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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약충 쥐미 일기 20191229-20200105

by 라소리Rassori 2020.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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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팅한 귀뚜라미 피딩 사진 등 곤충 사진 많으니 주의 바랍니다. 곤충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하시는 분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패스해주세요.


12월 29일

쥐미가 탈피기에 들어선지 3일째입니다.

마침 또 갓 탈피한 말랑한 귀뚜라미가 있어서 반으로 잘라주었습니다. 밥을 잘 못 먹을 때지만 자기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먹고 버리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하루에 한 번은 이렇게 주었어요. 매일매일 식사량이 줄어들었는데 이때는 평소의 1/5 정도는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물도 조금씩 마셨구요.

이때 쥐미가 다 못 먹고 남긴 것은 항상 그렇듯 밀웜에게로...


저번 포스팅에서 언급했듯 탈피 직전엔 날개싹이 부풀어 오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날 역시 아무리 봐도 부풀었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중간 다리 꺾인 부분에 가느다란 홈이 쏙 들어가 있는 것은 여전했어요. 그런데 이때쯤부터는 뭔가 다리가 좀 더 튼튼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걸음걸이도 좀 더 편해졌구요.

저 꺾인 부분의 안쪽에서 새로운 다리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일단 자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니 그 영향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12월 30일

어차피 먹다 남길 것을 알아서 이날은 귀뚜라미를 좀 더 작게 잘라주었어요. 쥐미의 배가 무척 빵빵한데 밥을 먹어서가 아니라 저 안에서 새로운 몸이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몸보다 훨씬 더 큰 몸이 저 안에 어떻게든 압축되어 있는 거죠.


또 날개싹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약간 옆으로 퍼진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쥐미가 스스로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해서 꺼낸 거지 탈피기엔 원래 가만히 둬야 해요.) 이 사진에서는 손상된 세 개의 다리가 확실히 보이네요. 특히 가장 심하게 다친 중간 왼쪽 다리가 늘 제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다시 집에 넣어줬더니 한참 후에 알아서 자리를 잡고는 저를 쳐다봅니다.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운 모습이네요. 이 시기엔 약간 어둑하게 해 두고 사육통 밖에서 사진을 찍느라 선명한 사진이 별로 없어요.


지난 포스팅에서 제가 밤에 15분마다 알람 맞춰놓고 일어났다는 얘기를 했는데요, 이때쯤엔 그게 20분으로, 나중엔 30분으로, 어떨 땐 40분까지도 늘어났어요. 지치더라구요.ㅎㅎ 그저 제가 잠든 사이에 탈피 부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


12월 31일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쥐미부터 확인했습니다. 여전히 그대로 매달려 있어서 주사기로 물을 먹인 뒤 잠시 바람을 쐬어주었어요.

아래 사진은 제가 여러분들께 사마귀의 까만 눈을 보여주기 위해 찍었던 거예요. 사마귀는 어두운 곳에 있으면 눈 전체가 까매집니다. "외계인"하면 떠오르는 그 커다란 까만눈의 생물체와 아주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래서인지 미국 사육자들은 "마이 에일리언"이라고도 부르더군요. 참 귀여우면서도 사마귀에게 잘 어울리는 애칭인 것 같아요. 사실 눈이 안 까말 때도 좀 외계 생물처럼 생겼잖아요. 


사마귀의 까만 눈은 전혀 그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본다면 좀 놀랄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다행히 쥐미가 까만눈이 된 걸 직접 보기 전에 검색으로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놀라진 않았답니다.

쥐미의 까만 눈 앞모습은 전 괜찮지만 혹시나 호러 포스팅이 될까봐 안 올리기로 했어요. 정 궁금하시면 "사마귀 까만눈"이라고 구글 이미지 검색해보시면 나올 거예요. 피부병 사마귀도 같이 나오는데 그걸 더 주의하셔야 할 겁니다.

그나저나 이날도 날개싹은 여전히 이렇다 할 변화가 없네요.


이날부터는 귀뚜라미를 못 먹어서 밀웜을 짜서 하루에 한 번 아주 조금씩 먹였습니다. 못 먹을수록 탈피가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건데 날개싹은 부풀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2020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네요. 구정이 아닌 신정을 쇠는 저희 가족에겐 중요한 날입니다.

그러나 전 이날도 벌떡 일어나서 쥐미부터 확인해야 했어요. 여전한 모습에 안심하면서 동시에 기운이 좀 빠지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또 그렇게 알람 맞춰두고 자야 하냐는 생각에 말이에요.

이때쯤엔 저희 가족들도 "사마귀 탈피한다더니 아직 아무 얘기 없는 거 보니 죽었나 보다. 라소리 건들지 말고 가만 냅두자"라는 분위기였어요.

걱정 가득한 제 앞에서 쥐미는 평소처럼 발 그루밍을 하고 있습니다.


사마귀의 사육통은 가로보다 세로가 높은 게 중요해서 보통 이렇게 사육통을 세로로 세워서 키워요. 그러다 보니 바닥에 동그란 마크가 저렇게 통 옆으로 오게 되었네요. 사마귀 전용 사육통이 좀 다양하게 나오면 좋겠습니다.

