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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약충 쥐미 일기 20191226-28

by 라소리Rassori 2020.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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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 블로그 라소리 블로그입니다. 곤충 사진 많으니 주의해주세요. 첫 사진부터 강하니 곤충 힘드신 분들은 살포시 패스해주세요.

12월 26일

아침 식사로 갓 탈피한 말랑말랑 밀웜을 먹는 쥐미입니다. 밀웜은 원래 연한 갈색이지만 다른 절지동물과 마찬가지로 탈피 후엔 색이 연합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쥐미의 까만 눈동자는 재차 말하지만 눈동자가 아닙니다. 곤충에게 사람 같은 눈동자가 있을 리가 없죠! 저건 그냥 빛의 반사에 의한 착시 현상이에요. 까만 점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로 보일 때도 있어요. 영어로는 pseudopupil이라고 이 현상의 명칭이 따로 있답니다.

(고로 실제 쥐미가 어딜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먹는 모습을 동영상으로도 찍어보았어요. 얼굴이 세모이면서도 동글납작한 게 정말 귀엽습니다.

다 먹은 뒤 빵빵해진 배로 호흡하는 모습도 촬영해 보았습니다. 사마귀를 포함한 많은 곤충들은 배에 있는 기문이라는 미세한 구멍으로 호흡을 합니다.

다 먹고 일광욕을 한 뒤엔 사육통으로 돌아가서 발 그루밍을 합니다. 사육통 벽에 제가 비칠 때마다 깜짝 놀라면서 그쪽을 쳐다봐서 키친타월로 쥐미가 가장 많이 고개를 돌리는 쪽을 가려뒀습니다. (사육통 안쪽 벽을요. 제가 있는 쪽은 상관을 안 해서 그냥 뒀어요.)


위 사진에서 앞쪽에 있는 건 똥이에요. 저 위치에서 눴는데(=털었는데) 멀리도 날아갔네요.


응가는 원래는 물기가 거의 없는데 귀뚜라미 안에 있는 채소를 많이 먹거나 하면 변이 묽어질 수 있습니다. 사마귀는 귀뚜라미나 밀웜처럼 먹이를 갉아먹는 곤충보다는 파리처럼 빨아먹거나 녹여서 먹는 곤충을 더 잘 소화시킨다고 해요. 해외처럼 바퀴벌레와 파리가 먹이 곤충으로 팔릴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쥐미가 사용하는 루바망을 잠시 꺼낸 것입니다. 악몽의 탈피 때 쓰인 거죠.

많이 먹고 배가 빵빵해진 사마귀는 실수로 떨어졌을 때 나뭇가지 같은 것에 배를 다칠 수 있다고 해서 다 치웠는데, 이날 보니 왠지 루바망 가쪽도 신경 쓰이더군요. 


일단 신경이 쓰인 이상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대로 둬도 괜찮겠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깨끗하게 정리해서 다시 넣어줬어요. 


그런데 이날 저녁, 쥐미가 밥을 잘 못 먹고 깨작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가슴 속이 서늘해지는 이 느낌.. 설마 벌써 탈피기?



응, 맞아 탈피기ㅠ

곧 닥칠 것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빨라서 당황이 되었어요. 그럼 대충 언제쯤 탈피를 하게 될지,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12월 19일에 탈피를 했으니 다음 탈피는 1월 1일쯤이 아닐까 하고 혼자 멋대로 예측을 해보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보통 11-13일 간격으로 탈피를 해왔으니까요.


처음엔 그보다 좀 더 오래 걸릴거라 생각했어요. 이번 탈피는 "우화"라 불리는 마지막 탈피이기 때문에 쥐미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훨씬 복잡할 거고 그에 따라 시간도 더 걸릴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일찍부터 탈피기에 들어서는 징후를 보이니까 헷갈리더라구요. 설마하니 이 상태에서 1월 1일까지 갈까 싶었죠. 그럼 6일이나 굶는다는 거잖아요. 그럼 그 전에 탈피할 수도 있다는 건지, 뭐가 뭔지...

