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타란툴라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것입니다. 거미 사진이 아주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은신처 만들기 1에서 이어지는 얘기입니다.
2020년 4월 3일
이번엔 화분 은신처보다는 훌쩍 더 큰 것이되, 너무 많이 크지는 않은 게 필요했어요. 마땅한 게 없어서 한참을 골머리를 앓았는데 여기저기 뒤지다 보니 예전에 일본 여행 중에 가샤폰 기계에서 뽑아온 뽑기 껍질이 나왔어요.
뽑기 껍질은 은근히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흔하고 평범한 건 다 버리고 예쁜 것만 보관하고 있었어요. 웬만하면 뽑기한 내용물까지 합해서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물건인데 그래도 다른 쓸만한 게 없으니 그냥 써 버리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애들 집으로 쓰는 것도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일단 인두기로 문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내추럴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비바리움 퍼티를 물에 개어서 겉에 발랐습니다. (위 사진 왼쪽에 보이는 황색 가루가 비바리움 퍼티)
멋지게 완성되었어요. 카엥이랑 렌지 거예요. 리니는 자라는 속도가 둘에 비해 느리기 때문에 나중에 얘네들 거 물려받으면 될 것 같아요.
그러나 불행히도 저 퍼티는 다시 다 씻어내야 했어요. 만들어놓고 보니 너무나 너무나 무거웠거든요.
혹 타란툴라가 아래에 깔리더라도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는 무게여야 하므로 할 수 없이 이 은신처는 탈락~! 이번엔 퍼티를 다 씻어내고 아크릴 물감으로 전체를 칠해보기로 했어요.
뽑기 껍질 위에 나있는 구멍은 테이프로 막고, 그 위에 또다시 칠했어요. 아래 사진에 나와 있는 상태에서 한두 번 더 칠했습니다.
저는 귀찮은 걸 필사적으로 피하는 사람이라 평소에 이런 걸 절대 하지 않는데 정말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네요. 앞으로 또 하게 될까봐 두려워집니다.
이제 카엥이를 꺼내서 옮길 차례예요.
마지막으로 카엥이가 열심히 지어놓은 깔끔한 집을 사진으로 남겨 둡니다.
은신처가 가벼우니 저 상태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군요. 이쪽 벽은 두꺼운 종이로 가려둬서 어둡게 해줬었죠. 카엥이는 빛이 들어오니까 놀라서 은신처 안으로 숨었네요.
카엥아, 이제 새집 가자!
이때 타란툴라는 바짝 쫄아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무는 것보다는 도망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물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니 "물리면 어쩔 수 없지"하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좋아요. 저는 맨손으로 은신처를 쥐었지만 걱정이 되면 양손 모두 핀셋을 쓰거나 두툼한 작업용 장갑을 끼는 방법도 있어요.
더러운 흙을 대충 떼어냈어요. 이제 헌 은신처를 새집에 놓아두고 남은 흙을 헌집으로 옮길 거예요.
열심히 조금씩 떼어내서 옮겼더니 이제 카엥이가 보이네요.
남은 흙을 마저 옮깁니다.
드디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카엥이!
아이고, 귀여워♡
밥을 많이 먹어서 배가 똥똥하네!
떨어지면 배가 터질 수 있으니 얼른 내려 줘야겠어요.
카엥이를 새집 안으로 톡~
오, 웬일로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고 얌전히 들어갔어요!
카엥이의 탈주를 대비해서 캐치컵을 옆에 뒀는데 너무 쉽게 끝나서 어리둥절했어요. 어쨌든 카엥이가 다치는 것 없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저번엔 잘 몰라서 바닥재를 너무 낮게 했는데 이번엔 바닥재 높이를 좀 높게 해 줬어요. 흙을 마음껏 파고 들어가서 카엥이 마음에 드는 집을 잘 지었으면 좋겠네요.
콩만한 게 바짝 쫄아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요.
생긴 건 이래도 아직 작고 겁 많은 아기 거미랍니다.
이제 헌집 정리가 남았어요.
헌집을 정리할 땐 흙을 그냥 확 버리지 말고 꼼꼼히 뒤져보면 좋아요. 거미줄을 어떻게 만든지도 볼 수 있고, 가끔 뭔가가 나올 때도 있거든요.
이번엔 곰팡이가 잔뜩 핀 밀웜 조각이 발견되었어요. 타란툴라는 먹이를 물어가더라도 배가 부르면 이렇게 안 먹고 그대로 둔답니다. 리니는 그런 적이 없는데 카엥이와 렌지의 집에서는 이렇게 배불러서 못 먹은 음식이 가끔 발견되네요. 밥을 좀 덜 줘야 하나봐요.
카엥이는 쓰레기를 집 밖으로 꺼내 놓는 재주를 갖고 있지만 전부 다 꺼내 놓는 건 아니었군요. 더 늦지 않게 집을 갈아 주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곰팡이가 타란툴라에게 즉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도 같이 둬서 좋을 건 없을 테니까요.
4월 5일
세상에, 집을 갈아 준지 이틀 만에 문이 만들어졌어요. 정말 빠른 건축 속도입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이렇게 필사적으로 했을까 싶어서 좀 가엽기도 했어요.
밤사이 여기저기 파헤치고 돌아다닌 건지 물통에도 흙이 들어가 있네요. 은신처 뒤쪽에는 출입구가 보여요.
제가 힘들게 만든 은신처인데 카엥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사육 일기는 여기까지예요. 그럼 전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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