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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약충 쥐미 일기 - 20191127-1203

by 라소리Rassori 2020.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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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사진 주의해 주세요~


오늘은 평화로운 쥐미의 일상을 보여드릴게요. 제가 자꾸 힘들어 보이는 일들을 올려서 그렇지 실제 절지동물 사육시에는 평화로운 나날들이 더 많답니다. 그리고 힘들어 보이는 일들도 제가 초보라서 벌어지는 게 대부분이에요. 얼른 고수가 되어서 느긋해지고 싶네요.


11월 27일

새끼 귀뚜라미가 물에 푹 적신 휴지에 있는 물을 쪽쪽 빨아먹고 있습니다. 그 위에서는 쪼꼬만 쥐미가 귀뚜라미를 노리고 있구요.


귀뚜라미들은 물 마시는 걸 아주 좋아한답니다. 좋아한다기보다 갈증을 자주 느낀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사마귀도 물을 마시지만 그보다 귀뚜라미들이 훨씬 자주 마십니다.


물휴지를 구석에 둔 이유는 사육 케이스 내의 습도 조절 때문입니다. 곤충들이 물을 빨아 마시기 때문에 자주 갈아주고 신선하게 유지해줘야 합니다.

겨울이라 건조해서 벽에도 하루에 두 번 정도 물을 뿌려주는데 쥐미는 휴지까지 내려가는 일은 잘 없고 보통 벽에 있는 물방울을 마십니다. 여름은 아직 안 겪어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여름엔 물휴지를 치우고 벽에만 분무를 해주는 게 좋을 듯합니다. 곤충이 물에 빠져 죽지 않을 정도로 크다면 바닥 구석에 물을 뿌려두는 것도 괜찮아요. 날씨가 너무 덥다면 물휴지 관리가 잘 안될 것 같네요.

쥐미가 벽으로 톡 튀어가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낫을 휙 뻗어서 귀뚜라미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벽이나 천장에서는 잘 떨어지는데 귀뚜라미 무게가 더해졌는데도 다행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훨씬 작은 먹이인데 뭘 그렇게 매번 겁을 먹고 긴장하는지, 쥐미는 아마 자연에서 태어났다면 1-2령 단계에서 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너무나 섬세하고 여린 아이에요.


11월 28일

이번엔 냉장고에 잠시 넣어둬서 기절한 귀뚜라미를 주었습니다. 사마귀는 원래 먹이가 안 움직이면 사냥을 안 하는데 이렇게 흰 바탕에 까만 귀뚜라미를 놓으면 잘 보여서인지 집어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귀뚜라미가 기절을 했어도 실온에서는 곧 깨어나기 때문에 금세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캐치하는 순간 쥐미의 낫이 뻗어나가는 거죠.


상대가 약한 것을 느꼈는지 이번엔 큰 망설임 없이 날름 집어먹었습니다.


이때 아마 제가 귀뚜라미가 기절해있는 동안 귀뚜라미 입을 눈썹 가위로 살짝 자른 상태였을 거예요. 귀뚜라미의 턱 힘은 저 크기만 되어도 꽤 강하거든요. 쥐미가 다칠 가능성은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애초에 제거를 해버립니다. 실제로 사마귀 성충이 귀뚜라미 성충을 먹다가 낫 같은 부위를 물리는 경우가 있는데, 아직 어리다고 해서 그럴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건 아닐 듯합니다.


아래는 쥐미의 응가입니다. 이 시기에는 하루에 똥을 10개 정도 눴어요. 보통 한 자리에 오래 매달려 있기 때문에 똥도 한 자리에 모여 있답니다.


건조해서 또르르 굴러다니는 똥이라서 청소는 쉽습니다. 냄새도 안 나요. 하루에 한 번 탁탁 털어서 버려주고 사육통을 깨끗이 씻어주면 됩니다. 통을 씻는 이유는 쥐미가 설사인지 오줌인지를 조금씩 벽에 묻히기 때문이에요. 우연인진 몰라도 귀뚜라미 뱃속에 채소가 많을수록 그런 비율이 높았습니다.

사마귀가 소화를 잘 못 시키는 물질이 귀뚜라미에게 많다는 소리가 있는데, 그래서인지 해외에서는 파리를 사서 먹이는 사육자들이 많답니다. 근데 미국 포럼을 열심히 검색해봤는데 딱히 근거가 있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아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깨끗하게 키운 귀뚜라미를 먹인다면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귀뚜라미 사육통이 좁고 환기가 안 돼서 악취가 나고 귀뚜라미가 상한 먹이를 먹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귀뚜라미도, 그것을 먹는 사마귀도 아플 수밖에 없겠죠. 혹시 귀뚜라미를 먹은 사마귀가 아프다면 귀뚜라미 사육 환경을 꼭 체크해 보세요.

