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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먹이곤충

고난의 귀뚜라미 사육 II

by 라소리Rassori 2019.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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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계속되어 2탄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것도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말입니다.

네, 또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우선 소형 귀뚜라미들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어제 변화를 준 뒤 오늘 확인해 본 결과 죽거나 먹힌 개체가 없었습니다. 바닥에 죽어 있는 것을 매일 치워줘야 했는데 오늘은 치울 게 하나도 없어서 정말 뿌듯했답니다. 항상 비실거리는 것들이 있었는데 오늘은 눈에 띄는 녀석마다 다 팔팔했습니다. 어떻게 했는지는 "고난의 귀뚜라미 사육" 첫 번째 글을 참고해 주세요. → https://rassori.tistory.com/20


어제 귀뚜라미들에게 처음으로 밀웜을 잘라주었는데요, 아래 사진 위쪽에 밀웜 꼬리가 껍데기만 남아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저런 찌꺼기들을 다 꺼내고 오늘 밀웜을 또 새로 잘라주었습니다.


이제 잘 해결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냐, 그것은 바로 소형은 성공한 대신 핀헤드를 지켜내는데는 대실패를 했기 때문입니다. 대충 수십 마리는 있던 핀헤드들이 4마리만 남기고 전멸했습니다. 서로 얼마나 먹어댄 건지 죽은 녀석들의 흔적도 얼마 없을 정도였습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귀뚜라미 동족상잔 및 폐사에 대해 "하루컷"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봤는데 (하루 만에 다 죽는 경우도 있다는 뜻으로) 그게 과장이 아닌 것을 확실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핀헤드들은 기온이 좀 낮은 창가 자리에서는 그렇게 심하게 죽어나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 모르고 밀웜 등의 육식을 공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좀 잡아먹긴 했어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창가에서는 소형들이 많이 죽었었죠. 좀 심각한 수준이어서 제가 부랴부랴 좀 더 깊은 검색을 하게 되었던 거고요.


어제 제가 새로 알게 된 모든 조치를 취한 뒤, 소형은 더 이상 폐사하지 않았으나 핀헤드는 거의 전멸한 이유. 그것은 바로 높아진 온도였습니다. 당황스러운 게, 그렇게 심하게 온도가 높은 곳에 옮겨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방바닥에 두었지만 보일러가 돌아간다고 해서 시골에 불 때는 것처럼 방바닥이 뜨거워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손대면 살짝 따뜻한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겨우 그 정도로 통 내부가 너무 건조해져 버린 것입니다. 

물에 적신 작은 휴지 조각이 통 안의 습도를 너무 높여서 소형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휴지도 다 뺀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핀헤드들이 수분을 섭취할 방법은 건조해서 금방 말라 버린 채소, 그리고 동족밖에 없었던 거죠. 밀웜 조각도 넣어줬었지만 얼린 걸 녹인 거라 수분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위 사진은 밀웜 껍질과 채소 찌꺼기를 치운 후입니다.) 혹시 몰라서 소형들이 들어 있는 통도 방바닥에서 작은 박스 위로 올려두었습니다. 너무 습해도 죽고 너무 건조해도 죽으니 습도 조절이 정말 관건입니다.

겨우 살아남아서 비실거리는 네 마리의 핀헤드는 제가 최근 너무도 아껴 마지않는 사마귀 약충 먹으라고 사마귀 통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모두 물휴지로 달려가서 허겁지겁 수분을 섭취하는 모습입니다. 사마귀 통은 환기가 잘 되는 환경이라 물휴지를 넣어둬도 위험할 정도로 습해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한참 동안 물을 먹은 뒤엔 그중 가장 작은 녀석이 사마귀에게 먹혔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는 밀웜을 작게 잘라서 핀헤드들에게 한 조각 주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 후 얼마 안 돼서 밀웜의 껍질만 남은 모습입니다. 통 때문에 선명하게는 안 보이지만 빨대처럼 안이 비어있는 밀웜 조각이 바닥에 보입니다.


물과 밀웜을 먹고 빵빵해진 세 마리의 핀헤드 중 가장 빵빵한 녀석을 사마귀 약충이 두 개의 낫으로 가볍게 주워 먹었습니다. 핀헤드 입장에서는 그저 나무젓가락 위로 산책을 갔을 뿐인데 그 위에 저런 애가 매달려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사마귀는 아직 2cm 정도밖에 안되는 정말 귀여운 녀석입니다. 빨리 이 아이 얘기도 하도록 서둘러 보겠습니다. 먹성도 좋고 성격도 착하고 너무나 기특한 아이랍니다. 혹시라도 일주일 이상 여행을 가게 될까봐 사마귀를 더 못 기르고 있는데 여행만 아니라면 여러 마리 키우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마귀란 녀석들이 그만큼 말도 못하게 매력이 있어요.

아래 사진에서는 제 폰이 왔다 갔다 하니까 사마귀가 핀헤드를 먹다가 고개를 돌린 모습입니다. 물론 저러다 바로 다시 냠냠 맛있게 다 먹었습니다. 배가 풍선처럼 부를 때까지 먹는 녀석이라 남은 두 핀헤드는 꺼내서 다른 통에 옮겨두었습니다.


어제는 소형 폐사로, 오늘은 핀헤드 폐사로 이틀 연속으로 충격입니다. 소형은 이제 감을 잡았고, 핀헤드는 오늘 새로 주문한 것을 받으면 예전처럼 창가에서 키워야겠습니다.

오늘은 1-2도 정도 더 따뜻한 장소여도 핀헤드에게는 치명적일 만큼 건조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다른 계절이면 몰라도 추운 계절에는 난방으로 인해 공기가 많이 건조해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10월부터 보일러를 틀기 시작하면서 제가 키우던 식물 새싹들도 갑자기 우르르 죽어버리고 저희 지네도 힘들어하고 있어서 골치가 조금 아프네요. 저도 피부가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라 하루에 몇 번씩 로션을 바르는데 그냥 가습기를 사야겠습니다. 짐 늘이는 것을 제일 싫어해서 한숨이 살짝 나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귀뚜라미 사육에 대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들을 겪어 보니 확실히 밀웜이 튼튼하고 키우기도 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여도 왠지 귀뚜라미들에 비해 덜 미안하고요. 하지만 밀웜만 먹이면 키우는 개체들의 몸에 지방이 많이 끼어서 안 좋다고 하니 결국 귀뚜라미를 사육하고 그에 대해 공부를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아마 파충류나 절지동물 사육을 시작함에 있어서 가장 큰 허들이 귀뚜라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 경우만 봐도 타란툴라나 지네를 너무 키우고 싶어도 먹이 곤충들, 특히 귀뚜라미 때문에 선뜻 시작을 못했던 긴 시간이 있었답니다. 큰맘 먹고 시작한 후에도 역시나 귀뚜라미를 다루는 부분에서 계속해서 고난이 이어지고 있고요.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익숙해질 테고 별일이 아닌 것이 될 거라 믿습니다. 꾸준히 상황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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