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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약충 쥐미 일기 - 20191126

by 라소리Rassori 202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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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사진들 진심으로 주의! 답방 부담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쥐미 말고도 주인공이 한 곤충 더 있어요. 바로 아래 사진의 작은 귀뚜라미입니다. 쥐미가 먹고 싶을 때 먹으라고 넣어두었던 거예요. 열심히 더듬이를 움직이며 새로운 환경을 탐색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바로 위에 포식자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순진한 귀뚜라미랍니다. 쥐미가 고개를 뒤로 확 젖혀서 귀뚜라미를 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네요. 


그런데 배고플 시간이 아니어서인지 그냥 보기만 하고 놔둡니다. 배가 고프다면 좀 귀찮더라도 바닥으로 팔짝 뛰어내려와서 먹이를 잡아먹는답니다. 덕분에 귀뚜라미는 원하는 장소를 찾아서 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어요.


그런데 약 4시간 후쯤, 가만히 나무에 붙어서 꼼짝도 않던 귀뚜라미가 갑자기 흔들흔들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뭔가 싶어서 보니 세상에, 저 작은 것이 탈피를 하고 있네요.


사마귀도 그렇지만 귀뚜라미 역시 많은 절지동물들처럼 탈피를 하면서 자라납니다. 이날은 제가 귀뚜라미 탈피를 생전 처음으로 목격한 날이었네요.


귀뚜라미는 망을 설치해주지 않아도 발로 꼭 붙잡고 있을 수 있는 곳만 있어도 곧잘 탈피를 한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귀뚜라미 관련 포스팅에서였나, 제가 탈피 부전 일어나는 귀뚜라미를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잘못된 얘기였어요. 귀뚜라미도 당연히 탈피 부전이 일어나고 본 적도 있습니다.

저는 주로 핀헤드 단계 귀뚜라미들에게서 탈피 부전을 많이 봤는데요, 핀헤드는 공기가 건조하면 그 영향을 좀 더 큰 귀뚜라미들보다 많이 받습니다. 탈피 부전이 문제가 되기 이전에 집단 폐사가 일어나기도 한답니다. 겨울에 난방이 돌아가는 건조한 집에서는 사육통 벽에 물을 자주 뿌려줘야 해요. 대신 환기는 필수이고요. (더 자세한 내용은 저의 2019년 11월 귀뚜라미 사육 관련 글들을 참고해주세요. https://rassori.tistory.com/tag/%EA%B7%80%EB%9A%9C%EB%9D%BC%EB%AF%B8

사마귀도 너무 건조할 경우 (또는 너무너무 습한 경우) 탈피 껍질이 다리 같은 데 들러붙어서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핀헤드들도 종종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뒷다리 한쪽이 못 빠져나와서 탈피 껍질을 달고 다니거나 하는 걸 여러 번 본 적이 있네요.

사마귀처럼 핀헤드 역시 빠져나오지 못한 다리는 기능을 상실합니다. 탈피 껍질을 뒤늦게 떼어내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경우 기능이 살아있는 곳까지 가위로 잘라주면 성장하면서 다리가 조금씩 재생이 됩니다. 단 아직 어려서 탈피가 여러 번 남아 있어야겠죠. 지켜보니 한두 번의 탈피만으로는 회복이 되지 않더라구요. 성충이 된 이후 다치면 탈피할 일이 없으니 그냥 그 상태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거구요. 그런데 사실 귀뚜라미는 어차피 먹이로 쓰일 거라 다리가 어찌 되든 크게 상관없긴 합니다. 사는 동안 최대한 행복하고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요.

다시 오늘의 주인공 얘기로 돌아가서...
이제 탈피를 거의 마쳤습니다. 사진에선 커보이지만 1cm도 안 되는 귀뚜라미 새끼예요. 


걸을 수 있을만큼 몸을 말린 귀뚜라미가 이동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나무 위로 올라오네요. 쥐미는 상황을 모른 채 저만 쳐다봅니다. 아직 어려서 머리만 큰 모습이 너무 귀엽습니다. 귀뚜라미는 항상 보면 사마귀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쥐미가 기척을 잘 숨기는 거겠죠. 포식자의 기본은 숨을 죽이고 먹이를 기다리고 노리는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사마귀는 같은 자리에 오래 있을 때가 많아요. 쥐미의 경우 탈피기도 아닌데 10시간씩 같은 자리를 지켰던 적도 있었답니다.


앗, 쥐미가 귀뚜라미를 봤습니다. 사마귀는 눈이 크고 시야가 넓어서 뒤에서 움직이는 것도 잘 느낍니다.


반면 귀뚜라미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쥐미가 낫을 쭉 뻗어서 귀뚜라미를 낚아챘습니다. 사마귀 사육자들이 열광하는 순간이죠.


사마귀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눈앞에서 먹이가 움직이면 일단 공격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 배가 부르면 한입 먹다가 휙 버려버립니다. 그런데 이때의 쥐미는 배가 부른 건 아니었나봐요. 갓 탈피한 말랑말랑 맛있는 귀뚜라미였기 때문이었을까요, 끝까지 맛있게 다 먹었답니다.


작은 입으로 오랜 시간 야무지게 먹습니다. 먹는 도중에 뭔가 자기가 싫어하는 맛이 나거나 똥이 있거나 하면 보통 안 먹고 버리던데 요건 끝까지 다 먹었네요. 아마 이날 이후로 제가 쥐미에게 갓 탈피한 귀뚜라미로 열심히 골라줬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껍질도 말랑한 데다가 채소나 똥이 덜 들어있어서인지 확실히 일반 귀뚜라미보다 맛있게 먹습니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더니 새끼 귀뚜라미는 탈피 껍질을 남겼네요. 그리고 고맙게도 쥐미의 피와 살이 되어주었겠죠.


밥을 다 먹인 뒤엔 UVB 램프로 일광욕을 시켜주었습니다. 배가 조금 볼록해졌네요. 곤충 사육에도 의외로 빛이 아주 중요하답니다. 심지어 귀뚜라미도 하루 한 시간 정도는 햇빛을 보게 해줘야 한대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먹이로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서 안 하고 있지만요.


간식으로는 핀헤드를 한 마리 주었습니다. 오물오물 야무지게 잘 씹어 먹어요.


이렇게 잘 먹는 녀석인데 매일 귀뚜라미나 밀웜만 반복해서 먹이는 게 항상 아쉽습니다. 해외에서 먹이로 많이 쓰는 두비아 바퀴벌레가 수입이 된다면 당장 사 먹일 텐데 말이에요. 파리도 먹이고 싶은데 먹이용 파리 번데기를 한국에선 팔지 않네요. 야생에 돌아다니는 벌레들은 기생충 감염 위험이 있어서 아예 쓸 수도 없구요. 제가 먹인 야생 곤충으로 인해 소중한 쥐미의 몸속에 연가시 같은 게 자란다면 정말 끔찍하겠죠. (야생엔 많죠. 연가시에 감염된 불쌍한 사마귀들이...)

아무튼 오늘은 요걸로 마무리할게요. 쥐미가 지금은 많이 커서 저렇게 작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신기하네요. 빨리 사육 일기를 실시간으로 따라잡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가능한 한 쥐미가 살아 숨쉬는 시간 내에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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