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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먹이곤충

네 다리 귀뚜라미 계미 이야기 3 - 여자친구 미니 등장

by 라소리Rassori 2020.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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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절지동물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글입니다. 커다란 귀뚜라미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계미 지난 이야기 - 두 번의 탈피

 



2019년 12월 27일

 

탈피 도중 동료들에게 뒷다리를 먹혀서 다리가 네 개 밖에 없는 계미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발견했을 때 쪼그만 게 개미 같아서 이름을 "계미"로 지어주었죠.

이번 얘기엔 미니라는 새로운 녀석이 등장합니다. 미니는 번식Five의 미치니, 계미 등과 같은 세대이고, 계미와 비슷한 시기에 귀뚜라미 사육통에서 분리해서 따로 키우게 되었어요.

먹이로 사용되지 않고 그렇게 선택이 되려면 뭔가 특이한 점이 있어서 저의 마음을 끌어야만 합니다. 분리해서 따로 키우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므로 어지간해서는 선택이 되지 않아요.

계미의 경우엔 과연 뒷다리가 재생이 될지 궁금해서 분리를 하게 되었죠. 오늘 나오는 미니는 유난히 성장이 느리다는 이유로 선택되었습니다.

같은 세대의 다른 귀뚜라미들은 다 성체가 되어 가는데 미니만 도무지 자라질 않더라구요. 귀뚜라미 키울 때 보면 큰 녀석들 사이에서 꼭 그런 애가 한둘 씩 있는데 보통은 꾹 참고 구해주지 않아요. 큰 녀석들에게 잡아먹히더라도 그건 네 팔자다 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면서 사육통 청소할 때마다 그 쪼그만 녀석이 아직 살아 있는지 체크를 하게 돼요. 살아 있으면 휴 다행이다 하면서 안심하구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도 보통은 그냥 내버려 둘 만큼 사육통을 하나 더 늘이는 건 성가신 일이랍니다.

미니도 처음엔 꾹 참고 그대로 뒀어요. 쪼그만 녀석이 용케도 잡혀먹지 않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더군요.

그러다 어느날 미니가 탈피한 것을 보게 되었어요. 그걸 보니 더는 그대로 못 두겠더군요. 결국 마음이 약해져서 따로 분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또 한 마리의 귀뚜라미가 먹이곤충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어요. 이제 누군가의 먹이가 되는 대신 평생을 편하게 살 수 있는 거예요.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기적 같은 일이 이 어린 귀뚜라미의 충생에 벌어진 거죠.


미니라는 이름도 이날 얻게 되었어요. 크기가 유난히 작은 게 특징이어서 지어진 이름이에요.

탈피한지 얼마 안 된 상태여서 기운 차리라고 물을 조금 먹였습니다. 또래의 다른 귀뚜라미들은 성충이 되어가는데 미니는 아직 성별 구분조차 되지 않는 애기입니다.

 

2020년 1월 19일

 

처음에 미니를 구해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따로 포스팅을 하게 될 줄 몰랐기 때문에 거의 촬영을 하지 않았어요. 쑥쑥 자라는 귀뚜라미인데 촬영을 20일 넘게 건너뛰었네요.

다시 촬영을 시작한 이유는 미니의 꽁무니에서 산란관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산란관이 있다는 건 즉 미니가 암컷이란 얘기죠.


이때쯤엔 계미도 수컷으로 성별이 구분이 된 상태였어요. 둘을 보고 있다 보니 나중에 짝을 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결정한 이후 미니도 다시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미니에겐 계미만큼 좋은 집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독방을 마련해 줬어요. 탈피할 수 있는 망과 함께요.

잠시 망을 치우니 바짝 긴장한 모습이에요. 자꾸 망을 이빨로 뜯어서 파란 조각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이때 미니와 계미를 바로 합사를 시키지 않은 이유는 둘 다 아직 탈피가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탈피하다가 둘 중 하나가 먹히면 곤란하니 성충이 될 때까지는 분리해두는 수밖에 없어요.