그에 관련해서 검색을 해봤지만 그럴 수록 더 답답해지기만 했어요. 처음 겪는 일이라 아는 게 없는데 아무리 검색해봐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쓸만한 정보라고는 1. 마지막 탈피는 날개가 나오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온 탈피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 그리고 2. 탈피 직전엔 날개싹이 빵빵하게 부푼다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일단은 날개싹을 열심히 봐야겠다 싶었어요.


12월 27일

밥을 조금밖에 못 먹고 제 팔 위에서 노는 쥐미입니다. 날개싹이 부푼 건지 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도 분명 빵빵하다고는 할 수 없었어요.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쥐미가 가장 쉽게 탈피할 수 있도록 망을 여러 방식으로 설치를 해보았어요. 아래 사진은 그중 가장 이거다 싶은 결과물을 찍은 것입니다.

(정면)
(윗면)
(측면)


높이가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사마귀 몸길이 3배 높이는 되어야 한다고 해서 이 높이로 결정했어요. 쥐미가 붙잡을 곳이 최대한 많은 게 좋을 거란 생각에 파란 망도 함께 실로 묶어두었습니다.

(열심히 발 그루밍을 하는 쥐미)


쥐미는 여유로운 모습인데 전 이날부터 잠을 설쳤답니다. 아직 탈피할 때가 아니긴 했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요. 혹시라도 제가 자는 동안 쥐미가 탈피를 하면 어쩌나 너무 불안하더라구요. 쥐미가 다리만 멀쩡해도 그냥 자겠는데 만일 다리에 힘이 없어서 떨어진다면 즉시 집어서 올려주어야 하니 안심이 되지 않았어요.


결국 고민 끝에 알람을 15분 간격으로 맞춰두고 자기로 했습니다. 불은 멀리 희미하게만 켜둔 상태에서요.

몰랐는데 사람이 15분마다 깼다가 자는 걸 반복하는 게 가능하더라구요. 눈을 뜰 때마다 쥐미가 가만히 매달려 있는 모습을 확인했어요. 확인 후엔 안심하고 다시 자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알람 다 끄고 4-5시간씩 스트레이트로 뻗어버렸어요.


12월 28일

오래 잠든 것을 깨닫고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다행히 (그리고 당연히) 쥐미는 그대로였어요.

이날부터는 쥐미에게 밀웜을 쭉 짜서 밀웜 속 내용물을 먹였습니다. 웬만하면 질기거나 딱딱한 껍질이 없는 걸 먹이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다행히 먹긴 했는데 많이 먹진 못했습니다. 밥 먹인 뒤 빨리 다시 매달아 놔야 할 것 같아서 일광욕도 이때부터는 못 시켰어요.

루바망 설치도 재정비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래도 루바망이 너무 휘어있는 것 같아서 좀 더 세워보기로 했어요.

조금 아까웠지만 인두기로 사육통에 구멍을 내서 루바망을 고정해 보았습니다. (인두기는 다이소에서 5천 원에 구입)


루바망이 적당히 뒤로 가면서 기울기가 더 가파르게 되었습니다. 저렇게 해야 쥐미의 여섯 다리가 다 빠져나온 뒤 발을 뻗어서 망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혹시라도 탈피하다가 머리부터 떨어지면 큰일이니 바닥에 둔 키친타월 아래에 뾱뾱이도 깔아 두었습니다. 결국 나중에 습기가 차면서 치웠지만요.

사마귀의 우화는 처음 겪어보는 거라 모든 것이 서툴었어요. 문득 쥐미가 몸길이 1.5cm도 안 되던 애기였을 때 여기 포스팅을 올리던 게 생각나더군요. 그때는 탈피가 참 쉬웠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그때랑 비교가 되면서 더 암담해졌어요.


아래 사진은 쥐미가 깜짝 놀라면서 카메라 반대쪽을 보는 모습이에요. 꼭 제 쪽이 아닌 저의 움직임이 비치는 것에 놀라더라구요. 저에 대해서는 안심이 되는데 그 건너편에 있는 정체 모를 무언가에 대해서는 도저히 안심이 되지 않나 봅니다. 


이날도 저는 15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두고 잤어요. 전날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부턴 그냥 퍼져서 자버렸구요.

그런데... 결국 지나고 나니 다 바보짓이었어요. 제가 깨달은 사실들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차차 또 하도록 할게요.

댓글로 속마음으로 쥐미 응원해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모두 행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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