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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약충 쥐미 일기 20200106-07 최종 탈피 (우화)

by 라소리Rassori 2020.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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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시는 분들은 요거 패스하시고 다른 포스팅으로 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9년 12월 26일부터 탈피기에 들어서서 다음 해 1월 6일까지 탈피를 못하고 있는 쥐미의 이야기 이어집니다.

좀 길지만 중간에 안 자르고 그냥 갈게요. 저번과 마찬가지로 사육통 벽을 통해 찍은 사진과 영상이라 선명하지 않은 게 많습니다.



1월 6일

이날도 역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쥐미부터 확인했습니다. 쥐미 사육통을 늘 침대 곁 선반에 두고 자서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었어요.

이때쯤엔 아침에 눈 뜨면 사육통 바닥부터 가장 먼저 확인해보았어요. 쥐미가 굳은 채로 누워있을까봐요. 이날 아침도 본능적으로 바닥에 쥐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돌린 뒤, 시선을 위로 옮겼습니다.

살아 있는 것을 보고는 우선 주사기로 물을 조금 먹였어요. 이날도 쥐미는 아침부터 자꾸만 바닥 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힘겹게 위로 올라가길 반복했습니다.

뭔가 도움을 주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너무 답답했어요. 힘내라고 밀웜 즙을 줘봐도 거의 못 먹고 오히려 더 힘들어했어요.

그러다 생각해 보니 10일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UVB 램프를 안 쬐어줬더라구요. 원래 탈피기 때는 계속 사육통 안에서 루바망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일광욕은 스킵해왔거든요. 기껏해야 이삼일 거르는 정도이니 신경 쓸 일도 아니었죠. 그런데 이번엔 탈피기가 너무 많이 길어져서 쥐미가 빛을 너무 오래 못 받았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언제 탈피가 시작될지 모르는 쥐미를 건들 수는 없으니 램프를 옆으로 눕혀서 쥐미에게로 빛이 가도록 해두었습니다. 쥐미가 그게 싫다면 옆으로 옮기면 되는데 그냥 가만히 빛을 받고 있더라구요. 그래도 너무 오래 쬐면 안 좋으니 평소에 해왔듯 두 시간 정도 하고 불을 꺼주었어요.

이날 저희 엄마가 전화로 사마귀 결국 죽은거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셨어요. 살아는 있다고 대답했더니 엄마도 답답하신지 제가 손으로 찢어서 껍질 벗겨줄 수는 없냐고 하시더군요. 그런 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요?

어떤 해외 사육자는 사마귀 탈피가 시작되는 즉시 휴대폰에서 벨이 울리면 좋겠다고 하던데 그런 것도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자연은 냉정한 자연답게 모든 것을 그리 쉽게는 만들어두지 않았고, 우리는 정해진 대로 따르는 수밖에는 없는 듯합니다. 

그렇게 아침과 오후 시간이 다 지나고,

오후 6시가 넘어가고 있었어요. 쥐미가 아침에 아주 약간의 물을 마신지 한 10시간쯤 지났을 때였죠. 

쥐미가 갑자기 꼬리를 움직거리기 시작했어요. 꼬리를 아래위로 까딱거리는 느낌인데,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분명 뭔가가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쥐미에게 물을 먹인지 오래되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힘내라는 마음에 물을 입에 살짝 묻혀주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못 마시고 루바망에다 입을 슥슥 비벼서 닦아내더라구요. 뭔가 시작되었다고 느껴진 이후부터는 절대 물도 줘서는 안 된다는 걸 또 이렇게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미안해 쥐미야ㅠ) 

그리고 그로부터 3시간이 더 지난 밤 9시, 쥐미의 움직임이 조금씩 더 커지기 시작했어요. 뭔가 몸 안에 있는 걸 짜내려는 느낌으로 꼬리를 움직였습니다. (동영상 광고는 제가 넣은 게 아닙니다.)

 

(드디어 시작되는 변화)

이때의 저는 "우와 이거 어떻게 되는 거지!"하고 속으로 당황하면서 그냥 옆에서 "껍질아, 제발 터져라" 하고 계속 빌었어요. 


11:45 PM

오후 6시쯤부터 거의 6시간 동안 계속해서 온몸을 짜내듯 꼬리를 움직이는 쥐미입니다.

저는 애간장을 태우며 사육통 밖에서 날개싹을 촬영했어요. 날개싹이 확실히 예전과는 좀 달라진 모습입니다. 녹색빛을 띄면서 동시에 살짝 위로 떠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니 "부풀었다"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 정도로 날개싹이 커져 있었습니다. 드디어! 날개싹이 부푼 모습에 "세상에 쥐미야!" 하고 절로 속으로 외치게 되었어요.


1월 7일 12:14 AM

결국 또 날짜를 넘겨 1월 7일이 되었습니다.

