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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지네

아기 지네 사육 시행착오 모음

by 라소리Rassori 2019.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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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주세요.


지금껏 드문드문 지네 얘길 해왔는데 이번엔 총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이제 겨우 지네 유체 사육 두 달째인 초보이지만 지금까지 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 경우 몇 달 전부터 유튜브에서 지네 사육에 관한 영상들을 보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지네에 빠져 들게 되었고요, 그 뒤로 지네를 키우고 싶어서 여러 관련 글들을 읽어 보고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희귀 동물 온라인 샵들을 열심히 둘러보면서 당장 데려오고 싶었지만 곧 이사할 가능성이 있는 저는 조금 나중에 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미루고 있었습니다. 애완 지네 자체도 15cm 이상으로 꽤 크지만 사육 케이스도 상당히 크더군요. 사육 케이스의 높이가 지네의 터미널 렉을 포함한 몸길이보다 더 높아야 하고 지네가 돌아다닐 공간도 좀 있어야 하니 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지네 사육 무경험자니만큼 처음엔 유체가 좋을 것 같았습니다. 유체가 더 키우기 힘든 줄도 모르고 말이에요. 그러다가 10월에 우암사적공원에서 우연히 아기 지네를 잡게 되었죠. 머리는 빨갛고 몸은 까만 게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예뻤습니다. 몸 전체가 방금 새로 제작된 기차나 로봇처럼 반짝반짝 거리는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기 지네는 유튜브에서 보던 성체와는 키우는 난이도나 습성 부분에서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성체는 겁 없이 은신처 밖에 나와 있고, 먹이를 주면 힘차게 낚아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성체라도 은신처에 숨어 있는 경우도 많지만, 살아있는 먹이를 과감하게 사냥하는 모습에서 유체와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개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유체는 겁이 많아서 숨어 있을 때가 많고 살아 있는 먹이를 보면 도망을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방금 죽인 신선한 먹이를 먹여야 하는데 워낙 잘 숨고 도망을 가서 먹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네 역시 다른 절지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탈피를 합니다. 탈피를 앞두고 있을 때는 억지로 먹여서도 안 되고 건드려서도 안 되니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닙니다. 탈피가 다가오면 색이 연해지고 머리 쪽 마디 부분이 평소와는 달리 살짝 벌어진다는데 유체는 너무 작아서 그 차이를 구분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성체는 덩치가 있어서 탈출을 한다 해도 다시 찾을 가능성이 꽤 되지만 유체는 탈출하면 그대로 영영 이별일 확률이 높습니다. 탈출을 너무 잘해서 어떻게 빠져나간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자기 몸 보다 더 좁은 틈도 빠져나간다고 해요. 그만큼 지네 유체 사육은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입니다.

습도 조절도 무척 까다롭습니다. 이건 성체도 마찬가지겠지만 유체는 더 어렵습니다. 종에 따라 차이는 있어도 일단 이번에 얘기할 왕지네 유체를 예로 들자면 습기를 정말 너무나 좋아합니다. 물을 사랑하는 수준이에요. 처음 발견했을 때도 무거운 돌 밑에서 축축한 흙을 즐기고 있었고요.

그래서 저도 그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애썼습니다. 분무기로 흙이 푹 젖도록 해 주고 묵직한 항아리 조각을 얹었습니다. 그랬더니 항상 그 아래에 있더라고요. 사육장 내에 물이 없이 건조한 곳도 만들어 두었지만 그쪽으로는 전혀 가지 않길래 그대로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약 2주 후, 문제가 터졌습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던 지네가 흙 밖으로 나와서 사육 케이스 안을 빠르게 빙빙 돌아다니더군요. 그렇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라 혹시 배가 고파서 그러나 싶어서 작은 귀뚜라미를 하나 던져주었습니다. 하지만 지네는 더욱 패닉하면서 더 빨라지기만 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아파서 한 행동이었습니다. 빠르게 뛰는 것을 간신히 찍어서 봤더니 왼쪽 다리 하나가 끝이 떨어져 나간 상태였어요. 아마도 흙이 너무 습해서 부절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다리 하나가 짧은 것이 보입니다. (실제로는 새끼손가락 길이만한 작고 귀여운 녀석이니 너무 놀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네 사육에 대해서는 열심히 검색해 본 상태였지만 일이 터진 뒤 다시 열렬히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역시나 "돌을 두지 말라,"는 말이 있더군요. 아래 사진에 저 무거운 항아리 조각이 높은 습도를 더 높게 유지시켰던 것입니다. 바람이 항상 부는 야생에서는 괜찮아도 환기가 충분하지 않은 실내에서는 나쁜 선택이었습니다.


급한 대로 그것을 스티로폼 은신처로 바꾸었습니다. 흙을 누르지 않는 무게인데다가 붕 떠 있는 형태라서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이런 식의 은신처를 쓰고 있는데 문제없이 괜찮네요.)


