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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쥐미 사육 일기 20200715-17 Goodbye, Jwimmy 2

by 라소리Rassori 2020.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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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사마귀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것입니다. 곤충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20200702-14 Goodbye, Jwimmy 1을 먼저 봐주세요.



7월 15일

 

쥐미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하고 있어요.


몸이 많이 약해져서 일광욕을 할 때마다 마지막 일광욕처럼 느껴져요.


원래 사마귀의 꼬리는 날개로 가려져 있는데 꼬리가 이렇게 날개 옆으로 나오면 응가를 하려는 거예요.

 

그러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요. 배 마사지를 해줘 봤지만 소용이 없어요. 반응을 보아하니 배 자체에 거의 감각이 없는 듯해요.

 


7월 16일


이날도 일광욕을 했어요. 그런 뒤 마침 갓 탈피한 귀뚜라미가 있어서 쥐미의 낫에 쥐어줬어요.

맛있게 먹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쥐미가 이대로 멈추었어요. 입도, 몸도, 낫도, 더듬이도, 전부요.

 

이게 끝이라는 느낌이 왔어요. 쥐미를 살살 달래서 먹이를 낫에서 빼낸 뒤 제 손에서 쉬게 해주었어요.

 

천사 같은 우리 쥐미, 이제 보내줄 때가 되었네요.

 

제가 이날 먹은 복숭아가 마침 달달한 과즙이 넘치는 것이어서 쥐미에게 복숭아 물을 조금 먹였어요. 밥은 못 먹었지만 그건 아주 맛있게 마시더군요.

그 뒤부터는 물조차 못 마시게 되었어요. 복숭아 물이 쥐미가 먹은 마지막 음식이 되었네요.

그게 오후 3시쯤이었는데 캄캄한 밤이 되면서부터 몸에 힘이 완전히 빠지기 시작했어요. 움직임이 사라졌어요.

곤충은 이런 상태로 꽤 오래 살아 있기 때문에 이때 냉동실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어요.

곤충은 죽을 때가 되면 특히 배에서 표시가 확실히 나요. 수분이 빠진 느낌이 강하고 살아 있을 때의 탄력이 전혀 없어요. 쥐미의 배도 그런 상태였어요.

귀뚜라미였다면 이 상태에서 안락사를 시켰을 거예요. 곤충이 실제 어떻게 느낄 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과 똑같이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사마귀, 귀뚜라미, 지네, 거미 등 온도에 예민한 절지동물들은 냉동실에 들어가면 거의 바로 기절하고 죽음에 이르게 돼요. (안락사가 목적일 때는 이미 기절 상태와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냉동실에 넣지만요.)

그런데 쥐미는 쉽게 냉동실에 넣을 수가 없었어요. 더듬이와 미엽을 간간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아직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귀뚜라미였으면 보내줬겠지만)

 



7월 17일


0시가 지나고 새벽이 되었어요. 쥐미를 침대 위에 놓고 조금 떨어져서 폰으로 할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쥐미가 제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어요.

쥐미야, 너 어떻게 다시 살아났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요. 너무 놀라서 쥐미를 손에 얹고 놓고 한참을 마주보았어요. 쥐미도 저도 모든 신경을 서로에게 쏟았어요. 뭐라 말하기 힘든 정말 신비한 시간이었답니다.

 

(눈이 까만 건 사마귀는 어두워지면 눈이 까매지기 때문)

 

팔이 아파올 때쯤 쥐미가 다시 죽어가기 시작했어요. 넌 죽는 것도 참 이쁘게 죽는구나, 생각했어요.

 

쥐미야,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생명이 빠져나가는 느낌은 참 이상하지?

혼자 그렇게 되는 거라 생각하면서 외로워하지 마. 겁내지도 마. 나도 언젠간 지금의 너처럼 될 거야. 모두가 겪게 되는 일이란다. 무서워하지 말고 먼저 가 있어. 괜찮아.

마지막은 웃자.

Goodbye.

 



이게 금요일이었는데 하필 이번 금토일은 엄청 바빴던 탓에 이제야 글을 올려요.

저렇게 된 뒤 쥐미는 제가 자기 직전에 까만 망에 넣어두고 잤어요. 더듬이랑 미엽만 가끔씩 움직이는 상태여서 지퍼는 닫아두지 않았구요.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쥐미가 또 저한테 오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 보였어요. 2cm 정도 제 쪽으로 움직였더라구요. 손에 얹어보니 여전히 더듬이와 미엽은 제가 건들면 움찔거렸어요.

그런데 눈이 전날의 눈이 아니더군요. 전혀 초점이 없었어요. 더듬이와 미엽을 움직이지만 그건 쥐미가 살아 있어서가 아니라 신경이 약간 살아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제는 확실히 보내줘야 한다는 느낌이 왔어요. 제가 자기 전에 냉동실에 넣었더라면 쥐미가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서 좀 미안해졌어요.

슬슬 쥐미를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기 위해 나갈 준비를 시작했어요. 함께 묻어주기로 생각하고 있었던 무정란도 까만 망에서 떼어냈고요. 일반적인 사마귀 알처럼 예쁘게 만들진 않았지만 쥐미가 5시간 넘게 정성껏 낳은 알이었네요. 좀 달고나 같기도 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어요.


