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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육 기록 등

나방 애벌레 레벌이 이야기 2 - 애모무늬잎말이나방

by 라소리Rassori 2020.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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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곤충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글입니다. 정말 관심 있는 분들만 봐주시길 부탁드려요. 곤충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레벌이 지난 이야기 - 나방 애벌레 레벌이 이야기 1

 



2020년 9월 23일

 

레벌이가 고치를 만들어 들어간 지 하루가 지났어요.

 


잎사귀가 말라가는데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요.

 


한 시간 후에 다시 보니 갑자기 까매진 모습...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를 모르니 너무 걱정이 돼요.

 

 

 

9월 30일 새벽 0시 15분

 

그로부터 일주일이 더 지났어요. 레벌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예요. 밥은 물론 물도 못 먹고 있는 상태죠.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사육통 안에 물만 자주 뿌려줬어요.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많이 건조해져서인지 물이 빨리 마르더라구요. 

 

 

자세히 보니 고치도 이쁘게 잘 만들었고, 나뭇잎을 붙여둔 것도 너무 귀여워요. 조그만 애벌레가 저런 걸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신기해요. 

 


그새 뭔가 갑옷 같은 게 생겼어요. 꼬리쪽(?)에는 애벌레였을 때의 껍질 같은 게 일부 벗겨져 있고요.

 

 


같은 날 밤 11시 53분

 

거의 24시간이 지났어요. 레벌이가 약간 무서운 모습으로 변했어요. 갑옷 같은 부분이 까맣게 되었어요.

 

 

설마 죽어서 썩은 건 아니겠지, 하면서 보고 있는데 고치 바깥쪽으로 뭔가 뾰족한 게 튀어나와 있는 게 보였어요. 대체 뭘까...싶었지만 일단은 밤이 늦어서 잠자리에 들었어요.

 

 


10월 1일

 

헉 세상에! 다음날 아침에 보니 레벌이가 나방이 되어 있어요!

 


우왓, 이렇게 신기할 수가...!

 


얼굴이 무서운 악마처럼 생겼어요. 평소에 무섭게 생긴 곤충을 좋아해서 So cool!이란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아직 날개를 말리는 중이라 뚜껑을 열어도 못 날고 있어요. 그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날개를 살짝 접을 수 있게 되었어요.

 

 

얼굴이 정말 잘생긴 녀석이에요. 그런데 레벌이의 종명이 뭔지 아~무리 검색해도 알 수가 없었어요.

 


얼굴 클로즈업. 폰 카메라의 한계가 아쉽네요. 밝은 데서 찍으면 좀 더 나았을 텐데 방금 고치에서 나온 레벌이에게 조명을 비출 수는 없었어요.

 

 

이제 레벌이가 나온 껍데기를 한번 봐야겠어요.

 


실을 어찌나 촘촘하고 이쁘게 쳐두었는지 벗겨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위쪽에 레벌이가 애벌레였을 때의 껍질이 조금 보이고, 그 아래에 번데기 껍데기가 있었요. 마치 멋진 망토를 벗어둔 것 같아요.

 


뾰족 튀어나온 부분이 고치를 콕 찌른 채로 있는 게 보여요. 저렇게 고정시켜 둔 뒤 몸을 빼내는 건가 봐요. 레벌이의 말랑말랑 애벌레 몸에서 어떻게 저런 부분이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어요.

 


흔들어 보니 달랑달랑~ 절대 떨어지지 않아요.

 


크~ 레벌이 자세! 정말 멋지네요. 등쪽엔 뿔 같은 게 슉슉 나 있고, 날개는 망토 같은 것이 마치 고독한 전사를 떠올리게 해요.

 


아직 다리가 덜 말랐기 때문인지 앞에서 보니 좀 삐딱하네요.

 


갈색 같으면서도 회색인 색깔이 정말 예뻐요. 나비처럼 입대신 빨대가 달려 있는 것도 신기하네요.

 

 

고치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멋지게 변신을 하고 있었나 봐요. 없던 날개랑 빨대도 생기고, 다리도 길어지고, 털도 많아졌어요.

 

 

쉬게 두고 잠시 후에 다시 가보니 이상한 게 보였어요.

 


레벌이가 액체를 잔뜩 토해놨어요. 알아 보니 나방은 고치에서 나올 때 알칼리성 액체를 입에서 뱉어내서 고치를 녹이면서 나온다고 해요. 아마도 그 액체 남은 게 저렇게 나온 건가 봐요.
파리도 번데기에서 나오면 처음 하루 동안은 저런 액체를 뱉어내더라구요.

 

 

휴지로 닦아서 맡아봤는데 냄새는 나지 않았어요. 끈적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그냥 물 같았구요. 참고로 파리가 뱉어낸 액체는 구리한 냄새가 났어요.

 

날개에 박힌 무늬가 예술이에요. 특히 하얀 리본 같은 게 약간 저승사자 느낌이 있기도 해요.