그런 뒤 부랴부랴 새로운 사육 케이스를 주문했습니다. 지마켓과 옥션에서 "투명 아크릴 사육 케이스"로 검색해보니 마침 중국에서 배송해주는 물건 중에서 괜찮은 게 있어서 그걸로 골랐습니다. 세 개 샀는데 지금 다시 검색해보니 가격이 조금 내렸네요. 이때 주문할 때 이베이도 검색해봤어야 했는데 깜박했습니다. 다음엔 이베이를 뒤져봐야겠습니다.

어쨌든 벽에도 환기 구멍이 있는 걸 쓰는 게 좋다고 하는데 딱 제가 원하는 통이었어요. 통 크기도 예전 것은 아기 지네에게 너무 컸는데 이번 것은 가로, 세로, 높이 모두 10cm인 정육면체로서 딱 적당했습니다. 투명한 통이어도 안이 깨끗하게 안 보이는 통이 많던데 이건 깨끗하게 잘 보여서 좋았습니다. 은신처는 이 통에 너무 커서 사진 찍은 뒤에 더 작게 잘라줬습니다.


흙은 반건조로 하는 게 좋고, 만약 흙이 푹 젖으면 마른 흙과 섞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해 둔 뒤 습도 유지를 위해 물에 푹 적신 키친타월을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물을 너무 좋아하는 저희 왕지네는 아예 그 안으로 들어가버렸어요.


물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게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귀엽긴 하지만 아기 지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조심스레 꺼낸 뒤, 이번엔 키친타월을 꽉꽉 눌러가면서 돌돌 말아서 넣어 보았습니다. 푹 젖은 것이 있다는 걸 어떻게 바로 아는지, 통 안에 넣어주자마자 달려가서 붙었습니다. 몸이 한 번 아팠기 때문인지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던 녀석이 이 이후로 지금까지 더이상 숨지 않고 있습니다. 걱정은 되어도 매일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좋긴 합니다.


이 와중에 더듬이가 정말 예쁘고 멋집니다.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자른 밀웜입니다. 피딩은 5일에 한 번, 밀웜을 잘라서 두면 알아서 먹습니다. 이건 정말 다행이죠. 그래도 편식이 심해서 귀뚜라미를 잘라서 두면 절대 먹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귀뚜라미든 밀웜이든 보는 즉시 포식자의 신분을 잊고 도망갑니다. 아무리 작은 걸 줘도 말이에요.

그런데 아기여도 역시 지네는 지네인지 힘이 꽤 세더라고요. 그렇게 꽉꽉 말아둔 키친 타월을 어떻게 벌렸는지 다음날 보니 또 그 안에 들어가 있더군요. 결국 키친타월은 치우고 그다음으로는 스펀지를 작게 잘라서 넣어주었습니다.

스펀지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괜찮은데 혹시라도 뜯어먹으면 큰일이니 이게 안전한 방법일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단 아직까진 그렇게 하고 있고요, 물그릇은 지네가 머리를 넣고 죽어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좀 더 클 때까지는 치워두기로 했습니다. 흙도 살짝 건조한 편으로 유지를 시켜주고, 대신 벽면에 자주 물을 스프레이 해주고 있습니다. 흙이 젖지 않게 벽에만 말이에요. 스프레이 해주는 걸 깜박하고 있으면 우리 예민한 상전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난리가 납니다.

어찌 됐든 지금까지 한 달 넘게 그렇게 해오고 있고요, 그 결과 지금은 괜찮은 듯하고 다리도 많이 재생이 되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우암공원에서 동면을 취하고 있었을 녀석인데 저한테 잡혀와서 고생이 많습니다. 왕지네는 너무 예쁘지만 앞으로는 야생에 살고 있는 애들보다는 사육해서 파는 지네들을 데려와야 할 것 같습니다.

왕지네를 잡을 때만 해도 동면에 대한 것이나 지네 유체 사육이 어렵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는데 알았더라면 잡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동면에 들어갈 시기를 지나친 시점에 야생에 되돌려놓을 수는 없으니 최선을 다해 돌보는 길 밖에는 없는 듯합니다. 흙이 푹 젖어 있지 않아서 상전이 불만이 상당히 많아 보이지만 부디 잘 적응해 주었으면 좋겠네요.

저의 다른 지네인 더쥬 출신 마하로나 오렌지 유체는 한국 지네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마 동면과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왕지네만큼 습기에 환장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숨기도 덜 숨고 성격도 좀 더 차분합니다. 이 녀석도 새 사육 케이스로 옮겨주려고 했습니다만, 몸길이 3cm 정도밖에 안 되는 정말 작은 녀석이라서 환기 구멍으로 나갈 수 있겠더군요. 그래서 아쉽지만 아직은 이 통에서는 키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통의 투명도가 좋아서 바닥에 깔아둔 것이 선명하게 비칩니다.)
 


꼭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 녀석에겐 통이 너무 크네요. 키워 보니 아기 지네는 이렇게 공간이 넓으면 더 스트레스를 받는 듯합니다. 고민하다가 나중에 이것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의 통으로 옮겨주었습니다.


혹시라도 탈피 시기가 올까봐 조심하고 있는데 탈피는 둘 다 아직 안 하고 있네요. 타란툴라 유체들은 열심히 탈피를 거치고 있는데 말이에요. 그 얘기는 나중에 또 하도록 할게요. 지네 유체 키우시는 분들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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