쥐미의 움직임이 좀 더 격해졌습니다. 귀뚜라미도 우화 직전에 차가 덜컹덜컹 하는 느낌으로 몸을 움직이거든요. 그것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이제 정말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쥐미야 힘내ㅠ) 

12:29 AM

껍질이 터졌습니다! 드디어 새로운 어깨가 나오고 날개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ㅠ 


12:38 AM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때 반드시 머리, 더듬이, 그리고 낫이 나와야만 하는 거 쥐미 얘기 계속 보신 분들은 알고 계실 거예요.

위의 장면에서부터 여기까지 10분이나 걸렸는데 쥐미가 중간에 동작을 멈추었기 때문이에요. 그대로 껍질 부분이 말라버리면(탈피하는 동안엔 껍질 안쪽이 살짝 촉촉한 상태) 끝장이기 때문에 "쥐미야 그렇게 있으면 안돼, 움직여! 쥐미야 힘내! 쥐미야 제발!!" 하면서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ㅠ 한밤중에 목소리가 좀 크게 나왔는데 누가 들었다면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되었을 거예요.ㅋ  

압축된 상태의 날개는 드러났지만 낫은 커녕 머리랑 더듬이도 안 나온 상태여서 너무 아찔했습니다. (이 초반 10분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짧은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두고 잤던 거예요. 제대로 하진 못했지만요;)

그래도 다행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쥐미. 이때부터는 탈피가 제 속도로 진행이 되었어요. 


12:39 AM

배가 빵빵한 건 아직 압축 상태이기 때문이에요. 몸이 마르면서 길어지고 납작해집니다. 

(더듬이를 쭈욱)


루바망을 꼭 쥐고 있는 아픈 다리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힘내줘...!


12:41 AM

더듬이가 완전히 나오면서 옆으로 벌어집니다. 이로써 고개 움직임이 자유로워지면서 머리쪽 탈피 부전은 면한 거예요. 첫 번째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순간입니다.


멋지게 두 개의 낫이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두 번째 안도의 한숨이 휴! 하고 나오는 순간입니다. 다음은 꺾여서 다쳤던 다리들이 나올 차례입니다.


12:43 AM

다리들이 모두 기적처럼 무사히 나왔습니다.

물렁한 살이 나오면서 꺾였던 곳이 끊어질까봐 너무 긴장이 되었어요. 최종적으로 전부 멀쩡하게 나온 것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기분은 정말... 어떻게 말로 표현이 안되네요. ㅠ


길고 가는 뒷다리 두 개를 빼낼 땐 이렇게 마구 좌우로 흔들어줍니다.


쥐미가 4령에서 5령으로 갈 때였나? 뒷다리가 저런 식으로 빠져나오는 걸 처음으로 봤었는데 관절 바로 아래 부분이 마구 꺾이는 모습에 큰일난 건줄 알고 기겁을 했었답니다.

그런데 그냥 다리를 빼내는 과정일 뿐이더라구요. 몸이 물렁물렁한 짧은 순간에 한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저번 악몽의 탈피 때 중간 다리들이 꺾인 걸 봤을 때도 이런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처음엔 부상이라고 생각 못했던 거랍니다. 몸이 다 빠져나왔는데도 어딘가 꺾여 있거나 휘어져 있다... 그건 그 모습 그대로 굳는다고 봐야합니다.

 

12:46 AM

(가만히 다리 말리는 중. 넘 수고했어 쥐미야)


12:49 AM


12:52 AM

(고생했다 아픈 다리들. 하나도 안 떨어지고 용케도 끝까지 버텨 주었구나)


12:55 AM

(Praying mantis라는 명칭처럼 완벽히 기도하는 자세가 된 쥐미)


1:03 AM

(새로운 발로 옛날 다리를 꼭 붙들고 있네요.)


1:05 AM

잘 보면 양쪽 발 모두 옛날 다리를 붙들고 있어요. 그래도 밑으로 안 떨어지는 다친 다리들 대단해!


1:17 AM

(다리가 조금씩 마르면서 슬슬 루바망을 잡기 시작하는 쥐미)


위 사진에서 중간 다리 꺾였던 부분에 하얀 선이 있는 게 보이실지 모르겠어요. 이건 다음에 다시 자세히 보여드리도록 하구요,

이제 몸이 거의 다 나왔지만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닙니다. 쥐미가 몸을 180도 돌려서 위를 향해야 날개가 예쁘게 마르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날개가 정리되지 않은 채로 굳어버려요.

날개 탈피 부전은 생명을 위협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엉망이 된 날개로 남은 생을 보내야 한다면 상당히 슬픈 일이겠죠. 그리고 사마귀가 파리처럼 자유롭게 나는 건 아니어도 점프할 때 닭처럼이나마 잠깐씩 날개를 사용하거든요. 망가진 날개로는 그런 즐거움도 누릴 수 없을 테니 날개 탈피 부전 역시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니랍니다.

