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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쓰기 프로젝트/그림일기

2020년 3월 29일 그림일기 - 중독

by 라소리Rassori 2020.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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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그림일기를 올렸던 그다음 날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의 그림 일기는 앞으로는 서로 의무적인 답방을 줄이고 의미 없는 댓글은 달지 말자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함께 의견을 나누어보자는 내 말에 많은 분들이 좋은 얘기를 나누어 주셨다.

그런데 그 글에 대한 대댓글을 달다가 몸이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엄청난 두통이 밀려오고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침대에 드러누워서 끙끙 앓았다. 증세가 왠지 심상찮은 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죽을병인가, 코로나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도 전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온몸이 뭉개진 밥풀처럼 바짝바짝 뒤틀리며 말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을 텐데 열은 없고, 속이 메슥거렸지만 체한 것 같지도 않았다. 난 평소에 두통이 없는 사람인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증세가 특히나 무서웠다. 대체 무슨 일일까? 갑자기 몸이 왜 이러는 걸까?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건 분명한데 내 증세가 정확히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앓고 있는데 귀뚜라미와 사마귀들에게 물과 먹이를 챙겨줘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성충들은 크게 위험하지 않지만 효미 같은 어리고 작은 애들은 제때 돌보지 않으면 한순간에 위험해질 수 있다.

결국 억지로 일어나서 간신히 챙겨주고 다시 누웠다. 내가 아프면 내가 키우는 절지동물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처음으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프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파서 누워있는 사람들은 참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워서 폰을 들고 블로그에 대댓글을 달았다. 이유는 가만히 누워서 끙끙 앓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중요한 얘기들이 오가는데 진지한 마음 가짐 같은 건 챙길 여유가 없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블로그질을 이어갔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토할 것 같아서 최대한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머리에 뭔가가 번뜩 스쳐갔다.


그것은 바로 커피였다.


내 몸은 카페인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을병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커피 중독 증세였던 거다.

블로그 답방 관련 그림 일기를 올린 뒤 긴장을 했는지 그날은 웬일로 커피 마시는 것을 깜박해버렸다. 그렇게 서서히 두통이 시작되는 상태에서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최악의 상태가 되어 있었다.


둔하게도 그 원인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오후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커피를 챙겨 마셨다. 그리고 그 이후 끔찍한 두통과 메슥거림이 기적처럼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6년 전쯤 나는 커피를 끊은 적이 있다. 약 4년이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이유는 커피 판매자들의 상술에 내가 넘어가서 매일매일 커피를 마시는 것 같아서, 그리고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 기분이 싫어서였다. 원체 카페인에 약한 몸이기도 하다. 다시는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한국에 와서 그 결심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한국은 다양하고 맛있는 커피의 천국이었다. 카페든 편의점이든 어딜 가든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커피가 있었다. 메뉴마다 이름도 마음이 끌리게끔 잘 지어놨고 메뉴 사진도 하나같이 예쁘고 먹음직스러웠다.

그래도 안 마셔! 하고 처음엔 1년 가까이 버텼다. 선물로 커피 기프티콘을 받으면 남에게 줬다. 참는데까지 참아보았다.

그러다 결국 다시 카페인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도저히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카페인의 늪, 행복하다. 허우적 허우적...

다시는 여기서 안 나가고 싶어. 안 나갈 거야...



TIP: 커피를 끊으려면 서서히 끊어야 덜 고통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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