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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약충 쥐미 일기 20191224-25

by 라소리Rassori 2020.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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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사진 센 거 많으니까 곤충 괜찮은 분들만 오세요 진심으로♡ (클로즈업 및 피딩 장면 포함)


12월 24일

이날은 쥐미가 저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던 날이었습니다. 제가 어쩌다 뒷다리를 살짝 잘못 건드렸나봐요.

혹시 사마귀의 "위협 포즈"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만세하듯이 양쪽 낫을 높이 쳐들고, 꼬리도 위로 치켜올리고, 성충의 경우 날개까지 위로 펼치는 엄청난 모습입니다. (사육자들은 보통 그게 너무 귀여워서 푸하하 웃지만요.)

그런데 쥐미는 저를 봐주었는지 만세를 하다가 바로 착! 접어버리고 아래 사진처럼만 하더라구요. 허리를 제쪽으로 휙 틀어서 한껏.. 아니 반 정도만 위협했습니다.

저는 기왕이면 풀 포즈를 보고 싶었는데 조금 아쉽기도 했어요. 그래도 이 정도만으로도 너무 깜찍하고 멋졌답니다. 울트라맨 같기도 하고 로봇 같기도 한 모습이에요. 금방 자세를 풀어버려서 비디오로 못 남긴 게 아쉽습니다.

 

(하 귀여워...)


위협할 땐 원래 꼬리도 C자 눕힌 것처럼 위로 휙 올라가야 하는데 아래에서 보이듯 잠잠했어요. 제가 자길 해치지 않을 걸 알고 있나 봐요. (오른쪽 허벅지에 붙은 하얀 실 같은 건 탈피 때 뭐가 덜 벗겨진 건데 별 상관없는 거라 그냥 뒀어요.)


(탈피한지 5일째인데 아직도 빵빵해지지 않은 배)


사마귀의 제대로 된 위협 포즈를 보고 싶은 분들은 구글 이미지에서 mantis threat display라고 검색하시거나 이걸 클릭하시면 됩니다. ☞ mantis threat display 곱디곱게 크고 있는 쥐미의 위협 포즈는 쉽게 볼 수 없을 것 같네요.

결국 자세를 완전히 풀고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위협 포즈 사진과 함께 정말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위 사진에서 앞발 보이시나요? 걸을 땐 뾰족한 낫 끝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그 옆에 붙은 가느다란 발을 사용합니다. 탈피 때 저게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활동이 크게 불편해지게 됩니다.

이젠 또 UVB 램프를 올려다봅니다. 램프가 그렇게 신기한가봐요. 예전에 이어 또 한참을 보는 걸 보면 말이에요. (왼쪽 뒷다리도 살짝 꺾였었는지 움푹 파인 부분이 보이네요..)



이제 새로운 응가 얘기 들려드릴게요.

이번 탈피 이후 쥐미는 웬일인지 자기 똥을 신경 쓰게 되었어요. 사실 탈피 이틀 후쯤(21일) 밥을 다 먹인 뒤 어느 순간 보니까 낫에 무슨 덩어리를 들고 있길래 쥐미가 아파서 토한 건 줄 알고 기겁한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사진도 못 찍은)


아래 사진에 바로 저 위치, 저 자세에서 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뺏어서 보니까 커다란 똥...이더군요.

사마귀가 자라면서 응가도 그만큼 커지는데, 종령이 되면서는 응가가 훨씬 더 많이 커지더라구요. 그걸 꼬리에서 발사하고, 그것이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쥐미는 그것을 먹이로 착각하고 낫으로 낚아챈 거죠.

 

아래 사진은 24일에 찍은 거예요. 똥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먹이인 줄 알고 막 내려가서 잡으려다가 저한테 딱 걸린 모습입니다. 꼬리를 털듯 똥을 누기 때문에 생각보다 똥이 멀리 날아갑니다. 똥이 저렇게 크니 쥐미가 착각할 만도 합니다.

