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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육 기록 등

꼬마 거미 한 마리가 저를 찾아왔어요! (근데 제가 다치게 했어요ㅠ)

by 라소리Rassori 2021.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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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거미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글입니다. 정말 관심 있는 분들만 봐주시고, 거미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제목 그대로 정말 꼬마 거미 한 마리가 저를 찾아왔어요. 증권시장이 열리지 않은 연휴 첫날이었죠. 평소엔 9시 장 열릴 때 주식을 잠깐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으니 그냥 폰 보면서 침대 뒹굴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왼쪽 팔이 근질거리더라구요. 벌레가 걸어가는 느낌이었죠. 그래도 설마 벌레일까 하는 생각에 안 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벌레가 맞는 것 같았어요ㅋㅋ 그래서 너무 결국 팔을 힐긋 보게 되었는데! 세상에나 웬 거미가 걸어가고 있더라구요. 제가 키우는 타란툴라들 말고 일반 거미가 말이에요.

 

쌀알 만한 녀석이 해맑게 걷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면서 일단은 거실로 데리고 나갔죠. 추운 바깥으로 내보낼 수는 없으니 일단 집을 만들어줘야겠더라구요.

 

그런데... 집 꾸미는 동안 잠시 옆에 뒀는데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어요. 놀라서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제가 그때 안경을 안 쓰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움직이는 물체까지 못 보는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주위를 뒤졌는데 도무지 안 보였어요.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얼른 안경을 찾아 쓰고 다시 뒤졌는데... 그랬더니 보이긴 보였는데... 짜부되었다고 하나? 파리채로 한대 맞은 거미처럼 찌그러져있더라구요ㅠ 거미 한대 치면 다리를 전부 안쪽으로 오므리면서 죽잖아요. 그런 모습이었어요. 제가 거미를 찾다가 얇은 브로슈어 하나를 옆으로 옮겼는데 하필이면 거미 위로 옮겨버렸던 거예요.

 

종이 몇 장의 무게에 다쳐버린 연약하기 짝이 없는 작은 생명체ㅠ 너무 미안해서 제발 살아나 달라고 열심히 간호(?)하기 시작했어요. 배가 터지면 거의 끝이라고 봐야 하는데 그나마 다행히 배는 괜찮아 보였어요.

 

내장도 괜찮아야 할 텐데, 일단 겉으로 보이는 문제는 오른쪽 두 번째 다리였어요. 애가 작아서 어떻게 다친지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다리를 특히 잘 못 움직이더라구요.

 

아래 사진은 나뭇가지에 간신히 붙여둔 모습이에요. 다친 다리가 그 바로 앞 다리에 살짝 꼬여 있었는데 이쑤시개로 조심조심 풀어준 거예요.

 

 

그렇게 열심히 뽈뽈 걸어 다니던 애가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요.

 

 

이 와중에 얼굴이 까만게 넘 이뻤어요.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제 팔까지 온 건지, 모든 과정이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애가 다리를 파르르 떨기만 할 뿐 움직이질 못해서 일단은 쉬게 해줘야 할 것 같았어요. 집은 그냥 플라스틱 통에다 축축한 흙을 살짝 깔고 나뭇가지랑 낙엽을 넣어줬어요.

 

아래 사진은 다친 이후 반나절 정도 지난 뒤의 모습이에요. 다행히 스스로 낙엽 뒤로 가서 거미줄 몇 가닥 쳐두고 매달려 있더라구요. 꺼내서 보고 싶었지만 참고 가만히 뒀어요.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어요. 이런 거미는 일단 한번 다치면 은근히 잘 죽거든요. 특히 작은 애들은 그냥 훅 가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크게 기대하진 않았는데 아침에 보니 다행히 살아있더라구요. 처음 발견했을 때 정도는 아니어도 활발하게 잘 돌아다니고 있었고, 걱정했던 오른쪽 두 번째 다리도 거의 멀쩡히 사용하고 있었어요. 바닥에 내려와서 흙에 있는 수분을 빨아먹기도 했답니다.

 

아래는 귀뚜라미 고기를 먹고 있는 꼬마 거미의 모습이에요. 마침 나뭇가지 위로 올라와 있길래 입쪽에 고기를 살짝 닿게 하고는 나뭇가지에 붙여줬어요. 입에 닿았을 때 맛이 괜찮았는지 신나게 먹기 시작했어요.

 

 

맛있는 것에 환호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게 웃겼어요ㅎㅎ

 

 

정말 신났죠ㅋㅋ

 

 

뒷다리가 들린 건 어딘가 붙어 있는 거미줄 때문이에요. 발 끝이 바늘처럼 뾰족한 게 매력이에요.

 

저희 타란툴라들은 발바닥이 두툼한데다 살짝 접착성도 있어서 이런 플라스틱 벽도 곧잘 걸어 다니는데 얘는 많이 달랐어요. 발 끝이 너무 뾰족해서인지 자꾸 미끄러지고 잘 못 올라오더라구요. 최소한 일반 벽지 정도의 텍스처는 있어야 쉽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살아서 정말 다행이에요ㅎㅎ 다치게 한 거 미안하니까 열심히 잘 돌봐줘야겠어요. 집거미는 길면 1-2년 산다는데 과연 어떨지 지켜봐야겠어요. 너무 작고 약해서 다루기가 조심스럽네요. 일단 이번 얘기는 여기까지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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