원래 잘 죽잖아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목숨이 붙어 있는 녀석을 버릴 수는 없으니 고이 사육통 안에 눕혀두고 밤을 보냈습니다.

역시 다음날 아침에도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작은 핀헤드를 쥐어줬더니 냠냠 맛있게 먹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대로 힘없이 누워 있는 상태에서 말이에요. (뒤에 있는 것은 물에 적신 휴지와 기어 올라갈 수 있는 망입니다.)


핀헤드는 원래 벌러지에서 있으면 서비스로 주시고 없으면 안 주시는 그런 건데 저는 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서비스 핀헤드는 뚜껑을 닫은 통에 들어 있어서 모두 멀쩡하게 도착했습니다.) 사장님께서 너무나 감사하게도 핀헤드를 챙겨주시지 않았더라면 힘들게 밀웜 즙을 짜서 먹여야 했겠죠. 그래도 설마 핀헤드 하나를 먹었다고 해서 이 녀석이 살아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후에 보니 아래 사진의 모습대로 당당히 자세를 잡고 있었습니다.


죽을 뻔했던 여파 탓인지 더듬이도 구깃구깃하고 상태도 썩 좋진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짧은 수명도 많이 줄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스스로 서는 것을 보니 어쩌면 이대로 잘 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우선 당장 벌러지에 연락해서 상황을 다 얘기해드렸습니다. 보상해주신 것을 취소하려고 연락드린 건데 괜찮다고 하셔서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사마귀는 탈피를 하려면 반드시 망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어떻게 망을 놓을지 고민하는 동안 간단한 집을 만들어서 넣어두었습니다. 왕사마귀도, 핀헤드도, 밀웜도, 다들 너무너무 작고 애처롭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아기 왕사마귀가 똥을 누기 시작합니다. 이걸 보고 이 아이는 살겠구나, 확신이 들었습니다.


엉덩이를 아래위로 움직이더니 동그랗고 귀여운 똥을 이쑤시개에다 예쁘게 붙여두었습니다. 똥도 그렇지만 실보다도 더 가는 다리와 커다란 눈이 너무나 귀엽습니다.


이 녀석의 이름은 "쥐미"로 지었습니다. 지미(Jimmy)라고 하면 실제 이름이 지미이신 분들이 혹시라도 기분 나빠하실까봐 쥐미로 적기로 했습니다. 수컷 같아서 쥐미라고 했는데 어쩌면 암컷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듭니다. 탈피를 거듭하고 5령이 되고 나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암컷이어도 어쩔 수 없이 이 녀석은 쥐미입니다. 

어쨌든 거의 한달이 지난 지금도 아주 잘 살고 있고요, 놀랄 만큼 많이 컸습니다. 그만큼 집도 훨씬 더 커졌어요. 먹이 곤충들이 숨을 수 있는 나뭇잎을 다 치우는 등, 데코레이션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밤이 늦어서 여기까지 하고, 앞으로도 계속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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