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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먹이곤충

귀뚜라미 수컷 날개 자르기 (날개 제거)

by 라소리Rassori 2020.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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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사진 꽤 많이 세니까 주의해 주세요. 도저히 썸네일로 쓸 수 있는 사진이 없어서 관계없는 사진을 하나 넣겠습니다.


하... 이번엔 욕먹을 각오를 하고 올립니다. 저 역시 다른 사육자들의 실수 경험담을 보면서 많이 배웠기 때문에 제 실수도 매번 올리려 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초보 사육자 분들이 이걸 보신다면 그분들이 키우는 귀뚜라미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받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단 설명을 하자면, 사마귀와 마찬가지로 귀뚜라미 역시 우화를 해서 성충이 되면 없던 날개가 생겨납니다. 그 전까진 탈피를 거치면서 성장하다가 성충이 된 이후부터는 탈피를 하지 않게 되죠. 이런 성장 과정을 불완전 변태라고 합니다. 사실 그게 뭐든 간에 사육자 입장에서는 건강하게 잘 크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수컷 쌍별귀뚜라미의 경우 건강하게 성충이 된 것이 끝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날개 제거"라는 하나의 단계가 더 남아 있을 수도 있어요. 조용한 사마귀나 귀뚜라미 암컷과는 달리 이 녀석들은 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답니다. 그것도 아주 크게 말이에요.

제가 귀뚜라미 수컷 우화 포스팅에 제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하는 소리를 올렸었는데요, 처음엔 예쁜 새소리처럼 참 듣기 좋았습니다. 조그만 게 열심히 소리를 내는 것이 너무 귀엽기도 했죠. 수컷 두 마리를 골라서 날개를 유지시켜줬는데 두 마리 정도면 소리가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중 한 마리의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쌍별귀뚜라미가 한국 토종 귀뚜라미에 비해 고음이라서 듣기에 고통이라더니 그 말이 뭔지 바로 와닿을 정도였어요. 어찌나 시끄러운지 겨우 한 마리가 내는 소리인데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군요. 하루 종일 큰소리로 짹짹 울어대는 새가 한 마리 있는 것보다 더 시끄럽다고 하면 상상이 가실까요.

참고 참다가 결국 날개를 자르기 위해 녀석을 손에 잡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위를 들고 보니 그렇게 신나게 날개로 연주하던 녀석으로부터 차마 날개를 뺏을수가 없더라구요. 성충은 살아봤자 20-30일이라고 하니 그동안 그냥 참기로 하고 다시 사육 케이스에 넣어주었습니다. 

대신 아직 성충이 안 된 나머지 수컷들은 과감히 날개를 잘라버렸습니다. 여러 마리가 우는 끔찍한 상황을 미리 막을 생각이었죠. 힘들게 생겨난 날개를 자르는 것보다는 아직 날개가 되지 않은 싹을 자르는 게 덜 미안할 것 같기도 했고요. 검색해보니 날개싹을 자른 귀뚜라미를 파는 곳도 있길래 더 안심하고 잘랐습니다. 어차피 쥐미나 타란툴라들이 귀뚜라미 날개까지 먹진 않을 것 같기도 했고, 귀뚜라미 입장에서도 우화할 때 덜 힘들 것 같았어요.

검색하다 보니 귀뚜라미 날개를 자르는 것이 동물학대라는 사람도 있던데 그러면 파리채로 파리 잡는 거나 갑자기 신발장에 나타난 귀뚜라미에게 살충제를 뿌리는 건요? 저는 적어도 제가 키우는 귀뚜라미들이 사는 동안엔 최고로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이고,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답니다. 결코 하찮은 생명으로 여기면서 무시하지 않고 쥐미와 마찬가지로 존중해주고 있어요. 

이런 경험을 하면서 마치 양계장을 운영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답니다. 정성들여 기른 것을 때가 되면 도축하는 면에서 말이에요. 고기를 먹을 때마다 몇 번이고 더 생각하게 되기도 해요. 동물이 불쌍하다는 쪽으로 말고 (불쌍하기도 하지만), 내가 먹는 동물은 과연 무엇을 먹고 어떻게 자란 것일까, 하는 쪽으로 말이에요.

