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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먹이곤충

네 다리 귀뚜라미 계미 이야기 1 - 계미를 구출하다

by 라소리Rassori 2020.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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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절지동물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것입니다. 귀뚜라미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분명히 경고했는데도 굳이 보고 뭐라 하지 않으시길.

 

얼마 전 번식Five 이야기를 3편으로 마무리했는데 이번엔 걔들이랑 같은 세대 귀뚜라미 중 "계미"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2019년 12월 22일


이 당시에는 제가 상당히 많은 수의 귀뚜라미를 키우고 있었어요. 보통 귀뚜라미를 주문하면 꽤 많은 양이 오거든요. 귀뚜라미들을 먹을 애들은 많지 않은데 너무 많이 오면 굉장히 골치가 아파져요.

처음에 핀헤드(작은 개미만한 귀뚜라미 새끼) 시절엔 그래도 사육할만한데 성장이 너무 빠르다 보니 편한 시기는 잠깐이에요. 2주 정도만에 상황이 많이 달라져요.

특히 한창 성장하는 1cm 정도의 귀뚜라미들은 정말 많은 양의 밥을 먹어요. 그만큼 많이 싸고요. 제가 키우는 절지동물들보다 먹이 곤충에 손이 몇 배로 더 가는 상황이 되어버리죠.

그래서 요즘은 귀뚜라미를 최소한의 수만 유지하려고 애쓰는데, 지금 얘기하는 이 시기엔 그런 요령이 없어서 고생을 좀 했어요. 그때는 귀뚜라미 사육통이 세 개나 되었는데 번식Five 팀 사육통 말고는 도축될 운명의 귀뚜라미들이 바글바글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그 귀뚜라미들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애가 있었어요. 이 귀뚜라미는 곤충에게 아주 중요한 뒷다리 두 개가 없었답니다.

귀뚜라미가 바글바글한 상황이라도 매일 계란판을 뒤적거려가며 애들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가능하면 갓 탈피한 놈을 먹이로 쓰려고) 얘는 이날 처음으로 보는 거였어요. 움직임이 좀 불편한 애는 바로 눈에 띄거든요. 이런 상태의 귀뚜라미는 분명히 그 전날까지만 해도 없었기 때문에 탈피하다가 동료에게 다리 두 개를 먹혔다고 봐야 했어요.

탈피시에는 어깨 쪽부터 껍질에서 나오기 때문에 보통 머리나 몸통부터 먹히는데 가끔 이렇게 중간 다리나 뒷다리를 먹히는 애들도 있어요. 귀뚜라미는 몸이 빨리 마르는 편이어서 탈피 직후에도 몇 분만 있으면 도망을 갈 수 있는데 그 처음 몇 분 사이에 다른 귀뚜라미들이 달려들어 먹는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아무튼 발견한 즉시 일단 따로 분리를 했어요. 저는 사실 이렇게 다친 애들이 다음 탈피 때 먹히든 말든 크게 상관하지는 않아요. 그런 걸 상관하면 일이 정말 끝도 없이 늘어나거든요.

누굴 하나 구해내면 걔를 키울 사육통을 또 따로 해야 하는데 사육통은 최대한 적은 수로 유지하는 게 좋아요. 하나라도 더 늘면 그만큼 더 귀찮고 번거로워져요.

그럼에도 제가 이 계미라는 애를 따로 격리한 것은 얘가 탈피하면서 다리가 다시 자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에요. (측은지심 X, 단순 호기심 O) 

 


계미가 너무 겁을 내서 일단 숨을 곳부터 만들어 주었어요. 신문지와 계란판 조각을 넣어주니 바로 숨더군요.

(그런데 다 보임)


밥도 푸짐하게 차려 주었어요. 유기농 개사료, 밀기울, 엿기름, 애호박 등이에요. 얘 입장에서는 전쟁 같은 단체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초호화 호텔에서 단독으로 살게 된 거죠.

(얼굴을 빼꼼 내밀고 보고 있는 계미)


12월 23일


귀뚜라미는 원래 이렇게 어리고 몸이 가벼운 애들은 벽을 잘 타고 올라가요. 점프도 잘하죠.

