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절지동물/사마귀

절지동물 사육 일기 20191108-11 (왕사마귀, 타란툴라)

by 라소리Rassori 2019. 12. 15.
320x100

한 달도 넘게 전의 얘기네요. 좀 더 빨리 써서 실시간으로 따라잡아야 할 텐데 말이에요. 키우는 동물들이 많고 촬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리는 얘기랑 실시간이랑 세 달씩도 벌어진다는데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해 봐야겠습니다.

우선 볼 때마다 귀여워서 터트릴까봐 걱정되는 쥐미 얘기입니다. 워낙 작아서 가장 작은 핀헤드를 줬는데도 핀헤드가 커 보입니다. 사마귀를 키우는 재미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밖에 꺼내 놓고 피딩을 할 수 있다는 점이죠. 특히 쥐미는 어릴 때부터 키워서인지 더 다루기가 편한 것 같습니다.


쥐미는 제 손에 올라와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인간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아마 인간이란 존재를 정확히 모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너무 커서 한눈에 안 들어올 것 같거든요. 사마귀는 높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저를 보고도 도망갈 생각은 않고 자꾸 저를 딛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려고만 합니다. 더 이상 위로 올라갈 곳이 없으면 팔을 공중에 휘젓곤 해요.


아래 사진은 드디어 거꾸로 매달릴 수 있는 망을 설치한 모습입니다. 사마귀를 키울 때 필수라는 루바망이에요. 화분에 흙이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망이죠. 다이소나 꽃집에서 쉽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애가 워낙 작다 보니 망에 구멍도 좀 더 촘촘했으면 싶고, 양파망처럼 좀 더 부드러운 망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저런 투박한 망에서도 거꾸로 매달린 채로 기특하게 먹이를 잘 잡아먹습니다. 쥐미 사육통의 오른쪽에 보이는 희미한 거미의 실루엣은 저희 타란툴라 그린보틀 블루(그린볼)입니다. 그린보틀 블루라는 종명에서 그린을 따와서 "리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사마귀는 그리 많이 움직이는 편이 아니어서 사육장이 그렇게 넓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때에 따라 다른 거 같습니다. 어떨 때는 여기저기 넓은 곳을 돌아다녀 보고 싶어 하고, 어떨 때는 같은 자리에서 10시간 이상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특히 탈피가 가까워 오면 며칠씩 꼼짝 않고 있기도 합니다.

이때의 쥐미는 아직 탈피 시기가 좀 남아 있어서 밥을 다 먹고 나면 밖으로 나오고 싶어 했습니다. 밥은 보통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먹이는데 그때마다 식사 후에는 꼭꼭 놀아 주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놀아 준다고 해서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함께 열심히 움직여 줘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저는 그냥 쿠션 같은 것에 쥐미를 놓아두고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게 두거나, 제 손 위에서 놀게 해 줍니다.

다른 많은 절지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마귀 역시 크든 작든 이렇게 놀다간 순간의 실수로 터져 죽을 수 있습니다. 절대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저는 하루에 두 번씩 꺼내놓지만 사실 그러지 않는 것이 안전하긴 합니다. 꺼내놓으면 꺼내놓았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사람의 입장에서는 피곤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쥐미의 경우 통에 다시 넣으려고 하면 낫을 납작하게 접고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뭔가가 눈앞에 들이밀어지니 처음엔 본능적으로 옮겨가려고 팔을 뻗는데, 그것이 사육 케이스인 것을 눈치채는 순간 거부를 한답니다. 그런데 자기가 쉬고 싶으면 순순히 들어가서 가만히 망에 붙어 있기도 해요. 사마귀는 지능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실제로 키워보니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래 사진은 제 손 위에서 그루밍을 하는 모습입니다. 발을 하나하나 깨끗이 정리하고, 낫 안쪽에 묻은 먹이 찌꺼기도 다 정리합니다. 낫으로 얼굴을 닦을 때도 있는데 그 모습은 정말 고양이가 세수하는 모습 같습니다. 눈 색깔은 어두운 데 있으면 까매지고, 밝은 데 있으면 연해집니다.