저의 소중한 절지동물들이 먹을 귀뚜라미들이기에 저는 귀뚜라미들의 음식에 많은 신경을 쓴답니다. 고이고이 길러서 먹이가 되게 해요. 그런데 과연 우리가 먹는 고기 중에선 그렇게 좋은 음식만 먹고 쾌적한 환경에서 자란 동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먹는 동물들은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진 사료를 먹고 자라는 걸까요? 

문득 오래전에 읽은 미국 자연식 책에서 직접 정성들여 키운 칠면조를 최대한 고통 없이 죽여서 잡아먹는 가족의 얘기가 나왔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을 직접 경험한 대신 아마 인간이 구할 수 있는 가장 깨끗한 고기를 먹었을 거예요.

얘기가 딴 데로 샜는데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보았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일단 날개싹이라는 것은 이렇게 생겼어요. 아래의 녀석은 우화하기 직전이라 날개싹이 밖으로 확 드러나는데 더 어린 애들은 작고 얇은 날개싹이 몸에 착 달라붙어 있답니다. 총 네 개가 있는데 위에 두 개가 소리를 내는 날개가 되는 거예요.


우화를 해서 날개를 달면 아래의 모습이 됩니다. (그 아래층에는 좀 더 어린 녀석들이 사는데 저를 보고 있는 모습 보이시나요ㅋㅋ 귀뚜라미들 참 귀여워요.)  


아래는 날개싹을 자른 귀뚜라미 수컷의 모습입니다. 위에 두 개만 자르려다가 자르는 김에 그냥 네 개 다 잘랐어요. 진물이 좀 나왔지만 검색해봤던 대로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어요. 저는 이걸로 이 녀석은 먹이가 될 때까지는 고통받는 일 없이 행복하게 잘 살줄 알았답니다. (이 와중에 고개를 쭉 빼고 있는 동그란 머리통이 너무 귀엽네요.)


그런데 우화를 한 직후의 모습을 보면서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날개싹을 잘랐을 때 조금 나오고 말았던 진물이 우화 직후에 훨씬 더 많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위에 사진처럼 진물 없이 멀쩡히 잘 살다가, 우화를 하면서 뭔가 상처가 다시 터진다는 얘기입니다. 아래 사진은 위의 녀석과는 아마 다른 개체일 텐데 날개에 진물이 맺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래 사진의 녀석도 또 다른 개체이긴 할 텐데, 몸이 다 마른 뒤에도 뭔가 등쪽이 많이 안 좋아 보입니다. 진물은 처음에만 나오고 말았지만 마치 크게 다쳤던 흉터처럼 되어버렸어요. 다행히 밥도 잘 먹고 평소처럼 잘 지내긴 합니다만, 날개싹을 자를 때 너무 바짝 잘랐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아마 끝쪽만 살짝 잘랐어야 했나 봅니다.


오늘의 교훈:

1. 날개싹은 자르지 말자. 
2. 웬만하면 우화를 하고 날개가 다 마른 뒤에 잘라주자. 울지 못할 정도로 최소한만.

그나마 다행히 저의 무지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은 소수의 귀뚜라미들입니다. 먹일 애들이 별로 없어서 많이 키우지 않거든요. 그래도 볼 때마다 미안하네요. 부디 곤충은 고통을 느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맞길 바랄 뿐입니다. 사후 세계가 존재하지 않길 빌기도 했답니다. 혹시 귀뚜라미들이 바글거리는 지옥이 있다면 큰일이니까요.

살아있는 생명체들끼리 먹고 먹히는 관계... 참 어렵습니다. 눈감고 모른 척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괴로워서 소싯적에 몇 년간 채식을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저도 고기를 포기할 수는 없더라구요.

귀뚜라미 날개 제거 얘기를 하려다 다른 얘기도 많이 하게 되었네요. 제가 위에서 얘기했던 시끄러운 녀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울고 있답니다. 울기 시작한지 12일째인데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짧고도 굵은 귀뚜라미의 충생에 문득문득 경의를 가지게 됩니다.

 

*추가*

 

쌍별귀뚜라미 날개 제거 및 울음소리

 

귀뚜라미 성충 수컷의 날개를 일부만 잘랐을 경우와 그런 귀뚜라미들의 울음소리는 어느 정도인지를 보시려면 위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혹시 눌러지지 않는다면 제 블로그에서 "날개 제거"라고 검색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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