그런데 계미는 뒷다리가 없어서 아래 사진처럼 매달려 있거나 걸어다니는 거 말고는 할 수 없었어요. 이런 통에 뚜껑을 열어 둬도 절대 나올 수가 없는 거죠.


이때 계미가 몸길이가 1cm 조금 안 되었을 때라 정말 밥을 잘 먹었어요. 귀뚜라미는 이러다 성충이 되기 직전 단계가 되면 갑자기 식욕이 줄어든답니다. 성충도 그리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에요. 요런 성장기 애들이 무시무시하게 먹는데, 너무 수만 많지 않으면 사실 이 시기의 귀뚜라미들이 키우는 재미가 제일 쏠쏠해요.

먹이 쟁탈전이 심한 곳에 살다가 이제는 여유롭게 밥을 먹는 계미입니다.



손에 올려두면 많이 놀라지만 음식을 입에 갖다대면 정신없이 먹어요. 바나나도 줘보고 삼겹살 구운 것도 또 줘봤는데 역시 바나나가 인기가 좋았어요. 단맛을 별로 안 좋아해서 별로 익지 않은 걸로 줘야 해요.


12월 26일


조그만 귀뚜라미 한 마리이다 보니 계란판 한 조각으로 충분히 집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렇게만 해둬도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답니다.


채소는 하루도 안돼서 다 쭈글쭈글해지고 밀기울은 채소의 물기에 젖거든요. 그나마 겨울이어서 하루에 한 번만 갈아주면 되었는데 여름이었으면 골치 아팠을 것 같아요.

사육통도 최소 이틀에 한 번은 씻어 줘야 했어요. 얘는 혼자여서 그렇지만 번식Five의 집을 포함한 다른 사육통은 매일 한 번 청소하지 않으면 난리가 났어요. 정말 집을 지저분하게 쓰는 애들이거든요.

 

12월 27일


사육통을 씻는 동안은 잠시 다른 통에 옮겨 두는데 그때 신선한 물을 먹여요. 사육통에서는 채소에 묻은 물로 수분을 섭취하게 합니다.


밥을 잘 먹어서 배가 동글동글한 게 정말 귀엽네요.


같은 날, 갑자기 계미가 탈피를 시작했어요.

계란판을 꽉 잡고 있어야 할 뒷다리가 없다 보니 다른 귀뚜라미처럼 물구나무 자세로 하지 않고 옆으로 하더군요.


걱정했는데 용케 무사히 탈피를 마쳤어요.


안타깝게도 뒷다리는 아주 조금만 볼록 튀어나온 게 끝이었어요. 얘들은 타란툴라처럼 잘 재생되진 않나봐요.

그래도 더듬이는 잘 재생되던데 지네의 경우엔 다리는 잘 돌아오지만 더듬이는 원래대로 안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재생 능력도 다들 조금씩 다른 모양이에요.

(아무리 귀뚜라미라도 탈피 직후엔 요령 없이 건들면 다쳐요.)


시간이 지나면서 흐물흐물했던 몸이 형태가 잡히고 색깔도 점점 어두워집니다.



성격도 착한 애가 얼굴도 정말 귀여워요.


12월 29일

색깔과 형태가 완전히 잡혔어요.


탈피 직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다리 두 개가 없어서인지 또래의 다른 귀뚜라미에 비해 크기가 많이 작았어요.


그래도 밥은 누구보다도 잘 먹는 계미예요.


손바닥에 물방울을 떨어트려서 물도 먹여 봅니다.


이 당시 저희 집 귀뚜라미 중에서 얘가 제일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래는 위에 올린 기간 내에 찍은 비디오를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린 것입니다.

 

 

시간이 가면서 계미 촬영을 게을리하는 바람에 (다른 애들 찍느라 바쁘기도 했고) 얘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저도 모르겠네요. 막상 포스팅을 작성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기록해둔 것만이라도 열심히 올려 보겠습니다.

이번 얘기는 여기까지 할게요. 그럼 전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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