아침을 먹고 나서는 언제나 두 시간 동안 일광욕을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빛을 받으려고 몸을 납작하게 하는 게 너무 귀여워요. 저 상태로 꼼짝 않고 두 시간은 거뜬히 지나갑니다.


일광욕 후에는 식물 위에서 조금 놀게 해주었습니다. 매일 이렇게 하면 녹색으로 변한다고 하던데 전혀 녹색으로 변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계속 녹색 물건들을 열심히 놓아두었는데도 조금의 색깔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때만 해도 저는 환경에 따라 사마귀의 색깔이 변하는 걸로 알고 있었답니다. 실제 벌러지 사장님의 유튜브 영상에서도 UVB 램프를 하루에 2시간, 30센티 거리에서 쬐어주면 갈색이 녹색으로 변한다는 얘기가 나왔구요.

그런데 그런 것보다는 유전적인 게 가장 크고, 그다음으로 온도, 습도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 영향으로 인해 다른 색으로 탈피하는 사마귀도 있다고 해요. 하지만 그런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저번에도 얘기했듯 그냥 갈색형, 녹색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둘 중에선 갈색형의 비율이 더 높다고 해요. 어쨌든 중요한 건 쥐미가 무슨 색이든 제 눈엔 그저 귀여울 뿐이라는 겁니다.


12월 1일

드디어 12월 일기로 따라잡았습니다. 백만 년 전 저의 초딩 시절,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쯤 미친 듯이 밀린 일기를 쓰던 기분이 살짝 되살아나는군요.


맛있게 밀웜을 먹고 연두색 뚜껑 위에서 UVB 램프를 쬐고 있는 쥐미입니다. 본인에게.. 아니 본충에게 빛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아서 몇 시간이고 빛 아래에서 얌전히 자리를 지킵니다.


이날 이후 사마귀의 몸 색깔에 대한 진실을 깨닫고는 녹색을 가까이하게 해주는 건 그만뒀습니다. 그러나 UVB 램프를 쬐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매일 하고 있답니다. 충분한 빛을 쬐어주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UVB 램프는 사마귀 사육에 필수 아이템이라 생각합니다. 건강과 활력이 달라진답니다.

쥐미의 저녁식사로는 마침 탈피한 귀뚜라미가 보여서 잡아 주었습니다. 갓 탈피한 곤충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크기가 커도 쉽게 사냥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밀웜을 배불리 먹은 탓인지 다 먹진 못했습니다.


12월 3일

아침에 귀뚜라미 사육통을 청소하려고 열었는데 마침 적당한 크기의 녀석이 탈피를 하고 있습니다. 귀뚜라미들은 탈피 도중 동료들에게 많이 뜯어 먹히기 때문에 동료를 피하기 위해 저렇게 사육통 벽에 붙어서 탈피하는 애들이 종종 있어요. 발을 탄탄하게 고정하려면 계란판 같은 거친 종이에 매달려야 하는데 미끄러운 플라스틱에서 위태롭게 저러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머리를 좀 쓰긴 했는데 저러다 아래로 떨어지면 바로 먹히는 겁니다. 먹히지 않더라도 탈피 부전이 일어나구요. 게다가 이 녀석의 경우 하필이면 탈피 타이밍까지 최악이었습니다. 저한테 딱 걸려버렸네요.


쥐미의 사육통 뚜껑을 열어서 피딩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귀뚜라미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마르지 않은 몸으로 힘겹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쥐미가 먹질 않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봐도 먹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순간 "탈피"라는 단어가 제 머리를 스쳐갑니다. 사마귀는 성충이 될 때까지 대략 10일에 한 번씩 탈피를 하는데 지난번 쥐미의 탈피가 11월 25일, 이날이 12월 3일이었습니다. 탈피기에 들어서서 슬슬 거식이 시작된 것이죠. 덕분에 귀뚜라미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 정도 크기의 왕사마귀는 탈피 전에 이삼일 정도, 탈피 후 하루이틀 정도 밥을 못 먹는데 먹는 걸 너무나 좋아하는 쥐미가 그렇게 오래 굶는 것을 보는 건 저에겐 무척 괴로운 일입니다. 탈피 전에는 억지로 먹이면 안 되고, 먹이를 사냥하게 해보고 만약 먹는다면 먹도록 두면 된답니다.

큰 먹이는 거부했으니 작은 핀헤드를 하나 줘봤습니다. 다행히 획 집어 먹었습니다. 다 먹은 뒤 하나 더 줘 봤는데 먹다가 버리더군요.


그새 또 탈피라니, 쥐미가 탈피하다가 잘못될까봐 그저 마음이 무거울 뿐입니다. 사마귀 사육자로서 탈피기가 정말 제일 두렵고 싫어요. 다음 쥐미 얘기는 쥐미의 5번째 탈피 얘기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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