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타란툴라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것입니다. 거미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카엥이와 마찬가지로 렌지 얘기도 한 달 만에 다시 하네요. 얘기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시간이 정말 무서우리만큼 빨리 갑니다.
4월 2일
오랫동안 밥을 안 먹고 속을 썩인 렌지. 드디어 밥을 다시 먹기 시작하고 그 이후 적당한 시간이 흘렀어요. 집을 갈아주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 되었습니다. (포스팅으로 보면 맨날 집 갈아주는 것 같지만 실제 날짜를 보면 두 달 정도의 간격이 있답니다.)
항상 그렇듯 왼쪽이 헌집이고 오른쪽이 새집이에요.
집을 뭉개기 전에 렌지의 집을 마지막으로 촬영합니다.
좀 어설프긴 해도 조그만 녀석이 열심히 지은 집이었죠.
일단 렌지가 숨어 있는 은신처를 뒤집어서 흙을 최대한 떼냅니다.
그리고 은신처를 통째로 새집에다 옮긴 뒤 렌지가 나오도록 살살 밀어줍니다. 다리가 밖으로 나온 게 보이는데 무서운지 안 나오고 버티네요.
이대로 계속해서 자극을 주면 밖으로 팍! 튀어나와 버리기 때문에 뚜껑으로 살짝 막은 뒤 다시 살살 밀어줍니다. 다행히 은신처에서 잘 나왔어요. 놀랐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네요.
렌지가 구석에 붙어서 떨고 있는 틈을 타서 얼른 헌 은신처를 꺼내 줍니다. 더러운 흙이 새집에 옮겨가는 것 거의 없이 잘 끝났어요.
렌지가 바닥에 가만히 있길래 살짝 뚜껑을 열고 사진을 찍었어요. 저번에 이러다가 탈출했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촬영은 해두고 싶어요. 사육통 벽에 가려지지 않은 깨끗한 사진은 이때가 아니면 찍기 힘들거든요.
예전에 비해 엄청 더 커졌어요. 처음 왔을 때 셋 중 가장 작았는데 지금은 렌지가 가장 커요.
깨끗한 은신처를 살며시 넣어 두고 뚜껑을 닫았어요. 조심하느라 했는데 렌지가 또 놀라서 구석에 들러붙었어요.
렌지는 쫄아 있도록 두고 저는 헌집을 청소했어요.
잘 뒤져보니 곰팡이가 핀 부분이 있더군요. 오렌지 바분은 습기가 좀 높은 걸 좋아해서 물을 자주 뿌려 줬더니 역시 이렇게 곰팡이가 생겼어요. 이번에도 더 늦지 않게 집을 갈아 주길 잘한 것 같아요.
렌지가 비록 집 밖을 멋지게 꾸미는 재주는 없어도 거미줄 하나는 참 촘촘하게 잘 친답니다. 거미줄 안쪽에 비치는 건 탈피 껍질이에요. 다리도 긴 녀석이 매번 어떻게 저런 좁은 곳에서 탈피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거미줄을 찢어서 탈피 껍질을 꺼내봤어요. 다리가 몇 개 없네요. 흙속에 섞여 있나봐요. 렌지 탈피 껍질은 성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잠시 후에 다시 보니 이상한 곳에 찌그러져 있네요. 하필이면 밖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얘는 어찌 된 게 숨는 것도 참 어설퍼요.
그 와중에 깨알 같은 거미줄 지붕도 쳐두었어요. 집 갈아준 지 겨우 한 시간 후의 상황이에요.
황갈색 털 때문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곰돌이 같기도 해요.
4월 3일
이젠 아예 엉덩이를 위로 들고 거꾸로 처박혀 있네요.
피딩할 때가 되어서 작은 귀뚜라미를 줬는데 너무 긴장했기 때문인지 먹지 않았어요. 괜히 밖으로 튀어나오기만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보니 렌지에 비해 은신처가 너무 작아요. 안에서 거미줄을 치고 탈피를 하기엔 저건 아무래도 좁아 보여요. 렌지는 은신처 안에 흙도 많이 쑤셔 넣으니 얼른 카엥이가 쓰고 있는 것과 같은 까만 은신처로 바꿔줘야겠어요.
그나저나 너 참 멋지게 잘 컸다. 🤭
조심조심 바꿔주었어요. 이제야 크기가 적당해 보이네요.
타란툴라 사육통은 타란툴라가 다리를 폈을 때의 4-5배 정도 크기면 적당해요. 현재 렌지의 경우 위 사육통이 결코 좁은 게 아닌 거죠. 게다가 렌지는 어차피 한번 땅 파고 들어가면 거기서만 생활하거든요. 야생에서는 땅 파고 들어간 뒤 평생 동안 그 자리에서 사는 일도 많다고 해요.
다만 땅을 파지 않는 저희 리니(그린보틀블루)처럼 배회성인 애들은 좀 더 넓은 곳에 두는 것도 괜찮아요.
잠시 여기서 배회성이란!
타란툴라는 종별로 배회성, 나무위성(교목성), 버로우성(지중성)으로 나뉘어요. 단어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 배회성은 그냥 지상 생활을 하는 타란툴라, 나무위성은 나무 위에서 사는 타란툴라, 버로우성은 땅 파고 들어가는 타란툴라예요.
그런데 이게 종별로 딱딱 정확하게 그런 특성을 보이는 건 아니고 개체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어요. 배회성 타란툴라라고 해서 배회성 딱 한가지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2-3가지 성향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답니다.
예를 들어 렌지 같은 오렌지 바분은 지금은 완전히 버로우성이라도 성체가 되어가면서 3가지 성향이 다 드러날 가능성이 많아요. 리니의 경우엔 처음엔 땅을 약간은 팠는데 지금은 전혀 파지 않아요. 따라서 유체를 키울 땐 각 개체의 습성을 잘 관찰해보고 그때그때 맞춰서 사육 환경을 세팅해주는 게 좋아요.
렌지 가슴팍에 하얀 건 흙이 벽에 묻은 거예요. (멋지게 나온 사진인데 아깝!)
[잠시 후...]
이번엔 은신처 위에 붙었어요. 안으로는 언제 들어갈 건지...
평소에 코빼기도 볼 수 없는 렌지를 이렇게 자세히 볼 수 있는 건 좋긴 한데 너무 불안해하니 안쓰럽네요.
근데 너무 많이 큰 모습이 볼수록 신기해요. 처음엔 그냥 작고 까만 길거미 같았는데 이제 제법 오렌지 바분 같아요. 오렌지 빛깔도 많이 나구요.
이날은 마침 카엥이 집을 갈아줬던 날이기도 하네요. (왼쪽이 카엥이) 렌지가 하루 더 빨리 이사를 했어요. 둘 다 완전 긴장 상태예요.
얘들아, 릴랙스~
아무래도 어둡게 해 준 뒤 시간이 좀 가길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다음 편에서는 렌지가 어떻게 은신처를 사용하고 어떤 집을 만들었는지를 공개할게요.
이번 사육 일기는 여기까지예요. 그럼 전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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