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타란툴라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것입니다. 커다란 거미 사진이 많으니 부디! 주의해 주세요.
이번 얘기는 카엥이가 1월 8일에 탈피한 뒤의 얘기입니다. (지난번 카엥이 얘기 링크)
제가 현재 타란툴라 유체를 셋 키우고 있는데, 이번에 나오는 카엥이는 제 인생 첫 타란툴라이고 가장 다루기 힘든 녀석이에요. 애는 착한데 그냥 좀 다루기가 힘들어요. 셋 중 가장 똑똑하기도 한데 저는 얘가 머리를 좀 안 굴리면 훨씬 편할 것 같네요.
2020년 1월 14일
타란툴라는 성체의 경우 탈피를 하고 나면 2주 정도 기다려줘야 하지만 카엥이는 조그만 유체이기 때문에 탈피한지 6일 후 집을 갈아주기로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서두른 감이 있는데... 어쨌든 그렇게 했어요.
참고로 귀뚜라미나 사마귀와는 달리 타란툴라는 성체가 된 이후에도 탈피를 한답니다. 종과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년에 한두 번 정도 해요. 2년에 한 번 정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성체 이후에도 탈피를 한다는 건, 다리를 잘리거나 하면 탈피를 하면서 회복이 되니 좋은 점도 있지만 4-5년 이상 키운 정든 타란툴라가 탈피에 실패해서 죽기도 하기 때문에 그저 좋은 일만은 아닐 듯해요.
카엥이 집갈이는 제가 계속 벼르고 있던 거였어요. 마지막 집갈이를 한 게 두 달 정도 지난데다가 무엇보다 카엥이 덩치가 커져서 은신처가 많이 기울어진 상태였거든요.
카엥이는 놀라면 이리저리 날아다니다시피 달리기 때문에 집 갈아주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맘에 계속 걸려서 그냥 둘 수가 없었어요.
다이소 리빙박스 안에다 새 집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제 카엥이만 꺼내서 집어넣으면 되네요. 아휴 간단해!😂
헌집을 부수기 전에 마지막으로 카엥이의 건축물들을 찍어보았습니다.
카엥이는 오른쪽 위에 기울어진 은신처 아래에 숨어 있어요. 집이 무너지든 말든 미친 듯이 땅을 파는 카엥이를 상상하니 너무 귀여웠어요.
은신처 밑 출구와 함께 만들어 둔 터널이 정말 멋집니다. 카엥이와 렌지(카엥 크라찬, 오렌지 바분)는 항상 이렇게 지하를 이용하더군요. 반면 리니(그린보틀블루)는 땅을 안 파고 지상을 이용하고요.
코너는 찢겨져 있는데 그건 저기서 카엥이가 탈피한 이후 제가 핀셋으로 탈피 껍질을 꺼냈기 때문이에요.
이제 은신처를 핀셋으로 꺼내고 거미줄로 만든 땅굴을 통째로 들어 올려서 카엥이를 옮깁니다. 처음엔 전혀 안 보였는데 거미줄을 조심조심 찢다 보니 어느 순간 다리가 보였어요.
가장 숨막히는 순간입니다. ㅋㅋ 물리는 것보다는 미친 듯이 튀어나갈까봐요. 그럴 때마다 정말 빛의 속도를 보여주거든요.
카엥이랑 렌지 중에서 실제로 누가 더 빠른지 정말 궁금해요. 육안으로는 둘이 비슷한 것 같아요.
오 웬일로 쉽게 새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예전 집과 흙은 응가가 가득할 것이기 때문에 카엥이만 오도록 살살 유도해서 옮긴 거예요.
이때가 아니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기 때문에 조심스레 새집을 들고 꺼내서 사진을 찍었어요. 이렇게 볼 때마다 너무 멋져서 멍하니 보고 있게 됩니다. 아기 때가 이런데 다 크면 얼마나 더 멋질까요?
그런데 이번엔 그리 오래 보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사진을 찍고 뚜껑을 닫으려는 순간 카엥이가 붕 날다시피 뛰쳐나갔거든요. 날개도 없는데 날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움직임으로 그냥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요.
이때 사람이 잘못 움직이면 타란툴라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일단은 차분하게 캐치컵을 집어 들었습니다. 집갈이 같은 거 할 때면 탈출을 대비해서 꼭 옆에 두어야 하는 것이죠.
