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초
*이 포스팅은 자른 밀웜이 나옵니다.
앞서 소개한 타란툴라인 킬로브라키스 카엥 크라찬 유체(이름은 카엥이)를 키운지 며칠 후의 상황입니다. 바닥에 뿌려둔 낙엽은 아무래도 썩을 것 같아서 치웠습니다. 그에 상관없이 카엥이는 너무나 귀엽게 굴을 만들어 둔 상태이고요. 물컵 오른쪽에 보면 출구도 꼼꼼히 만들어 두었습니다. 카엥이는 완전히 바닥까지 들어가서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이고, 얼핏 굴 입구에 다리처럼 보이는 것은 그냥 코코피트 그림자입니다.
은신처를 빨리 얹어주고 싶은데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마음에 쏙 드는 은신처가 없어서 (있을 경우엔 품절) 할 수 없이 스티로폼을 얇게 잘라서 얹어주었습니다. 문으로 보이게끔 그림도 살짝 그려 넣었습니다.
가벼워서 카엥이가 밀고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불편할까봐 이쑤시개를 잘라서 약간 움막 분위기가 나도록 해주었습니다. 처음에 와서 밀웜을 먹은지 며칠이 지났기 때문에 또 잘라서 낙엽에 얹어주었습니다. 그냥 흙에 얹으면 밀웜 즙이 스며들어서 썩을 것 같아서 낙엽에 얹은 것인데 그렇게 하니까 왠지 낙엽과 함께 썩는 느낌이 납니다.
무엇보다 카엥이가 밥을 먹지 않는 게 문제였습니다. 12시간이 지난 밀웜은 다시 꺼내서 버리기를 수차례, 이번엔 사탕 봉지를 깔끔하게 잘라서 사용해보았습니다. 낙엽처럼 젖는 일이 없어서 깨끗하고 좋더군요. 카엥이는 끝끝내 음식을 거부했지만요.
통 밖에서 보면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느낌인데, 카엥이가 약간의 빛도 너무나 싫어하는 것 같아서 나중엔 이 컵에다가 컵홀더를 씌워주었습니다. 테이크아웃 커피에 끼워져서 나오는 그런 컵홀더가 이 컵에 딱 맞더군요. 그런데 그걸로도 부족해 보여서 얇은 티슈도 통 뚜껑 위에 얹어서 더 어둡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아기 지네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먹이를 얹어두었습니다. 아래는 마하로나 오렌지 유체의 집입니다. 일단 한 번 숨은 뒤부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네 유체들 역시 절대로 밥을 먹지 않아서 12시간마다 밀웜을 버려줘야 했습니다. 초보 입장에서 기껏 자른 밀웜들이 계속해서 의미 없이 버려지니 점점 좌절이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단 몇 시간만 둬도 상해서 빼줘야 할 텐데 그나마 지금이 겨울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타란툴라든 지네든 초보에겐 유체를 권하지 않는다는 말을 체감하는 중입니다.
한 5일 정도 지난 뒤 결국 또 못 참고 이쑤시개로 살살 꺼내서 밥을 먹였습니다. 우암공원에서 잡아온 왕지네는 꺼낸 뒤 진정시키려면 한참 걸리는데 아래 사진의 마하로나 오렌지는 한두 바퀴 정도 돌다가 멍하니 동작을 멈춥니다. 그때 조심스럽게 밀웜 즙을 입에 갖다 대면 막 먹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먹고 나면 한 5일 정도는 힘들게 밀웜을 얹어 둘 필요없이 그냥 매일 한 번 벽면에 살짝 물만 스프레이 해주면 걱정이 없습니다. 스프레이 할 때는 흙이 습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흙은 살짝 촉촉하거나 차라리 살짝 건조하게 유지하는 것이 안전하고, 푹 젖는 수준까지 가면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는 그걸 모르고 아래 사진의 왕지네 유체의 집을 너무 습하게 만드는 실수를 해버렸습니다. 흙에 마음껏 물을 뿌렸었는데 조금만 더 그대로 계속했다면 큰일날 뻔한 상황까지 갔습니다. 특히 아래에 저런 묵직한 돌 종류는 반드시 치워주세요. 왕지네를 돌 아래에서 잡았기 때문에 돌과 비슷한 걸 찾아서 놓아두었던 것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이 녀석도 항상 저 도자기 조각 아래에 머무는 것을 좋아해서 도자기만 들면 항상 그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외에서처럼 바람이 부는 환경이 아니어서인지 아래 사진을 찍은지 얼마 뒤, 다리 하나 끝부분이 살짝 떨어져 나가는 등 문제가 생겼습니다. 습도도 그렇지만 환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 사건이었습니다. 지금은 사육장을 좀 더 좁은 곳으로 옮겨서 환기와 습도 조절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고, 다행히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마하로나 유체에게 밥을 먹이는 김에 이 녀석도 꺼내서 밥을 먹였습니다. 실컷 먹였으니 5일 정도 습도 조절만 잘 해주면 됩니다.
인터넷을 둘러보면 지네나 타란툴라 유체는 보통 그냥 흙 위에 자른 밀웜을 던져놓는 식으로 터프하게 키워도 잘만 크는 것 같던데 저는 아직 인내심이 부족한가 봅니다. 지네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줘야 할 텐데 고민이 많습니다. 혹시라도 탈피를 하려는데 꺼내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요. 일단 지네만 저런 방식을 쓰고 있고 타란툴라는 밥을 먹지 않더라도 건들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은 밀웜 얘기입니다. 사육통에서 가장 큰 네 마리를 꺼내서 작은 통에 옮겨담았습니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한 달은 살아있다는 글을 봐서 저도 한 번 그렇게 해 볼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데기가 될까봐 조마조마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냉장고에 넣어둔 이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차 하면서 꺼낸 것은 약 20일 후였는데 역시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더군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실온에 몇 분 놓아두니 다시 예전처럼 꿈틀거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네 마리 모두 멀쩡히 살아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정말 냉장고 안에서 한 달도 살 수 있는 듯합니다. (저는 큰 밀웜들만 해봤기 때문에 작은 밀웜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살아나서 꿈틀거리는 녀석들을 또 냉장고에 넣기는 미안해서 원래 살던 통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러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춥다가 따뜻해서인지 바로 다음날 전부 번데기가 되어있더군요. 아직 거저리 성충을 맞이할 자신이 없어서 귀뚜라미들의 밥으로 줘버렸습니다. 요즘 들어 다양한 호러가 펼쳐지고 있는 저의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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