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타란툴라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것입니다. 거미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지난번 카엥이 얘기에서 1월 14일에 카엥이 집을 갈아주었고, 18일에 피딩을 했어요. 이제 그 이후의 얘기 시작할게요.
2020년 1월 21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어요. 고된 하루를 보낸 뒤(블로그 하느라ㅋㅋ) 완전히 지친 상태에서 자려던 참이었죠.
자기 전에 타란툴라 애들 바닥재와 벽에 물을 좀 뿌려 주기 위해 사육통 뚜껑을 열었어요.
그런데 카엥이의 사육통을 연 순간이었어요. 뭔가 이상했어요.
제가 코가 개코거든요. 공기 중에 얼핏 뭔가 썩은내가 스쳐갔어요. 아주 약했지만 도저히 잘못 맡았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히 냄새가 났어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일단 사육통을 책상 위로 옮겼습니다.
은신처 아래를 보아하니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저걸 또 부수긴 미안한데 어떡해야 할지... 갈아준 지 일주일밖에 안 되는 새집인데 말이에요.
설마 카엥이가 썩고 있는 건가 했는데 공사 진행 상황으로 봐서는 일단 카엥이는 살아있는 듯했어요. 아마 며칠 전 플라스틱 접시에 두었던 먹이가 문제가 된 것 같았습니다.
은신처 앞쪽에 흙을 좀 덜어내서 냄새를 맡아보았어요. 냄새가 나긴 나는데 미묘하더군요.
겉 흙을 좀 더 덜어냈어요. 또 새로 집을 갈아야 한다면 스트레스가 클 테니 웬만하면 냄새가 나는 부분만 떠내고 집은 그대로 유지시켜주고 싶었어요.
그러나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흙 여기저기에서 단백질 썩는 냄새가 올라왔어요. 흙을 조금 집어서 냄새를 맡아보면 긴가민가 싶을 정도였는데 잔뜩 모아서 맡아보니 확실히 났습니다.
결국 일주일만에 또! 집갈이 들어갑니다... 그것도 피곤에 쩔어 있는 새벽 시간에요...
문제의 그 먹이는 사실 도축해서 얼려둔지 이틀 정도 된 귀뚜라미의 상체였어요. 어느 날 갓 탈피한 귀뚜라미를 발견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피딩 타이밍이 맞는 애가 아무도 없어서 얼려두었거든요.
갓 탈피한 귀뚜라미는 애들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먹이인데 그냥 살려두면 금세 색이 까맣게 되면서 껍질이 단단해져요. 그래서 그런 경우엔 일단은 잡아서 얼른 얼려버린답니다. 그냥 냉장실에 넣어두면 기절은 하지만 살아는 있기 때문에 색도 까맣게 변하고 몸도 딱딱해져요.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면 바로 냉동실에 넣어야 합니다.
아무튼 그걸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접시 위에 올려뒀는데 그게 녹으면서 물이 많이 나왔나 봐요. 카엥이가 그걸 물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바람에 온 흙에 귀뚜라미 즙이 발려서 그게 상하기 시작했던 거고요.
같은 귀뚜라미의 나머지 부분을 먹은 렌지의 사육통은 다행히 냄새가 나지 않았어요. 렌지는 깔끔하게 먹었나봐요.
그렇다고 카엥이가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신나게 먹이를 먹은 것일 뿐이니까요. 초보 사육자인 제 잘못이었어요. 얼어 있는 음식은 녹인 뒤 물기를 좀 닦은 뒤 놓아둬야 한다는 걸 이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제 잘못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더욱 대환장할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냄새 사건부터 얘기 마무리할게요.
카엥이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일단 은신처를 치웠어요.
카엥이가 놀라서 벽에 붙었습니다. 귀뚜라미 상체가 꽤 컸는데 그걸 다 먹은 건지 배가 터질 것 같네요. 원래는 적당히 먹고 남기는 앤데 탈피 기간에 오래 못 먹었기 때문에 다 먹었나 봅니다. (먹이를 좀 더 작게 잘라줄걸...)
