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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약충 쥐미 일기 20191117-19

by 라소리Rassori 2020.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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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7-19일

아기 사마귀 쥐미가 탈피를 한 뒤 새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지난 사육 일기에서 이사를 한 타리(왕지네 유체)가 쓰던 집인데 쥐미를 위해 꾸며보았답니다.


그런데 탈피를 했어도 쥐미가 아직 너무 작네요. 집이 너무 크니까 오히려 쥐미가 불안해하고 자꾸 천장으로 올라가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아래에 쿠션도 없는데 이러다간 다치겠더라구요. (실제로 사마귀들이 그렇게 다치기도 한답니다.)


먹이를 사냥하는데도 영 좋지 않았어요. 아래에 핀헤드가 있는데도 멀어서 바로바로 못 보고, 먹이가 도망다닐 공간이 많으니까 사냥 성공 확률도 떨어졌어요. 게다가 집이 쓸데없이 넓으니 조그만 쥐미가 뭔가 불쌍하고 고독해 보이기도 합니다. 대저택으로 이사를 했으나 좋은 점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전에 살던 작은 집에 다시 살게 하는 건 왠지 아쉬웠어요.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홈플러스 안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보자마자 바로 이거다 했죠. 안에 있는 맥주잔은 전혀 필요가 없는데 겉에 있는 길쭉한 통이 쥐미에게 딱 맞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하나에 천원이었는데 고민하다가 결국 두 개를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역시 딱 좋은 높이와 넓이였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통이 물렁물렁(?)하다는 거예요. 뚜껑도 견고한 재질이 아니고 흐물거려서 쉽게 닫히지 않구요. 자주 열고 닫아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리를 쳐야 한다면 쥐미가 스트레스를 받겠죠. 일반 절지동물 전용 사육 케이스도 뚜껑이 부드럽게 열고 닫히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별로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납작한 플라스틱이나 단단한 종이를 위에 얹어 두었어요. 당연히 불편했어요. 틈이 생겨서 한 번은 쥐미가 탈출을 하기도 했구요. 솔직히 남에게 추천을 할 수도 없는 케이스네요.

하지만 좀 더 클 때까지는 딱히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타란툴라 유체 전용 사육 케이스를 사서 써보려고 해도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투명도가 낮거나, 도무지 마음에 드는 게 없더라구요. 특히 사마귀는 사육통이 높기도 해야 해서 더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어찌 됐건 핀헤드를 냠냠 맛있게 먹고 있는 쥐미입니다. 하루 두 끼를 먹는데 한 번에 한두 마리 정도 먹어요. 좀 더 먹었으면 좋겠는데 양이 생각보다 많진 않네요. 핀헤드의 수가 너무 많은데 좀처럼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나와서 놀고 싶다고 사육 케이스를 두드리거나 부산을 떱니다. 그러면 한참 동안 제 손에 얹어서 손과 팔 여행을 시켜줍니다.


별로 재미있는 것도 없는데 양손을 오가면서 알아서 놀아요. 지켜 보는 게 즐겁긴 하지만 제가 조금만 실수해도 쥐미는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저에겐 긴장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에선 까만 눈동자가 마치 절 올려다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것은 눈동자가 아니라 빛의 회절에 의한 착시현상일 뿐이에요. 눈동자도 아닌 것이 괜히 사마귀의 인상을 웃기거나 무섭게 만드는 거죠. 안 그래도 역삼각형 얼굴이라 약간 해골 같은 인상인데 말이에요. (저에겐 그마저도 그저 귀여울 뿐이지만요.)


마음껏 놀지 못한 뒤에 사육 케이스에 다시 넣어주면 끝끝내 다시 나오려고 합니다. 그럴 땐 조금 더 놀아준 뒤 다시 안에 넣어주어요. 그러면 얌전히 어딘가에 붙어서 쉰답니다.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앙증맞아요.


눈이 좋아서 제가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고개를 휙 돌려서 봅니다. 사마귀의 정말 웃기는 행동 중 하나이죠. 타란툴라나 귀뚜라미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동작입니다.


너무 쳐다봐서 어떨 땐 티슈 같은 걸로 가려주기도 해요. 주위에서 뭐가 자꾸 움직이니 쥐미의 입장에선 불안해서 맘 편히 쉴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움직이는 것이 저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는데 거기까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냥 제가 휙 움직일 때마다 뭐지? 하고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그 놀란 상태로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어요. 나니까 제발 안심하라고 알려주고 싶지만 알려줄 길이 없네요.

그런 면에서는 약간 어릴 때 인형놀이 하던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뭔가 열심히 얘기를 하는데 상대는 아무 생각이 없는 거죠. 그런데 이 편이 저에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교감이 가능한 포유류도 키워봤지만 절지류가 훨씬 마음이 편하고 키우기도 쉽네요. 포유류는 아플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고 거의 20년을 키우다가 떠나보내고... 다시 할 수는 없는 일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다가도 또 저도 모르게 여러 동물들과 새들을 키워볼 생각을 떠올릴 때도 있지만요. 매번 절대 다시는 안 키우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뿐.

하지만 지금껏 살아보니 "절대"라는 단어는 의외로 안 지켜질 때가 많더라구요. 몇 번 겪고 나니 "절대"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살짝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지금 역시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살다 보면 다시 온혈동물을 키울 날이 올 수도 있는 거겠죠. 부디 미래의 자신이 절지동물이나 식물만을 키우고 있길 바라봅니다.

ps. 온혈동물을 키운다면 새하얀 닭을 키워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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