 

 

1월 25일

 

미니를 꺼내서 찍어 봤어요. 위 사진에서 한 번 더 탈피한 모습이에요. 이제 산란관도 많이 나왔네요.

계미에게는 없는 뒷다리가 길게 쭉 뻗어 있는 게 참 예뻐요. 계미도 뒷다리가 재생이 되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제가 자는 동안 탈피를 해버린 바람에 제가 발견했을 땐 이미 탈피 껍질은 맛있게 먹어 치우고 찌꺼기만 남아있더군요. (오른쪽 위에 있는 건 개사료 조각)


이제 미니도 꽤 자란 만큼 좀 더 넓고 좋은 집으로 옮겨줬어요. 뒤쪽에 계미의 집이 보입니다. 미래의 여자친구가 옆집에서 살고 있는 건 꿈에도 모르겠죠?

 

 

2월 3일

 

이 포스팅의 주인공인 계미예요. 1월 26일에 성충이 되었지만 여전히 몸집이 작아요. 날개 역시 몸에 맞는 작은 크기예요.


보통 귀뚜라미 수컷은 소음 방지를 위해 날개를 자르는데 계미는 그냥 뒀어요. 이전 포스팅에서 말한 대로 다리도 없는데 날개까지 자를 순 없으니까요.

그런데 기껏 그렇게 해줬는데도 이상하게 계미는 울지 않았어요. 보통 귀뚜라미 수컷은 성충이 된 이후 이틀만 지나도 조금씩 울기 시작하거든요. 계미는 뒷다리가 없는 영향으로 울지 못하는 건가 싶어서 왠지 좀 딱했어요.

 

2월 4일

 

미니가 탈피기에 들어갔어요. 식욕이 전혀 없는 상태예요.

이번에 탈피하면 드디어 성충이 되는 건데 그 이후 계미와 만나게 될 거랍니다.

 

2월 5일

 

갑자기 계미가 울기 시작했어요! 일반 귀뚜라미 수컷에 비해 소리 크기가 1/10도 안 되었지만 그래도 날개를 싹싹 비비면서 소리를 내게 되었어요.

 

제가 보면 멈추고,


숨죽이고 있다가 또다시 날개를 올려서 비비고^^

 


큰소리는 내지 못했어요. 날개 자체가 좀 망가진 느낌이에요. 두 날개가 제대로 맞물려야 하는데 왜인지 좀 엇나가 있어요. 시끄럽지 않아서 저에겐 다행이긴 했지만 좀 안쓰럽기도 했답니다.

보통은 미치니가 우는 소리가 너무 커서 계미의 소리는 묻혀서 들리지도 않는데 위 영상에서는 간신히 계미의 소리를 담을 수 있었네요.

(나를 발견하고는 다시 재빨리 숨는 계미)

 

2월 9일

 

드디어 미니가 우화를 했어요. 또래들보다 한 달 넘게 늦게 성충이 되었어요.

제가 발견했을 땐 벌써 이렇게 날개를 다 펴고 자기 껍질을 밟고 있더군요. 몸색이 이미 많이 까매진 것이 탈피한지 몇 시간 지난 것 같아요.

 

이제는 계미를 만나게 해 줘도 서로 잡아먹을 일은 없을 거예요.

 

 

미니를 다시 집에 넣어두고,

이제 계미를 미니의 집에 넣기 직전입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사육통 안에 물건들을 다 빼고~

드디어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한 두 귀뚜라미!

 

각자 오랜 시간 혼자 살았기 때문에 좀 어리둥절하겠죠? 앞으로 둘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다음 편에 또 공개할게요. 대단할 건 없는 그냥 네 다리 귀뚜라미의 잔잔한 일상 얘기가 될 거예요.

이번 사육 일기는 여기까지예요. 그럼 전 이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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