(괜찮아 쥐미야, 그럴 수 있어)


다행히 저런 것도 학습이 되는지 이날 이후로는 착각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19일에 탈피하고 20일부터 똥을 누기 시작해서 24일에 깨달았으니 사마귀 세계에서는 거의 천재 수준이 아닌가 싶습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지만 매번 그냥 지나간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저는 크리스마스와는 관계가 없는 무교더라구요. 대신 크리스마스와 가까운 제 생일을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날은 쥐미가 탈피 이후 처음으로 플랭크 자세를 취했던 날입니다. 불편한 다리를 한껏 낮추어서 온몸으로 UVB 램프를 쬐는 모습입니다. 



평화로운 일광욕 후엔 사육통 안에서 쉬게 하고, 해가 기울면 저녁을 먹입니다. 이날 저녁엔 마침 탈피한 귀뚜라미가 보여서 잡아줬어요. 원래라면 쥐미가 직접 사냥하도록 두는데 다리가 저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새우 머리를 좋아하듯 쥐미도 귀뚜라미 머리 부분을 참 좋아합니다. 다리가 아파도 식성은 여느 종령사마귀들과 다름없어서 예전 같으면 반은 남겼을 크기의 귀뚜라미임에도 거뜬히 먹어치웠습니다.

그런데 사실 피딩 과정이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평화롭지만은 않았어요.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낫을 휘두르는 힘이 워낙 강해서인지 거의 매번 아래로 떨어질 뻔했거든요. 꼭 네 발 중에서 한 두 개가 망을 놓쳐서 저도 쥐미도 식겁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충격이 꽤 있었을 텐데도 다리가 더 나빠지지 않는 게 신기하고 다행이었어요. 그런 상황에도 끝까지 먹이만은 놓지 않는 모습이 뭔가 치열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밥을 먹고 난 뒤 제 손 위에서 노는 모습입니다. 얌전히 있길래 날개싹을 가까이서 찍어보았어요. 볼수록 너무 귀여운 날개싹입니다. 저 안에서 사마귀 성충의 커다란 날개가 자라고 있다는 게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쥐미 참 얌전하지 않나요? 많이 먹어서 배가 빵빵해진 게 너무 귀엽습니다. 아기 때 두 번이나 끊어먹었던 더듬이도 완벽히 재생되어서 이쁘게 쭉 뻗어있네요.


쥐미 귀뚜라미 구경하는 시간입니다. 엄청 재밌어해요. 배가 불러도 달려들려고 하구요.


그래서 다음날 아침쯤이었나, 밥 먹을 시간에 쥐미를 밖으로 꺼내서 성충 바로 전 단계의 귀뚜라미를 가까이에서 보여줘 봤습니다. 쥐미가 한 번도 사냥해 본 적 없는 커다란 크기였고 (위 사진에서 돌아다니는 애들) 쉽게 잡을 수 있는 거리였어요. 크기만 컸을 뿐, 냉장고에 몇 분 넣어둔 뒤 꺼내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귀뚜라미였습니다.

그런데 귀뚜라미가 멀리 있을 땐 그렇게 잡으려고 하더니 가까이서 보더니 번개 같은 속도로 도망을 가더군요. 높은 곳에서 붕붕 점프해서 바닥에 착지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스파이더맨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움직이다가 다리 꺾인 부분이 더 꺾일까봐 너무 아찔했어요. 다행히 괜찮았지만요.

이날 되새긴 교훈.

1. 사마귀는 의외로 겁이 많다. 쥐미는 거친 야생에서 크지 않아서인지 더욱 그렇다.

2. 사마귀마다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먹이의 크기가 있다. 어떤 사마귀가 엄청나게 커다란 메뚜기를 먹었다고 해서 모든 사마귀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3. 먹이를 줬을 때 사마귀가 공격하지 않고 도망가면 그대로 같은 사육통에 넣어두지 말고 즉시 먹이를 치워줘야 한다. 

그럼 다음에 또 얘기 이어가도록 할게요.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사마귀는 해충을 잡아먹어주는 익충이니 혹시라도 미워하지 마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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