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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육 기록 등

나방 애벌레 레벌이 이야기 1

by 라소리Rassori 202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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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곤충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글입니다. 정말 관심 있는 분들만 봐주시길 부탁드려요. 곤충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이번 얘기는 나방 스페셜입니다! 꽤 전부터 준비했던 포스팅인데 주식 꿀잼에 푹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이제야 적네요.

 



2020년 9월 21일


어느 날 동네에서 룰루랄라 길을 가고 있었어요. 정리되지 않은 풀밭이 옆에 있는 길이었죠.

 


그런데 하얀 꽃이 피어 있는 키가 큰 풀에 뭔가 수상한 것이 눈에 띄었어요.

 


얘야, 너 뭐니!!ㅎㅎ

 


보니까 너무나 귀여운 애벌레가 있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있었더라면 제가 그냥 지나갔을 텐데 나뭇가지인 척하는 바람에 제가 보게 된 거예요. 하는 짓이 웃겨서 집에 데리고 가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바로 채집할 수는 없었어요. 사람들이 보는 게 부끄러웠거든요. 은근히 양방향으로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녀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어요.

 

그러다 아무도 안 보이길래 이때다 하고 애벌레를 떼어내려고 했어요. 근데 생각처럼 쉽게 안 떨어지더라구요. 어 이거 왜 이래 하면서 낑낑 대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시 제 뒤를 엄청 지나가기 시작했어요.

 

부끄러웠지만 일단은 끝까지 떼어내서 통에 담아 왔어요. 혹시 뭐 잡을 거 있을까봐 항상 들고 다니는 빈 통이 가방에 있었는데 이렇게 쓰일 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저는 어디 갔다가 집에 오면 이것저것 하느라 엄청 바빠요. 일단 돌봐야 할 절지 애들도 많고, 외출했으니 샤워도 해야 하고, 간식도 먹어야 하고, 아무튼 되게 바빠요.

 

그러다가 잠시 앉아서 블로그를 하는데... 한창 글을 쓰던 도중 제가 애벌레를 잡아 왔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각났어요.

 

깜짝 놀라서 "레벌아, 괜찮아? 미안해!" 하면서 통 뚜껑을 열었어요. 이때까진 레벌이에게 이름이 없었는데 그냥 저절로 튀어나왔어요. 단순히 벌레를 거꾸로 한 것이죠.

 

다행히 레벌이는 멀쩡히 잘 있었어요. 방치한지 한 시간이 좀 넘은 시점이었는데 시간에 비해 똥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꺼내서 자세히 보니 머리가 반질반질한 게 아주 귀엽게 생긴 녀석이었어요.

 


뒤에 있는 빨판 같은 배다리로 풀을 꼭 잡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풀이 녹아 있더라구요. 처음에 레벌이를 떼어 올 때도 배다리가 풀에 너무 강하게 붙어 있어서 떼어내는데 시간이 걸렸는데 이때도 잘 떨어지지 않았어요. 참 신비로운 생물이에요.

 


레벌이와 함께 온 풀이 좀 더러워서 깨끗이 씻어서 다시 넣어줬어요. 혹시 상추도 먹을까 싶어서 조금 씻어주었구요.

 


그런데 아무래도 먹는 풀만 먹나 봐요. 무슨 풀인지 모야모에 알아보니까 왕고들빼기라는 이름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나방 애벌레는 많이 싸고 많이 먹나 봐요. 2시간도 안 지났는데 똥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어요.

 


위 사진을 찍은 뒤 1시간 반 정도가 더 지났어요. 레벌이 완전 똥쟁이네요~

 


엄청난 속도로 먹고, 엄청난 속도로 싸고 있어요!

 


두 시간쯤 더 지나서 보니 레벌이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어요. 똥은 그다지 많이 늘어나지 않았네요.

 


나뭇가지를 들어 올려도 가만히 붙어 있길래 내친김에 청소를 해주었어요. 사육통이랑 채소랑 전부 깨끗이 씻은 뒤 다시 넣어주었어요. 

 


하지만 두 시간쯤 지나니 다시 지저분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나저나 레벌이가 상추는 어느 정도 먹는군요! 애호박은 영 별로인가 봐요.

 

 


9월 22일


다음날 아침이 되었어요. 먹이는 하나도 없고 똥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먹이도, 똥도 그대로였어요.

 


레벌아, 괜찮은 거야...?

 


꺼내봤지만 자세의 변화가 없었어요. 제가 쳐다보니까 또 나무의 일부인 척을 한 걸 수도 있어요.

 

그나저나 레벌이 눈! 스마일 모양인데 점으로 되어 있는 게 정말 신기하고 예뻤어요.

 


아주 귀찮았지만 밖에 나가서 풀을 몇 종류 더 뜯어 왔어요. 레벌이가 좋아하는 왕고들빼기도 뜯고, 아닌 것도 몇 개 뜯었어요. 뭘 골라서 먹을지 궁금하더라구요.

 


그런데 한참 뒤에 가보니 레벌이가 풀을 가져가긴 했는데... 먹는 데 사용하는 게 아니라...

 


고치를 짓는 데 사용하는 중이었어요.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벌써 성충이 될 준비를 하다니, 너무 섭섭했어요. 고치에 사용할 줄 알았더라면 더 좋은 잎을 줬을 텐데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했어요. 뒤늦게 크고 좋은 잎을 뒤에 놓아두긴 했는데 이미 늦었더라구요.

 


레벌이는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요?


얘기는 다음에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이번 사육 일기는 여기까지예요. 그럼 전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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