 


배가 고플 것 같아서 꿀에 물을 살짝 섞어서 사육통 벽에 묻혀두었어요. 너무 잘 먹어서 깜짝 놀랐어요.

 

콕콕 찍어먹는 속도가 엄청난데 gif로는 표현이 안 되네요. 이글 아래쪽에 영상이 있으니 레벌이 꿀 먹는 모습만 보실 분들은 한번 보세요. 정말 엄청난 속도랍니다.  

 

 

 

10월 2일

 

사육통 안에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사마귀들(쥐미, 효미)이 애기 때 쓰던 루바망을 넣어줬어요.  

 


정말 착하게 잘 쉬고 있네요.

 

 


10월 3일

 

구석에 처박아 둔 믹서기를 오랜만에 꺼냈어요. 꿀물은 부족하게 느껴져서 사과라도 갈아줘야겠더라구요.

 

아래 사진에 누런 게 사과 간 걸 묻혀둔 자국이에요. 다행히 먹은 흔적이 있었어요. 달달한 음료도 있어서 몇 방울 떨어뜨려줬는데 그건 별로 안 먹은 것 같았어요. 

 


뚜껑을 열어도 그냥 얌전히 있었어요. 이때만 해도 "나방이 이렇게 얌전할 수도 있구나" 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래도 날긴 날 테니 집에 있는 가장 큰 사육통으로 옮겨줬어요. 혹시 옮기다가 날면 어쩌나 싶었는데 끝까지 루바망에 붙은 채로 꼼짝도 안 했답니다.

 

 


10월 4일


자기 전 새벽에 레벌이가 잘 있는지 가봤어요. 그런데 제가 보고 있는 동안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레벌이가 한참 동안 날개에 시동을 걸더니 처음으로 날아올랐어요!

 

 

지금까지는 날개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데다가 기운이 회복되지 않아서 가만있었나 봐요. 애벌레였던 녀석이 저렇게 변해서 나는 게 신기해서 한참을 지켜봤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

 

레벌이가 달라졌어요. 얌전하던 아이였는데 날 수 있게 되더니 갑자기 난폭해졌어요.

 

벌이 나는 것처럼 위이이잉하는 소리가 크게 났는데 나방이 날 때 그런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보다는 굉장한 힘으로 이리저리 부딪쳐서 다칠까봐 걱정되고 당황스러웠어요.

 


아쉽게도 레벌이는 도저히 사람이 키울 수 없을 정도의 야생성을 갖고 있었어요. 빨리 내보내 줘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10월로 접어든 시점이라 밖은 춥고 먹을 것도 별로 없을 텐데... 보내려니 맘이 짠했어요.

 

그래도 제가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인간의 걱정일 뿐이겠죠. 자연이 다 알아서 할 텐데 말이에요.

 

그래서 과감하게 창문을 열고 내보내 줬어요. "레벌아, 잘 살아야 해! 죽으면 안 돼!"하면서 말이에요. (속으로)

 

보내주는 장면을 촬영하긴 했는데 레벌이가 작고 시커매서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멋지게 날아가는 모습이 찍혔으면 좋은데 레벌이는 하나도 안 보이고 주변 환경만 나왔더라구요.

 

그 이후 창밖을 볼 때마다 레벌이는 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죽고 없을 시점이라 더 이상 생각을 안 하지만요. 나방은 성충이 되면 얼마 못 산다고 해요. 종마다 다르지만 대충 5-10일 정도 사나 봐요.

 

밖에 돌아다니다가 애벌레를 보게 되면 얘는 커서 어떤 모습이 될까? 하고 궁금할 때가 많은데 기회가 되면 또 잡아와 봐야겠어요. 그때는 레벌2(레벌투)라고 이름 붙일 거예요.

 

그런데 보통 성충 기간은 짧아도 애벌레 기간은 아주 길다고 해서 조금 망설여지기도 해요. 종마다 먹는 풀이 다를 텐데 먹이 조달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까요. (똥도 너무 많이 싸고요.)

 

아래는 레벌이와의 생활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어 본 거예요. 레벌이가 풀 먹는 모습이랑 나방이 되어서 꿀 먹는 모습은 정말 신기해요.

 

 

부디 레벌이가 살충제 안 맞고 행복하게 잘 살다 갔길 바라며~

 

이번 사육 일기는 여기까지 할게요. 그럼 전 이만! 😉

 

추가: 열심히 검색하던 중에 드디어 레벌이의 정체를 알아냈어요! 애모무늬잎말이나방이라고 하네요. 나비목 잎말이나방과이고, 학명은 Adoxophyes orana (Fischer von Roslerstamm)랍니다.

 

레벌이처럼 잡초에 살면 괜찮은데 사과나 배 같은 과일 나무에 살면 해충이 될 수 있답니다. 애벌레 때 먹성이 워낙 좋다 보니 피해가 꽤 클 수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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