쥐미는 고이 싸서 냉동실에 넣었어요. 그리고 40분쯤 후에 다시 꺼내서 알과 함께 챙겨 나갔어요. 물론 더듬이와 미엽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한 것을 확인한 뒤에요.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상태에서 묻어버리면 큰일이니 확실히 해야 했어요.

 


쥐미가 묻힐 곳은 몇 달 전부터 봐두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향할 수 있었어요. 정말 아름답고 좋은 곳이랍니다. 앞으로 다른 애들도 죽으면 모두 같은 곳에 묻을 거예요.

묘지 사진은 혹시라도 누군가 발견하고 뒤져볼까봐 여기에 올리진 않을게요. 꽃으로 예쁘게 꾸몄다가 다시 전부 없애기도 했어요. 괜히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면 곤란하니까요.

비가 와도 괜찮도록 튼튼하게 해두었어요. 이미 다른 생물들에게 다 먹히고 없겠지만 그래도 말이에요. 쥐미를 보내면서 저도 쥐미와 같은 방식으로 자연 속에서 분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쥐미가 참 좋게 잘 갔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는 동안 잘 살아야 하기도 하지만 죽을 때도 잘 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무리 곤충이어도 이렇게 가기가 쉽지 않거든요. 밥을 못 먹게 된 이후로도 일주일 넘게 좀비처럼 살아있기도 하는데 쥐미는 밥을 못 먹은 그날 바로 죽어가기 시작했으니 그만큼 고통도 짧았을 거라 믿고 싶어요.

해줄 수 있는 것도 다해준 것 같아요. 2019년 10월에 태어나서 무정란 산란까지 했는데 총 9개월 정도 살았으면 정말 오래 산 편이기도 하고요. 좋은 것도 다 먹였네요. 천연 아카시아 꿀, 스위스 왕실 꿀, 수박물, 복숭아물, 연어회, 유기농이랑 친환경 채소 먹인 귀뚜라미, 밀웜, 손수 부화시킨 파리 등등. 열심히 해줘서인지 쥐미 보내면서 아쉬운 마음이 거의 안 들었어요. 똑같이 생긴 애를 기르고 싶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구요.

쥐미의 경우엔 솔직히 첫 3달은 좋았지만 나머지 시간은 수발을 너무 많이 들어야 했어요. 배가 무거워져서 거동이 쉽지 않았는데 마지막 몇 달 동안은 발도 하나씩 떨어졌으니 말이에요. 거기다 하루에 몇 번씩 놀아주기까지 해야 했으니 제가 생각한 사마귀 사육과는 너무 많이 달랐어요. 전 사실 조카랑도 안 놀아주고 못 놀아주는 사람이거든요.

무엇보다 사마귀가 쥐미 정도의 지능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개미 키우듯이 관찰하는 재미로 키우고, 죽으면 버리고...를 생각했는데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부분이었어요.

앞으로도 사마귀는 키우고 싶어요. 정말 매력 넘치는 곤충이에요. 죽는 부분 자체도 솔직히 큰 부담은 없구요.

하지만 수발드는 부분에서 앞으로는 조금 갈등이 될 것 같아요. 쥐미처럼 머리 좋고 애교 많은 애를 또 만나게 된다면 거기다 놀아주기까지 해야겠죠.

외출 시에 신경이 쓰이는 것도 생각 못했던 부분이에요. 효미를 포함해서 다른 애들은 외출을 해도 신경이 안 쓰이는데 쥐미는 정말로 저를 기다렸거든요. 제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더 이상 안 키우는 이유 중 하나가 그건데 사마귀가 저를 기다릴 줄이야...

특별한 교감 없이 그냥 단순히 관찰하고 기록하길 바라는데 아무리 절지동물이라도 매일 보다 보니 교감이 오가지 않을 수가 없네요. 특히 쥐미랑은 너무 오가버렸어요.

그랬던 덕분에 쥐미와의 시간이 마음속에 소중하게 남긴 하겠죠. 참 귀엽고 독특한 녀석이었는데 시원섭섭하네요. 섭섭보다는 시원이 더 큰지도 모르겠어요. 쥐미가 전혀 없는 하루를 정말 오랜만에 맞이했는데 너무 많이 편해져서 미안할 정도예요. 쥐미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되어서 좋기도 하구요.

쥐미 아직 살아있냐는 질문을 점점 더 안 받게 될 걸 생각하니 좀 후련해지기도 해요. 절지동물을 키우면 아직 살아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되는데(워낙 잘 죽으니) 특히 쥐미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요.

강아지나 고양이라면 "아직 살아있냐"는 질문 잘 안 할 것 같은데 절지동물은 너무 쉽게 그런 질문을 하니까 솔직히 좀 불편하더라구요. 이쪽 세계에 어린 학생 분들이 많기도 하고 해서 이해는 되지만, 말이 없으면 그냥 죽었거니 하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바일뿐, 사실 기대는 안 하게 되긴 하네요.ㅎ

지금까지 쥐미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지켜봐 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쥐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마귀로 살 수 있었어요.

언젠가 또 쥐미처럼 사랑스러우면서 조금 덜 똑똑한 왕사마귀를 만날 날이 오길 바라며, 이만 마무리할게요! 😊

쥐미와의 첫 만남

쥐미 첫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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