타란툴라 집갈이 해줄 때의 가장 기본은 바닥에서 해야 한다는 거예요. 누누이 말해왔지만 타란툴라는 조금이라도 높은 데서 떨어지면 배가 터져 죽거든요. 큰 타란툴라의 경우 "날계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20cm도 안 되는 높이에서도 터질 수 있대요.
그런데 이날의 저는 너무나 피곤했어요. 카엥이를 빨리 옮겨주고 자고 싶었어요.
바닥재가 다 너무 축축한 것 밖에 없어서 말리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보통은 그냥 쓰는데 왜 말리냐면... 그대로 쓰다가 곰팡이를 경험해봤기 때문이에요.
한밤에 생쑈를 해가며 새집(아래 사진 왼쪽)을 준비하고 나니 새벽 2시 반이었습니다. 이제 오른쪽에 있는 카엥이만 왼쪽으로 옮기고 자면 되는 거였어요.
그러나 세상에...
사육통 뚜껑을 치우고 새집 쪽으로 기울였더니 역시 카엥이답게 또 멀리까지 뛰쳐나갔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카엥이가 책상에서 아래로 떨어질까봐 저는 그대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어요.
그러다 잡으려고 조심스레 캐치컵을 들었는데... 바로 붕 날아서 결국 책상 아래로 떨어졌습니다.ㅠ
떨어진 뒤 아팠는지 잠시 못 움직이다가 다시 우다다 뛰기 시작하더군요. 한숨을 쉬며 지켜보고 있다가 카엥이가 멈췄을 때 캐치컵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새집에 넣는데 성공했어요.
하필이면 이날 유난히 배가 빵빵했네요. 혹시나 터지지 않았나 걱정하며 자세히 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눈으로 봐서 다친 곳이 없어 보인다고 다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순 없었어요.
오죽 답답했으면 "카엥아 배 괜찮아? 안 아파?"하고 카엥이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ㅋㅋ
뭘 더 이상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니 일단은 자야겠다 생각했어요. 책상 위가 난장판이 되어있었지만 그대로 두고 일단은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았어요. 카엥이가 다쳤을까봐 너무 걱정이 되었거든요.
타란툴라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에 대해 누워서 미친 듯이 검색해 보았습니다. 한국어로, 영어로, 그냥 닥치는대로 검색해봤어요.
거의 죽는다는 얘기뿐이어서 미치겠더군요. 배가 겉으로 안 터진 경우라도 속에 내장이 손상되어서 결국 죽게 된다는 말이 특히 절망적이었어요.
그나마 타란툴라 유체는 가벼워서 50cm 정도에서는 괜찮다고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카엥이보다 훨씬 작은 정말 애기 타란툴라를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제 책상은 70cm가 넘는 높이였어요.
아무리 피곤해도 책상에서 집갈이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엄청 자책하며 저도 모르게 잠들었습니다. (저처럼 하면 안 된다고 이런 글을 올리는 겁니다.ㅠ)
다음날 엄마한테 카톡으로 얘기했다가 집갈이를 바닥에서 안 했다고 야단을 맞았어요. 그 다음날에도 카엥이 괜찮냐고 물으시더군요. 처음에 제가 지네랑 타란툴라를 키운다고 했을 땐 연을 끊겠다고 하시던 분이 더 난리~😂
1월 25일
그 후로 4일이 지났어요.
생사를 확인해보고 싶은데 애가 시커매서 은신처 가장 안쪽에 붙어 있으면 아예 보이질 않아요. 그래서 피딩을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밀웜을 반으로 뚝 잘라서 렌지(왼쪽)와 카엥이에게 반반씩 나누어 주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일어나니...
카엥이 접시가 비어있었어요! 이렇게 밥을 먹는 건 입맛이 있다는 거고, 따라서 배가 아프지 않다는 거겠죠? 이렇게 또 십년감수를 했습니다. 속탈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네요.
저의 실수로 하마터면 카엥이 사육 종료 소식을 전해드릴뻔 했네요. 휴...
다음 카엥이 얘기는 2020년 2월부터 시작됩니다. 조금만 더 하면 실시간으로 따라잡을 수 있겠어요.
그럼 이번 사육 일기는 요기까지 할게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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