그렇게 되는 게 은근히 드문 일도 아니라서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원래는 쥐미가 방향을 안 틀 경우엔 제가 사육통을 돌릴 생각으로 애초에 루바망을 이렇게 설치한 거였어요. (뚜껑 열고 루바망 아래를 잡은 채로)

그래도 지금껏 항상 섣불리 설치다가 일을 그르쳤으므로 이번엔 쥐미를 믿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1:36 AM


참고 기다리려 했으나 날개는 계속 뒤집어지고 시간도 너무 흘러서 초조해졌어요. 그래도 기다렸어요. 앞쪽에 설치해두었던 파란 망을 빼내면서요. (파란 망 쓸모없었네요. 괜히 설치했어요.)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턴하는 쥐미!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하네요. 역시 봐도 봐도 너무나 신기한 자연입니다.

1:37 AM


1:47 AM


쥐미 배 위쪽에 무늬가 참 복잡하고 신비롭게 느껴졌는데 (왠지 해독해 봐야 할 것 같은 외계의 문자 느낌ㅎ) 탈피 후엔 무늬가 많이 사라졌네요. 거기다 이제 날개로 덮여버리면 거의 영영 볼일이 없겠죠.

날개가 신기하고 예쁘기도 하고, 쥐미가 어른이 되어버린 모습에 섭섭하기도 하고, 1.5cm도 안 되던 애기에서 이렇게 멋지게 자라주어서 고맙기도 하고, 다리 부상 잘 이겨내 주어서 너무 기특하기도 하고... 복잡 야릇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2:15 AM

(조금씩 펼쳐지는 날개)


2:16 AM

(Fairy 쥐미)


2:36 AM

 

(중간중간 이렇게 살짝 털어주면서 날개를 정리합니다.)


2:53 AM

(거의 완전히 닫힌 날개의 모습)


부전 없이 드디어 우화 성공입니다.

6시간 넘게 몸을 짜내고, 1시간이 넘도록 탈피를 하고, 또 거기서 1시간이 훌쩍 넘도록 날개를 폈네요. 이 힘든 걸 폭우가 쏟아지고 천적이 노리고 있는 살벌한 자연에서 해내는 사마귀들,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 고생 많았다 쥐미야.

한때 널 거의 포기했던 거 미안해...

나한테 와서 총 5번의 탈피를 거치는 동안 우리는 쭉 한 팀이었는데

작고 힘없는 넌 최선을 다했는데 널 지켜줘야 할 내가 먼저 지쳐 버렸네.

성충이 되고 나면 몇 달 못 사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시간 동안 내가 만회해야 할 게 많구나.

너희 곤충들은 번식이 가장 큰 본능 중 하나인데,

네가 현재 가장 바라는 게 번식일 텐데,


이 추운 계절에 멋진 왕사마귀 수컷을 찾아 줄 수도 없고.

찾아 준다 해도 교미 후에 수컷을 먹는 너의 모습을 볼 자신도 없고.

네 새끼 수백 마리를 자연에 풀어주는 순간도 너무 괴로울 것 같아. 그렇게 태어난 애들 중 무사히 성충이 되는 건 열 마리도 안 된다고 들었어.

그냥 우리 둘이서 잘 살아 보기로 하자.

벌써부터 네 몸이 최상의 상태에서는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느낌인데

내 걱정 말고 갈 때 되면 가. 정말 괜찮으니까. 

우리 엄마는 내가 널 사람처럼 생각하는 걸로 알지만

사실 그렇진 않아.

난 보기보다 감정이 딱딱한 사람이야. 오래 키운 강아지나 고양이가 죽어도 운 적이 없어. 난 동물을 그냥 자연의 일부로 생각해. 네가 죽어도 자연이 그냥 자연이 되는 거야. 난 지금의 너도 대자연의 신비한 일부로 보고 있어. 

네가 내 곁을 떠나면 난 또 예쁜 애기 사마귀를 들이게 되겠지. 좀 더 일찍 들일 수도 있어. 네가 나에게 안겨준 값진 경험들 덕분에 다음 사마귀들은 훨씬 더 편한 충생을 보낼 수 있을 거야.

그 애들이 너한테 많이 고마워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없을 테니

대신 내가 늘 너한테 고마워하면서 살게.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 이쁜 쥐미. 사랑스러운 우리 세모 얼굴.


위 사진은 쥐미가 저한테 와서 처음 탈피했을 때와 방금 보신 최종 탈피 때의 허물입니다. 너무 기특하게 잘 성장했죠?

다음 쥐미 얘기는 쥐미가 갈색형 왕사마귀의 성충이 된 모습과 함께 스페셜 Q&A로 풀어볼게요. (위에서 보이는 저 색이 완성형이 아닙니다. 갓 탈피한 귀뚜라미가 뽀얗다가 까매지는 것처럼 쥐미도 몸이 마르면서 원래의 색을 되찾아요.)

긴 얘기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게 끝이 아니니 서운해 하시진 마세요! 앞으로도 전할 얘기가 많답니다.

쥐미 응원해주신 고마운 분들 모두 행복한 봄 맞이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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