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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먹이곤충

네 다리 귀뚜라미 계미 이야기 2 - 두 번의 추가 탈피. 과연 다리는 재생될 것인가!

by 라소리Rassori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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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절지동물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것입니다. 커다란 귀뚜라미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분명히 경고했는데도 굳이 보고 뭐라 하지 않으시길.



네 다리 귀뚜라미 계미 이야기 1


탈피를 하면서 동료들에게 뒷다리를 두 개 다 먹히는 바람에 다리가 네 개 밖에 남지 않은 계미. 보통 이런 애들은 빨리 먹이로 사용해 버리는데 계미를 보는 순간 문득 궁금해졌어요. 과연 다리가 다시 재생이 될지가 말이에요.

 



2020년 1월 9일 새벽 1시

 

귀뚜라미용 럭셔리 호텔 룸을 혼자 사용하면서 통통하게 잘 자라고 있는 계미예요. 꼬리 쪽 껍질이 광택이 없어지고 날개싹이 붕 뜬 모습을 보아하니 곧 탈피를 할 것 같아요.


날개싹이 저 정도 생기면 암컷일 경우 꼬리 끝에서 산란관이 나오기 시작해요. 계미는 없으니 수컷 확정입니다. 저는 어떻게 수컷이 되길 바라는 애들은 다 암컷이 되더니(쥐미, 효미) 암컷이 되길 바라는 애는 수컷이 되네요.

이 당시엔 제가 수컷 성충 귀뚜라미인 미치니의 울음소리에 밤낮으로 시달리고 있었어요. 얘들은 쌍별귀뚜라미라는 외래종이라서 한국 귀뚜라미처럼 운치 있는 그런 소리를 내지 않는답니다. 단 한 마리여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소리가 엄청 높고 시끄러워요. 그런 상황에 수컷 성충이 한 마리 더 생긴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더군요. 날개 한쪽을 자르면 소리를 못 내지만 계미는 뒷다리도 없는데 날개까지 자르기는 좀 그랬어요.

어쨌거나 먹이 곤충이 아닌 그냥 귀뚜라미로서 기르기 시작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키워보기로 했어요.

다리가 네 개 밖에 없다 보니 계미는 다른 귀뚜라미들과는 달리 손에 얹어 놓으면 밑으로 잘 떨어져요. 이런 배가 통통한 벌레들은 높은 데서 떨어지면 의외로 온몸에 받는 충격이 크기 때문에 안 떨어지도록 항상 조심해야 해요. 


귀뚜라미도 그루밍을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보고 있으면 재밌는데, 특히 뒷다리나 중간 다리를 그루밍하는 모습은 생각보다 웃긴답니다.

제 블로그를 쭉 봐오신 분들에겐 익숙한 모습일 텐데 사마귀는 낫으로 뒷다리를 붙잡고 그루밍을 해요. 그런데 귀뚜라미들은 낫이 없으니 몸과 다리를 좀 과하게 구부려야 그루밍이 가능해져요. 그래서 처음에 뒷다리 그루밍을 하는 귀뚜라미를 봤을 때는 무슨 병이 생겨서 몸이 뒤틀린 건 줄 알았답니다.

아래는 중간 발을 그루밍하는 중인 계미예요. 동글동글한 눈을 반짝이며 발을 핥는 모습이 정말 귀엽지만 그루밍인줄 모르고 본다면 무슨 일이 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같은 날 10:30 am


아침에 일어나서 쥐미랑 다른 귀뚜라미를 챙겨 주고 이것저것 하다가 뒤늦게 발견한 계미! 

아쉽게도 제가 안 보는 사이 이미 탈피를 해버렸어요. 색이 아직 연한 걸 보니 탈피한지 그리 오래 지나지는 않았네요.


안타깝게도 이번 탈피 후에도 다리가 저번과 다름없는 상태예요. 이제 다리 재생은 확실히 물 건너간 것입니다. 날개싹이 이 정도로 크면 이제 종령 귀뚜라미가 된 건데 그렇다면 앞으로 탈피는 한 번 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니까요.