이날은 날개싹이 좀 더 양쪽으로 벌어진 것도 같네요. 그래도 여전히 부푼 것 같지는 않았어요.


1월 2일

제가 애초에 쥐미 탈피일로 예상했던 1월 1일이 아무 일 없이 그냥 지나가고 그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이날 보니까 날개싹에 뭔가 "두께"라고 할 만한 게 생겼어요. 이게 날개싹이 "부푼" 모습일까요? 곧 탈피를 한다는 얘기일까요? 너무나 궁금했지만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위에서 봤을 땐 잘 모르겠네요.


계속 굶는 중인 쥐미...

탈피는 대체 언제 하는 걸까요?

쥐미도 저도 많이 지쳤습니다. 저는 잠도 푹 잘 수 없고 10분을 넘기는 외출도 할 수 없어서 심신이 고단한 상태였구요, 쥐미는 저보다 훨씬 더 많이 힘들어하면서 자꾸만 조금씩 조금씩 루바망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예전에 잠깐 동안 키웠던 좀사마귀 성충이 생각나더군요. 그 사마귀는 죽을 때가 되니까 루바망 아래로 조금씩 내려와서는 나중엔 바닥에 누웠거든요.


쥐미도 설마...?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에이 아니겠지, 하면서 다시 쥐미가 위쪽으로 올라가게 유도를 했어요. 그때 쥐미가 있던 곳이 루바망 중간쯤이었는데 거기서 탈피가 시작되면 높이가 부족해지거든요. 그래서 손으로 살짝살짝 밀어서 후진을 시켜서 원래 위치로 올라가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사육통 벽에 물을 너무 많이 뿌려놔서 쥐미가 컨디션을 망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무사 탈피를 위해서는 공기가 너무 건조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습하게 해도 안된다는 건 제가 광적인 검색 끝에 이때쯤 알게 되었거든요. 벽 한쪽만 스프레이 했으면 되는데 전 모든 벽을 스프레이 했으니... 또 큰 실수를 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실수들을 바탕으로 저의 다음 사마귀 약충은 편하겠지만 저의 첫 사마귀 약충인 쥐미는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네요. 


1월 3일

적절한 습도 유지와 환기에 신경을 쏟은 다음날입니다. 쥐미는 여전한 모습입니다.


1월 4일

여전...

아니, 위쪽 날개싹에 미세한 변화가 보였습니다. 뭔가 희미한 초록빛이 눈에 띄었어요.

쥐미 같은 갈색형 왕사마귀는 탈피가 가까워지면서 날개싹에 초록빛이 비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이건가 싶었어요. (갈색형 성충은 보통 날개 가쪽이 초록색입니다.)


이 순간 큰 깨달음...

"아, 잠은 이때부터 설치면 되는 거였구나.ㅠ 우와 이제 정말 탈피하려나봐!"

 


1월 5일

그러나...

괴로운 시간은 다음날에도 이어졌습니다. 이렇게 되니 몸도 몸이지만 정신력이 위태로울 지경이 되었어요. 마지막 탈피기는 원래 이런 건지 아무리 검색해봐도 나오지도 않고 정말 답답했습니다.

나중엔 쥐미가 자꾸만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데도 그냥 멍하니 보고 있게 되었습니다. 얘가 정말 죽으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에 어느 정도 자포자기 심정이 들었어요.


12월 26일부터 이날까지... 쥐미가 너무 많이 힘들었잖아요. "쥐미야, 너무 힘들면 편한 곳으로 가. 그래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살아서 탈피하려면 어떻게든 루바망 위쪽 자리를 지킬 텐데 그렇게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니까 느낌이 싸하더군요. 그래서 이때부터는 쥐미를 다시 위로 올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어요. 응원해서 될 일도 아니고 해서 조금씩 마음을 비웠습니다.

제 한국 가족들은 1월 4일, 5일 계속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저는 도저히 쥐미를 이렇게 두고 갈 수가 없었어요. 암흑의 연초였네요. (이 와중에 뒤에 제 핑크 배스타월 아무렇게나 던져둔 거ㅠ 그러고 보니 저때는 매번 샤워도 후딱 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기운이 다 한 건지 자꾸 아래로 내려가고는 있지만, 아래 사진에서 잘 보면 위쪽 날개싹 가쪽에 초록빛이 조금 더 선명해진 것이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바닥이 가까워지면 한참 동안 그대로 있다가 스스로 다시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자세를 잡는 것이었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다소곳이 두 낫을 모으고 있는 모습이 너무 이쁘네요.

글이 너무 길어져서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새로 이사 온 곳에서 적는 첫 포스팅이었습니다. 못 올릴 줄 알았는데 어찌어찌 올리게 되었네요. 작성 시간이 짧은 맛집 포스팅을 올리는 게 사실 제일 편하긴 한데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힘내서 쥐미 얘기 적어보았습니다. 

언제나 쥐미 응원해주시는 분들 오늘도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도 열심히 준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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