아래 사진은 다음 날 아침입니다. 스스로 핀헤드를 사냥해서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에요. 거의 항상 높은 곳에 있지만 먹이를 사냥할 때는 먹이가 있는 곳으로 뛰어 내려옵니다. 착지하는 모습이 마치 스파이더맨 같아요. 그나저나 오른쪽에 누워있는 핀헤드는 어째서 죽었는지 모르겠네요. 핀헤드들끼리 싸우다 죽었거나 쥐미가 한입만 뜯어먹고 뱉었거나 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 봅니다.


사육 케이스는 매일 아침 청소하고 씻어 줍니다. 쥐미는 하루에 10개 정도의 귀여운 똥을 싸는데 그냥 쓰레기통에 부으면 모래처럼 떨어진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더듬이 한쪽이 짧아져서 속이 상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껏 지켜본 결과 귀뚜라미도 그렇고,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저렇게 되는 경우를 확인했습니다. 사마귀의 경우 사육통 뚜껑에 붙어 있다가 등부터 아래로 떨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밑에 쿠션을 해둬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어쨌든 잘린 더듬이는 탈피 후에 회복이 된다고 하니 조금 안심이 됩니다.

 

다음 날엔 스스로 나무젓가락을 타고 위로 올라온 극소 밀웜을 잡아 먹고 있습니다. 잘 먹는 모습이 볼 때마다 너무 귀엽고 재밌습니다. 이래서 사마귀가 애완 곤충으로는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타란툴라 유체들 얘기 짧게 할게요. 쥐미 얘기를 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렸습니다.

그린볼인 리니는 위로 올라가는 것을 좋아해서 망으로 계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계단과 뚜껑을 쭉 이어서 거미줄을 만드는 바람에 미안하게도 뚜껑을 열 때마다 거미줄이 망가집니다.



어쨌든 리니가 마침 뚜껑에 붙어 있길래 그대로 작은 귀뚜라미 한 마리를 주었습니다. 귀뚜라미는 풀쩍풀쩍 뛰기 때문에 타란툴라 유체가 사냥에 실패해서 의기소침해질 수가 있습니다. 잘못하면 기나긴 단식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귀뚜라미에게 꿀밤을 한 대 먹인 뒤에 비틀거리게 만들어서 주었습니다. 귀뚜라미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귀뚜라미가 비틀거리면서 하필이면 리니의 몸 아래로 들어가서 숨었습니다. 리니는 이게 뭐지 하면서 움찔거리다가 먹이인 것을 알고는 콱 물더군요. 너무 귀엽기도 하면서 보면 볼수록 너무 멋있습니다. 크기는 손톱보다 작아도 하는 짓은 막강 최종 보스 같습니다. 구두를 신은 발끝을 세우고 털 다리를 쭉 뻗는 것을 보면 약간 원피스에 미스터 투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하는 짓도 외모도 다 이쁜 녀석이 숨지 않고 밥도 잘 먹으니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반면 오렌지 어셈 바분은 카엥 크라찬과 마찬가지로 결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래 사진처럼 저렇게 집 앞에 먹이를 붙여 두면 재빨리 가지고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런데 대체 어떻게 갖고 들어가는 건지, 손이나 입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그냥 먹이만 안쪽으로 쏙 빨려들어갑니다. 이 녀석은 오렌지 어셈 바분의 오렌지에서 이름을 따와서 "렌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이 녀석은 밥이라도 잘 챙겨가니 다행입니다. 카엥이는 거의 보름째 밥을 먹지 않고 있습니다. 모습을 볼 수 없음은 물론이고요. 3일에 한 번씩 먹을 것을 놓아두고 있는데 항상 손대지 않은 채입니다. 생사 확인을 위해 흙을 파보고 싶어도 탈피를 하고 있을까봐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사육 일기 열심히 써서 어떻게 되었는지 곧 알려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현재 키우는 애들 목록입니다:

- 왕사마귀 약충 쥐미

- 타란툴라 킬로브라키스 카엥 크라찬 유체 카엥이

- 타란툴라 그린보틀 블루 유체 리니

- 타란툴라 오렌지 어셈 바분 유체 렌지

- 왕지네 유체 타리 (까탈스러워서 까탈이 하려다가..)  

- 마하로나 오렌지 지네 유체 실이 (실 같아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