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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쓰기 프로젝트/그림일기

2020년 2월 2일 그림 일기

by 라소리Rassori 2020.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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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은 보통 그렇겠지만, 나 또한 어렸을 때는 당연한 듯 내 몸을 씻는 것을 어른들에게 맡겼었다. 그러다 초등 5학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혼자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라기보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 혼자서도 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 깨달음을 얻고 혼자 샤워하는 방법을 터득한 뒤부터는 주로 집에 아무도 없을 때를 노려서 샤워를 했다. 그것이 마음이 편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갈아입을 깨끗한 옷을 욕실 문 앞 바닥에다 꾸며두기 위해서였다.

콧노래를 부르며 우선 상의를 발랄한 포즈로 펼쳐두고, 그 밑에 하의를 끼워 맞춰서 전체적으로 조화를 봐가며 포즈를 만들었다. 양말은 발을 표현해야 했기에 빠질 수가 없었다. (속옷은 욕실 앞에 있던 금고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뒀던 것 같다.)

다 한 뒤 위에서 내려다보면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이걸 뿌듯하게 보다가 샤워하러 들어가는 거다.


그 당시 내가 했던 거의 모든 것이 그러했듯, 그 행위 역시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샤워를 다 하고 나와서 옷이 그렇게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씩 입을 때 즐거울 것 같았을 뿐이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매번 샤워하고 나올 때마다 심장이 떨어질 듯 놀라야 했다. 지금의 나도 그렇지만 그 당시의 나는 샤워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무한 공상에 빠져들었다. 온갖 잡다한 상상에 빠져들며 세상과 내가 분리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가 옷을 그렇게 해두었다는 것을 언제나 까맣게 잊게 되었다. 그런 상태에서 별 생각없이 밖으로 나오면 웬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이다.


실제로 너무 놀라서 꺅!이나 엄마야! 같은 소리가 매번 절로 터져나왔다. 누워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자각과 내 손으로 옷을 그렇게 해두었다는 기억은 꼭 한껏 놀라고 나서야 뒤따라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습관처럼 샤워하기 전엔 꼭 욕실 문 앞에 다양한 포즈로 옷을 펼쳐놓았고, 샤워를 하고 나올 때마다 놀라서 펄쩍 뛰곤 했다.

가끔씩 이 일이 떠오를 때면 나는 다른 사람들도 아마 똑같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샤워를 하는 20분 동안 정말 완전히 잊게 된다. 심장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심심할 때 한번 도전해보시길.


오늘의 중국어. 윈동 이호우 씨자오. 운동한 후에 샤워를 합니다.


이번에도 한국어와 비슷한 발음들이 있다. 운동은 윈동, 이후는 이호우.
씨자오는 씻는다는 뜻인데 나는 "씻자~"라고 하면서 외웠다. 그리고 씨자오 한자에 보면 부수로 물水이 둘 다 붙어 있고, 자오에 보면 네모난 비누 3개가 나무 위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운동한 후에 샤워를 합니다" 라는 부드러운 느낌인데, 중국어는 터프한 매력이 있다. "운동 후 씻다." 그냥 꼭 필요한 단어만 시크하게 툭툭 던지는 느낌이다. 참고로 발음할 땐 내가 김준호라는 생각으로 과장된 표정을 곁들여서 하면 더 잘 된다.

씨자오의 발음은 아래 다음 사전 링크에서 들어볼 수 있다. 억양이 좀 이상해도 그대로 따라하지 않으면 중국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한다. 씨자오xizao 의 i와 a 위에 붙은 u자 같은 모양을 중국어의 성조 중에서 "3성"이라고 하는데, 3성은 뭔가 속이 울렁거려서 입덧하는 느낌으로 하면 된다.

https://dic.daum.net/word/view.do?wordid=ckw000131718

아재 같은 소리지만 스피커 모양 버튼을 클릭하기만 하면 발음이 나오니 정말 좋은 세상이 되었다. 내가 대학 다닐 땐 드럽게 불편한 전자 사전 썼었는데. 요즘은 그냥 언어 공부 쉽게 하라고 상이 다 차려져 있는 느낌이다.

오늘 얘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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