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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지네

왕지네..가 아닌 홍지네 유체 타리가 제 곁을 떠났습니다ㅠ

by 라소리Rassori 2020.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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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 사진 주의해 주세요! 이곳은 절지동물 사육 블로그입니다.*


오늘은 속상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워낙 잘 죽는다고 알려진 어린 절지동물들을 키우면서 늘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정말 죽어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키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군요. 잘 지내는 타리의 모습을 유튜브에 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이렇게 되었네요.

10월 중순에 우암공원에서 데려왔던 왕지네 유체 타리에게 밥을 주는 날이었습니다. 6일에 한 번 피딩을 하고 있었고, 지금껏 밥을 거부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지개 다리를 건넜던 이날따라 웬일로 밥을 전혀 먹지 못하더니 갑자기 괴로워하면서 벽에 머리를 문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예쁘게 뻗어 있던 더듬이도 저절로 꾸깃꾸깃 구겨지더군요. 지난번 피딩 때 평소보다 조금 일찍 식사를 마치길래 탈피를 하려는 건가 했는데 그때부터 이미 뭔가 안 좋았던 모양입니다.

검색을 해보니 확실치는 않아도 증세가 임팩션(impaction)인듯 했습니다. 임팩션은 지네 같은 절지동물뿐 아니라 파충류에게도 생기는 증세인데, 흙처럼 소화가 안 되는 것을 자꾸 먹어서 장이 막히는 것을 뜻합니다. 지네는 몸과 함께 소화기관도 길기 때문에 임팩션의 위험이 다른 절지동물에 비해 큽니다.

타리의 경우 예전에 습한 흙속에 오래 있으면서 다리 한쪽 끝이 떨어져나가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는데요, 정확히는 몰라도 진균 감염의 증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균 역시 지네에게 잘 일어나는 질환인데 습도가 너무 높거나 하면 걸린다고 해요. 쉽게 말하면 몸이 썩어가는 증세와 비슷합니다. 다리쪽만 거뭇거뭇해지면 탈피한 뒤 싹 낫기도 하는데 몸통, 더듬이, 독아 등 더 중요한 부분이 감염되기 시작하면 깨끗이 나을 가능성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진균 증세가 보이는 즉시 흙을 완전히 없애는 사육자도 있던데 저는 타리가 습도가 높은 것을 너무나 좋아해서 흙을 아예 없애진 못했답니다. 대신 깨끗한 흙으로 갈아주었고, 흙은 건조한 상태로 유지하면서 분무기로 벽에 물을 자주 뿌려줬어요. 바닥에는 물그릇 대신 물을 흠뻑 머금고 있는 스펀지 조각을 하나 두었구요. 그걸로 진균 증세가 더 악화되는 것 없이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중이었습니다.

아래는 타리의 생전 사육 환경입니다. 습도 조절만큼 환기도 중요해서 환기 구멍이 많은 사육 케이스를 사용했습니다. 덕분에 흙이 젖어도 빨리 마르는 편이었어요.


타리는 스펀지에서 흘러나온 물에 흙의 일부가 젖으면 흙 위로 가고, 그렇지 않으면 습도가 높은 스펀지 쪽으로 왔습니다. 예전에 다리 하나 다친 이후부터는 웬일인지 저를 봐도 숨지 않아서 사진은 언제든 쉽게 찍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언급한 바 있듯 몸길이 5센티 정도밖에 안 되는 어린 왕지네였답니다. 지네를 검색해 보면서 홍지네라는 종도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비슷하게 생긴 것이 어쩌면 홍지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티로폼 은신처는 가볍고 바람이 잘 통할 것 같아서 두었는데 타리가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아래의 사진에서처럼 항상 축축한 곳을 골라서 쉬었어요. 사육 초반엔 항상 축축한 흙 속을 파고 들어가서 온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 한쪽 끝이 떨어져 나가는 일이 생겼는데 그냥 이렇게 흙 위에 쉬는 거면 몸에 바람이 통하는 거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 그냥 뒀어요. 