이리저리 열심히 뛰던 카엥이가 침대 밑으로 들어가려다 몸을 반쯤만 집어넣고 멈춰섰어요. 그대로 쑥 들어가버렸다면 정말 난감했을 텐데 웬일인지 가만 있길래 조심스레 꼬챙이를 침대 아래로 넣어서 카엥이가 바깥쪽으로 오도록 했습니다.
그런 뒤 캐치컵으로 GET!
이때 컵을 빠르게 콱 닫으면 안 되고 천천~히 해야 해요! 타란툴라는 빛의 속도이다가도 멍하니 있을 때가 있기 때문에 그때를 노려야 합니다.
컵 위로 올라오면 그대로 들어 올리면 되는데 안 올라와서 바닥 쪽으로 평평한 루바망을 슬쩍 집어넣었어요. 그런 뒤 컵을 치우고, 루바망을 새집 위로 가게 해서 카엥이 엉덩이를 붓으로 살살 밀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탈출의 위험이 크지만 절지동물은 보통 엉덩이를 건드리면 앞으로 쭉쭉 나아가기 때문에 그러길 바라면서 천천히 이동시켰어요.
사실 위 사진의 상태에서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면 카엥이가 크게 다칠 수 있어요. 타란툴라는 배가 약해서 낮은 높이에서도 배가 터질 수 있거든요. 그나마 유체는 몸이 가벼워서 그럴 확률이 성체보다는 낮은데, 그래도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아요. (반복해서 얘기했던 거지만 정말 중요한 거라서요!)
다행히 무사히 아래까지 내려갔습니다. 그 즉시 사육통 뚜껑을 콱! 닫아주었어요. 휴!
실제로는 소리 안 나게 살살 닫았는데 그 진동 때문에 놀라서 또 우다다 달렸습니다.
막상 달려가고 보니 물그릇이!
물을 느끼자마자 이런 와중에도 물을 마셨어요.
사진에 필터를 살짝 넣어서 그런데 원래는 사진보다는 시커먼 색이에요. 탈피한 지 일주일쯤 지난 시점이라서인지 색이 더 연해 보이네요.
새집은 바닥재를 이전보다 두껍게 깔아주었습니다. 땅굴 파는 습성 있는 애들은 흙을 넉넉하게 넣어줘야 하더라구요.
어떤 유튜브 보니까 천장이 높으면 타란툴라가 천장 쪽에 붙어있다가 떨어져서 배를 다칠 수 있다는데 카엥이의 경우 일단 땅굴 파고 들어가면 물 마시러 나오는 게 다이기 때문인지 아직까진 별일 없었어요. 그리고 천장에 가더라도 살살 내려오지 뚝 떨어지진 않더라구요. 각자의 타란툴라의 습성에 맞춰서 알아서 바닥재 높이를 정하면 될 것 같아요.
물을 마신 뒤엔 또 여기저기 돌아다녀 봅니다.
평소에 필사적으로 숨는 아이라도 집갈이 할 때면 그냥 자포자기하고 여기저기 탐색하는 모습을 보여요. 아니면 렌지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거나요.
바닥에 내려와서 가만히 쉬고 있길래 얼른 자를 갖다 대 보았습니다.
분명 많이 큰 느낌인데 막상 몸길이를 재 보니 그리 크진 않네요. (몸길이 15cm 가자, 카엥아~)
이날은 카엥이가 너무 긴장을 해서 피딩엔 실패했어요. 그 이후부턴 은신처 안에 들어가서 꼭꼭 숨어 있었답니다.
1월 18일
그로부터 3일 후, 자기 전에 귀뚜라미 자른 것을 플라스틱 접시(제가 가위로 잘라 만든 것) 위에 얹어두고 잤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음식을 가져가서 먹었더라구요! 이렇게 접시에 음식을 두면 항상 다음날 보면 그대로 있었는데 이렇게 빈 접시를 본 건 이날이 처음이었어요.
옆집에 사는 렌지의 접시도 비어있었습니다!
사육자로서 정말 기쁜 날이었어요. 이렇게만 먹어준다면 앞으로도 정말 편하겠다는 생각이었죠. 아침이면 항상 귀뚜라미나 밀웜 조각이 까맣게 변해있는 걸 울적하게 치웠어야 했는데 빈 접시 설거지하니까 너무 좋더라구요.
그러나 며칠 후...
카엥이 사육통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얘기는 다음 카엥이 얘기에서 할게요.ㅋㅋ
이번 사육 일기는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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