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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소리소리 일기 4 - 귀여운 탈주자

by 라소리Rassori 2020.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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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사진 주의


아침에 일어나서 폰을 들고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옆에 누군가 다가왔다. 조그맣고 까만 녀석이었다. 미소가 지어졌다.

 



최근 이틀 연속 귀뚜라미 사육통 청소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몇 놈이 탈출을 했다. 바로 잡지 못했던 이유는 녀석들이 창가 선반 위를 돌아다니다가 하필이면 창틀과 선반 사이의 틈새를 통해서 에어컨 기계가 있는 쪽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찾으려면 벽처럼 되어있는 커버를 뜯어내서 열어야 하는데, 열어봤자 그 안에 기계가 복잡하게 들어 있어서 그 틈 사이 어딘가 있을 작은 벌레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어서 찾는 걸 포기했는데 어느 날 보니 탈주자 한놈이 부엌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배가 고파서 스스로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한번은 또 다른 탈주자가 등에 정체 모를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채로 욕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귀뚜라미는 그리 빠르지 않아서 잡기가 쉽다. 그 녀석도 손쉽게 잡아서 물에 씻긴 뒤 다시 사육통에 넣어 주었다. 녀석은 당황하거나 놀라는 것을 모두 건너뛴 채 허겁지겁 밥부터 먹었다.

어느 날 아침엔 좀 특별한 일이 있었다. 탈주자 한 녀석이 내 침대 위로 올라온 것이다. 마치 "밥 주세요," 하고 애원하듯 내 얼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껏 침실 안까지, 그것도 침대 위까지 올라온 건 이놈이 처음이었다.

너무 귀엽고 기특해서 당장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얼른 물부터 먹여줘야 했다. 녀석 같은 성장기의 귀뚜라미들은 하루 종일 먹는 게 일인데 바닥에 먹을 게 하나도 떨어져 있지 않은 삭막한 집에서 어쩔 수 없이 쫄쫄 굶었을 것이다.

"배고프지?" 하고 부엌으로 데리고 가면서 라이온킹 비슷한 것을 해 주었다. 웬일로 내 손가락 위에서 꼼짝 않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이 녀석 또한 나중에 내 절지동물들의 먹이로 사라질 테지만, 살아있는 동안엔 맛있는 거 많이 먹이고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

그나저나... 도쿄에 사는 내 일본인 친구(뉴욕에서 같이 학교 다녔던)가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던데 자다가 귀뚜라미 튀어나오는 거 괜찮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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