반짝거리는 몸과 빨갛고 까만 색깔이 너무 예뻐서 항상 만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네요. 어려서인지 먹이를 사냥하진 못했지만 제가 먹기 쉽도록 밀웜을 잘라서 주면 착하게 잘 먹었어요. 아래 사진에서는 그 잘렸던 다리가 보이네요. 왼쪽 밑에서 7번째 다리였습니다. (터미널 렉 제외)


아래 사진은 작년 12월에 찍은 건데 이때 가만히 보고 있으니 독아와 입이 오물오물거리는 게 보였어요. 그냥 단순한 그루밍인지, 아니면 흙을 먹고 있는 건지 좀 불안했는데 흙을 먹고 있었던 걸까요... (참고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타리의 사진 중 하나입니다. 반짝이는 머리와 몸통도 그렇지만 호박색 구슬이 이어진 듯한 더듬이가 특히 예쁩니다.)


타리는 여러 포즈로 쉬곤 했는데 아래 사진에서는 몸을 반으로 접다시피 한 상태로 있길래 얼른 찍어보았어요. 머리가 쏙 나와 있는 게 너무 귀엽더라구요. 이날은 흙도 타리가 딱 좋아하는 상태로 젖어 있어서 무척 행복해 보였답니다. 타리가 늘 행복할 수 있게 흙을 물에 푹 적셔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몸이 아파지니 이렇게 가끔씩만 축축한 흙을 즐기게 해주었어요. 그나마도 반나절도 안돼서 다 말라버렸지만요.


아래 사진은 타리가 죽기 6일 전, 즉 마지막 식사 때였네요. 잘 먹는 것 같았는데 평소보다 빨리 그만 먹고 돌아서더라구요.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임팩션 같은 큰일이 벌어졌을 줄은 몰랐네요.


그리고... 마지막 날이 찾아왔답니다. 며칠 내내 시들시들하는 것도 없이 어느 순간 갑자기 죽어가기 시작했어요. 몸을 비틀면서 많이 괴로워했는데 일반 동물처럼 응급실에 데려갈 수도 없고 너무 불쌍하더라구요. 구슬처럼 예쁘던 더듬이도 저절로 구겨지고 타란툴라들이 죽을 때처럼 앞다리부터 시작해서 death curl도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Death curl은 죽으면서 다리가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현상이에요.
 


까탈스러워서 까타리라고 부르다가 타리라는 이름을 얻게 된 우리 타리... 부디 저세상에서 물 흠뻑 먹은 흙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지네를 키우면서 다른 동물들에 비해 정보가 부족한 것을 많이 느꼈는데 앞으로 계속 키워보면서 경험으로 정보를 습득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절지류 사육자들 사이에서 지네를 키우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고 하는데 부디 시장이 더 커져서 다양한 사육 정보와 전문적인 지식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지네 사육법보다는 지네 퇴치법이 훨씬 더 많이 검색되어서 지네 찬양자로서 검색하다가 슬퍼질 때도 많답니다. 지네가 농작물이 크는 흙 속에 해충 애벌레들을 많이 먹어치우기 때문에 익충이라고 하던데 다리가 많은 생김새 때문에 많은 미움을 받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리면 죽을만큼 아프다는 점도 한몫하겠죠. 그래도 막상 키워보면 정말 깨끗한 생물이고, 언젠가부터 저를 경계하지 않았던 걸 보면 지능이 있는 건지 의심이 될 만큼 똑똑해 보이기도 한답니다.


이번 일로 얻은 교훈:

1. 앞으로 야생의 지네 유체는 채집하지 말자. 성체도 야생의 환경에 익숙한 상태라면 사육이 쉽지 않을 듯.
2. 샵에서 파는 지네도 유체는 데려오지 말자. 사육이 너무 어렵다. 최소한 준성체를 입양하자.

이렇게 말해놓고도 막상 지네 유체를 보면 너무 예뻐서 또 데리고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키우면서 너무 어려웠던 경험을 열심히 상기해서 데려오고 싶어도 꾹 참아야겠어요. 예쁜 아기 사마귀들이나 많이 눈에 띄었으면 좋겠습니다.


★추가

의심했던 대로 역시 타리는 왕지네가 아니라 홍지네였습니다. 네이버를 찾아봐도 저처럼 헷갈려하는 분들이 많고 정보가 너무 없어서 답답했는데 유튜브에서 어떤 고마운 분이 알려주셨답니다!

13-15cm까지 자라는 왕지네와는 달리 홍지네는 약 7cm 정도까지 자라는 소형종입니다. 왕지네는 얼굴에 눈이 보이는데 홍지네는 없다고 합니다. 타리가 죽고 난 뒤 알게 된 사실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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