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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소리소리 일기 6 -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존재, 그 압박감, 그 소중함

by 라소리Rassori 202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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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천 송도 해돋이 도서관에서 회원 가입을 하고 책을 두 권 빌려 왔다. 그날의 후기

15일 안에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으니 어떻게든 다 읽을 줄 알았다. 당연히 다 읽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하루에 다만 10분이라도 책을 붙잡고 있기도 힘들었다.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도무지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블로그 포스팅도 해야 하고, 유튜브 영상도 만들어야 하고, 다른 잡다한 할일들도 너무 많았다. "이것만 해 놓고 꼭 책 읽어야지,"하고 생각해놓고 계속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항상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지쳐서 자버리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책을 반납해야 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가장 피하고 싶었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와서는 하나도 못 읽고 그대로 다시 갖다 줘야 하는 멍청한 상황 말이다.

자책하는 기분으로 주섬주섬 도서관에 갈 준비를 했다. 더운 날씨에 정말 나가기 싫었다. 그래서였을까, 둔한 상태의 나의 아침 뇌가 갑자기 팽! 하고 돌아가면서 반납을 7일 연기할 수 있다는 기억을 떠올려 주었다.

얼른 구글에서 해돋이 도서관을 검색해서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았다. 고맙게도 "반납연기"가 가장 앞쪽에 보였다.
 

(저걸 누른 뒤 책 제목 옆에 있는 연장 버튼을 누르면 끝!)


반납 연기는 권당 7일이 가능한데 누군가 그 책을 예약했다면 연기는 불가능해진다. 다행히 내가 빌린 책들은 별문제 없이 연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쯤 카톡으로 "휴관일 긴급알림"이 왔다. 휴관 연장과 함께 이제는 도서 예약 대출 서비스를 시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도서관은 이런 식으로 바뀌는걸까? 행복인 줄도 모르고 누렸던 극히 일상적인 것들이 이렇게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어쨌든 이번엔 어떻게든 꼭 다 읽고 빨리 반납하러 가야겠다.

지금 읽는 책은 야마자키 마리가 쓴 "시시하게 살지 않겠습니다" 인데 생각보다 내용이 상당히 좋다. 가벼워 보이는 표지나 제목 때문에 흔하고 시시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읽어보니 결코 그렇지 않다. 원제가 "国境のない生き方: 私をつくった本と旅" (국경 없는 삶: 나를 만든 책과 여행)인데 한글판 제목은 이 책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시시해 보이게까지 만들어 버렸다.

우선 이 책은 작가부터가 "테르마이 로마이"라는 유명한 만화를 그린 사람이다. 예전에 조금 읽어본 적이 있는 작품이고,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나와서 관심을 가졌다. 특히 영화는 아베 히로시가 주연을 맡았다고 해서 빵 터지기도 했었다. (외국인처럼 독특하게 생긴 배우가 로마인인 루시우스 역을 맡게 되었다고 하니까)

별생각 없이 읽다 보니 67년생인 이 작가가 살아온 얘기들이 생각보다 굉장하다. 작가의 어머니도 생각이 참으로 남다른 사람이다. 우리 엄마도 존경스러운 사람이지만 내가 만약 이 작가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 뒤표지에 적힌 말들은 이 책의 가치를 낮춰버린 느낌)


빨리 이 책을 다 읽고 한자와 나오키 1권도 읽어야 한다. (엄청 두껍다.) 그리고 아마 다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책을 빌려 읽어서인지 몰라도 왠지 책을 읽는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만지작거렸을 걸 생각하니 책을 별로 만지고 싶지가 않아진다. 읽고 나면 손을 깨끗이 씻게 된다. 결벽증이 있는 건 결코 아닌데 가끔 이렇게 생각 하나가 머리에 꽂히면 이렇게 별스럽게 되어버린다.

무엇보다 나는 이미 리디북스에 두 개의 아이디가 있고, 그 안에 지금껏 구입한 책이 천 단위로 있다. 괜찮은 책이라면 세일할 때마다 사는 바람에 엄청나게 늘어나서 그중에서 1/10도 못 읽고 있다. 일단 사둔 것부터 다 읽고 봐야겠다.

나는 원래 책을 꽤 많이 읽는 편이었는데 블로그를 하면서 책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어떻게든 빨리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다시 독서의 틀을 조금씩 다져가는 기분이 든다. 앞으로 책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압박감은 그대로 안고 오더블 닷컴과 리디북스에서 사놓고 안 읽고 있는 책들을 빨리 다 읽어야겠다.

스트레스가 되는 압박감은 싫지만 독서의 압박은 나쁘지만은 않다. 비록 압박감 속에서지만 간만에 책을 들고 읽어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어찌 됐든 독서는 즐겁다. 행복해진다. 마음이 안정된다. 잡념과 쓸데없는 욕심들이 내 마음에서 씻겨 나간다.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충 씻고 책부터 잡았다. 오늘의 마무리도 책으로 할 것이다. 블로그와 유튜브도 중요하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너무나 많다.

내 머릿속은 언제나 불분명한 것들로 가득하지만 지금 이 순간 두 가지만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1. 블로그와 유튜브는 재미있다. 2. 그러나 그것이 내 인생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p209

 

p241 (작가의 아버지는 병으로 사망)

 

p263


다 읽었다! 야마자키 마리. 멋진 사람. 기억해 둬야지.
이제 한자와 나오키를 펼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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