1월 10일


계미가 밀기울 조각 하나를 집어 먹고 있어요. 입 주위에 있는 촉수palps를 손처럼 사용해서 먹이를 집어 들고 뱅뱅 돌려가며 맛있게 먹어요.


계미에겐 참 다양한 음식을 줘봤는데 가장 좋아하는 건 단연 밀기울이었어요. 그다음으로 애호박이었구요. 어렸을 땐 개사료를 더 좋아했는데 크면서 식성이 바뀌더군요.

 

1월 12일

 

시원하게 뻗어있던 왼쪽 더듬이가 잘렸어요. 아마 집 청소하려고 다른 통으로 옮기다가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왠지 성한 곳이 없는 것 같아서 똑땅...


1월 18일

 

전용 럭셔리 호텔룸 안에서 애호박을 먹고 있는 계미가 보이네요. 두 손으로 붙잡고 냠냠 열심히 먹고 있어요. 귀뚜라미들은 두 손으로 먹이를 붙잡고 먹는 모습이 참 귀여워요.


1월 19일

 

제 손 위에서 물을 마시고 있어요.


앗, 이것은 탈피 자세...! 곧 우화를 할 모양입니다. 계란판을 꽉 잡고 있어 줘야 할 두 뒷다리가 없는데 힘든 우화를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1월 20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화를 못한 상태였어요. 집 청소해주려고 옮기느라 잠시 손에 올렸더니 응가를 하네요. 응가가 큼직한 게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1월 23일

 

날개싹이 꽤 많이 부풀어 올랐어요. 보통 이 정도면 우화를 하는데 계미는 아직 못 하고 있어요. 매일 밥도 못 먹고 숨만 헐떡헐떡 쉬는 게 너무 괴로워 보였어요.

 

 

(괴롭게 헐떡헐떡...)


1월 26일

 

힘든 나날들이 너무 길게 이어졌어요.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계미의 상태가 안 좋아 보였어요.

그런데 이날 계란판을 들어내 보니... 앗! 계미가 우화를 했네요. 자기 탈피 껍질도 먹어 버렸어요. 잘렸던 더듬이도 재생이 되었네요!


네 다리로 어떻게 이렇게 탈피를 잘 해낸 건지 참 신기합니다. 우화 장면을 놓쳐서 너무 아쉬워요.

힘들었으니 물 좀 마시라고 손에 물을 많이 묻혀서 계미를 올라오게 했어요. 성충인데도 정말 쪼꼬미예요. 지금껏 봐온 쌍별귀뚜라미 성충 중 계미가 가장 작아요.


수컷 귀뚜라미답게 날개는 울퉁불퉁 제대로 나왔어요. 수컷 귀뚜라미는 보통 우화하고 나서 이틀쯤 지나면서 조금씩 울기 시작하는데, 부디 너무 시끄럽게 울지만 않길 바라며 날개는 손대지 않았어요.

손에 묻은 물을 조금 마시고 난 뒤 더듬이 그루밍을 하고 있네요.


아쉽게도 다리 재생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거 보려고 힘들게 따로 분리해서 키운 건데 말이에요.

뒷다리 잘린 사마귀의 다리가 재생된 것을 해외 포럼에서 본 적이 있는데(길이가 훨씬 짧은 부실한 다리가 나오긴 했지만) 그것도 계미처럼 너무 많이 잘린 경우는 안 되나 봅니다. 하나의 케이스만 보고 확실히 말하긴 그렇지만요.


뒤집어 봐도 저번에 비해 더 자라나온 게 전혀 없네요.


이것으로 계미의 다리 재생 실험 및 관찰은 끝났습니다. 다음 계미 포스팅에서는 계미가 여자 친구를 만나는 모습을 공개할게요.


이번 사육 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전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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