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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먹이곤충

고난의 귀뚜라미 사육 III (ft. 왕사마귀 약충 쥐미)

by 라소리Rassori 2019.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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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가 되어서는 안 되는 주제이건만 또 쓰게 되었습니다. 정말 가지가지하는 대환장 귀뚜라미가 이번엔 스티로폼 박스를 갉아먹었습니다. 사진 중간을 보면 갉아먹은 부분이 보입니다.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바닥에도 갉아먹은 흔적이 심하게 있었습니다. 이틀 사이에 이렇게까지 하다니, 정말 끊임없이 빅엿을 안겨주는 귀뚜라미들입니다.


택배를 받자마자 튼튼한 리빙박스로 옮겼어야 했는데 미리 사놓지 않아서 그냥 스티로폼 박스를 쓰기로 한 것이 실수였습니다. 크기도 딱 좋고, 핀헤드가 쓸 집을 만드느라 기운을 다 써서 큰 귀뚜라미 사육통까지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습니다.


꽈드득 하면서 자꾸 뭘 물어뜯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저 제발 아니길 바랐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스티로폼을 이빨로 뜯을 수 있을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설마가 사람을 잡았네요. 오늘 아침 통 안을 들여다보니 가장 큰 녀석 중 하나가 제가 보고 있는데도 대놓고 스티로폼에 머리를 쑤셔 박은 채로 스티로폼을 냠냠 맛있게 먹고 있더군요. 기겁을 해서 사진은 못 찍었지만 정말 턱을 열심히 움직여가며 먹고 있었습니다. 먹으라고 준 밀웜 조각, 귀뚜라미 사료, 호박, 당근 다 제쳐두고 굳이 스티로폼을 뜯어먹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뒤늦게 부랴부랴 귀뚜라미가 스티로폼을 먹냐고 검색을 해보니 먹는다는 글들이 나오는군요. 스티로폼 박스를 쓰면 반드시 뚫고 나온다는 정보도 있었습니다. 이제야 귀뚜라미에 관해서는 모든 것이 해결된 느낌이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기니 귀뚜라미들이 정말 원망스럽네요.

우선 제 눈에 걸린 것이 큰 귀뚜라미였기 때문에 큰 귀뚜라미들이 저지른 짓일 거라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스티로폼을 물어뜯을 수 있을 정도로 턱이 크니까요. 길게 생각할 겨를 없이 2cm 정도 되는 큰 녀석들부터 하나씩 잡아서 빼내기 시작했습니다. 스티로폼이 몸안에 가득한 귀뚜라미들을 사육통 안에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1cm가 넘는 귀뚜라미들은 제가 키우고 있는 아기 절지동물들에게 먹이로 주기에는 너무 커서 우선적으로 작은 귀뚜라미부터 쓰게 될 텐데, 그 사이 큰 녀석들이 죽는다면 작은 녀석들이 그걸 먹을 테고, 결국 작은 귀뚜라미들도 스티로폼을 먹는 결과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현행범 및 용의자 골라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골라낸 큰 것들은 총 20마리 정도였습니다. 처음 받았을 때는 너무 커서 보기만 해도 기절할 것 같더니 분노 파워 때문인지 오늘은 손으로 잡아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핀셋은 너무 잘 피해서 짜증이 나서 그냥 손으로 잡았습니다. 어리바리한 줄 알았더니 위기에 처하니 바퀴벌레와 비슷한 번개 같은 속도의 지그재그의 움직임을 보여주더군요.

스티로폼을 먹은 게 확실한 가장 큰 사이즈들만 골라서 처단했는데 그 아래 크기인 1센티 이상 사이즈들은 그저 스티로폼을 먹지 않았길 바랄 뿐입니다. 1센티 이하 작은 귀뚜라미들을 한참 동안 피딩에 쓸 예정이니 만약 먹었다 해도 그 사이에 배변으로 빠져나오기를 기대해봐야겠습니다. 오늘도 또 이렇게 힘들게 한 가지 배웠네요. 귀뚜라미는 스티로폼을 뜯어먹는다!

아래 사진은 내부를 힘들게 테이프로 두른 쇼핑백에 새 집을 마련한 귀뚜라미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밀웜 세 마리가 번데기가 되어서 머리 부분을 살짝 잘라서 귀뚜라미들에게 던져줬더니 바로 달려들어 먹었습니다. (안 자르고 그냥 줬더니 번데기가 퍼덕거려서 귀뚜라미가 안 먹더군요.) 사진에서 위층에 있는 번데기도 1시간쯤이 지난 지금은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습니다. 얼린 밀웜도 잘라줬는데 다 안쪽으로 가지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먹이를 물고 안으로 들어가는 건 마치 개미들 같네요.  


쇼핑백을 너무 큰 걸로 한 것 같아서 귀뚜라미들은 좋겠지만 저는 시무룩합니다. 이쁜 절지동물 키우려고 했더니 그 먹이인 소형 귀뚜라미와 핀헤드가 각각 너무 큰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두 번째 중요한 정보: 귀뚜라미는 의외로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사육통을 높게 만들어서 망으로 된 뚜껑을 덮어두거나 아예 열어두어서 환기가 잘 되도록 해야 폐사 확률이 뚝 떨어집니다. 저는 일회용 플라스틱 통 뚜껑에 송곳으로 구멍을 내고 닫아두고 키우는 바람에 그렇게 폐사를 시켰던 것입니다. 이제는 환기 문제도 해결했고 스티로폼 먹는 사실도 알았으니 앞으로는 괜찮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스티로폼 먹은 문제 빼고는 현재까지 폐사 없이 무탈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누가 방문하면 곤란하니 얼른 불투명 리빙박스를 사야겠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난리를 치는 동안 저희 귀여운 왕사마귀 약충 쥐미에게는 핀헤드 중에서 가장 큰 녀석을 골라서 주었습니다. 녀석은 제가 그 핀헤드를 먹이기 위해 어떤 고초를 겪고 있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몰라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게만 커줬으면 좋겠습니다. 


다 먹은 뒤엔 얼마 전 구입한 uvb 램프 아래에서 광합성을 하는 모습입니다. 이걸 30cm 거리에서 매일 두 시간 쬐어주면 초록색 사마귀가 된다던데 이틀째인 지금까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참고로 쥐미는 이 빛이 좋은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저 자리에서 2시간 넘게 꼼짝 않고 빛을 받았습니다. 사마귀는 이렇게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는 게 정말 좋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바닥으로 내려와서 제가 모르고 밟을 수 있기 때문에 통 밖으로 나와 있는 이 두 시간은 내내 긴장을 하게 됩니다. 곧 탈피를 할 것 같은데 부디 무사히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좀 쉬려고 했더니 바로 리빙박스를 사러 나가야겠습니다. 지금 보니 핀헤드들이 제가 테이핑을 허술하게 해 둔 틈을 파고 들어가서 또 난리가 났네요. 제가 유체들을 키우다 보니 큰 것들은 안 아까운데 핀헤드는 너무 아깝습니다. 필요할 때 바로바로 매장에 가서 살 수도 없는 것들인데 어서 구해줘야겠습니다. 제발 고난의 귀뚜라미 사육 4탄은 쓸 일이 없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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