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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사마귀

왕사마귀 약충 쥐미 일기 20191220-23

by 라소리Rassori 2020.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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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절지동물 사육자 또는 애호가 또는 굳이 보시겠다는 분들을 위한 포스팅입니다. 곤충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주세요.


12월 20일

쥐미가 악몽 같은 탈피를 하고 난 다음날입니다. (지난번 악몽 탈피 포스팅 ☞ 클릭)

아래는 계속 같은 자리에 붙어 있다가 탈피 후 첫 똥을 누는 모습입니다. 원래 통통하던 배가 제대로 먹질 못해서 홀쭉하고, 꼬리 끝에서 까만 똥이 나오는 중입니다. 수술 후 첫 똥처럼 탈피 후 첫 똥도 왠지 반갑습니다.


낫은 원래 얌전히 접고 있는데 절 보고 긴장해서 편 거예요. 아무래도 몸이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라 약간 경계 상태입니다.

밥은 탈피 후 33시간 정도 지나서 작은 귀뚜라미로 한 마리 주었습니다. 몸을 12시간만 말려도 거뜬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커갈수록 몸 말리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집니다. 이때쯤 처음으로 사육통 천장에 루바망을 얹어두었는데 쥐미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주 매달려 있었습니다.


밥을 먹고 난 후엔 사육통에서 나오고 싶어해서 꺼내보았습니다. 반갑다는 듯 제 손과 팔을 타고 오르는데 역시나 다친 다리가 많이 불편해 보이더군요. 제대로 못 서고 납작하게 기는 듯한 모습에 머리가 어질했어요.

몸이 마르면서 돌아오겠지 하며 끝까지 현실을 부정했는데 보면 볼수록 결론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쥐미의 다리는 원래의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쥐미가 저에게 온 뒤 3령에서 시작해서 힘들게 종령 사마귀가 되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이었습니다. 성충이 되기 바로 전 단계인 종령 시기는 일생에서 가장 활발하고 어마어마한 식성을 보일 때입니다. 신나게 사냥을 하고 즐겁게 뛰어다닐 시기죠. 

그런데 뛰어다니는 건 물론 사냥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거예요. 사냥을 하려면 저 커다란 두 개의 낫을 힘껏 휘둘러야 하고, 그 순간에는 네 개의 다리가 튼튼하게 몸을 지탱해주어야 하는데 그 동작 자체가 불가능해진 거죠. 낫을 휘둘러서 먹이를 잡더라도 위 사진처럼 거꾸로 매달려서 하거나, 아니면 사냥감을 잡는 순간 앞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실제 다리 손상된 사마귀들은 앞으로 넘어진 채로 밥을 먹어요.)

제가 먹이를 낫에 쥐어주면 그만인 것이긴 한데, 그걸로는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제가 꽤 긍정적인 사람인데도 이때는 충격이 떨쳐지질 않아서 밥도 잘 못 먹겠더군요. 저 때문에 쥐미가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에 며칠 사이 살이 쏙쏙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어떻게든 긍정적인 부분을 찾으려 애를 써봤습니다. 다행히 몇 개가 떠올랐어요.

1. 탈피 부전치고는 상태가 사실 그리 심각한 건 아니다.
구글 이미지에서 탈피 부전, 우화 실패, mantis mismolt, bad molt 등을 검색해보면 탈피에 실패해서 처참한 상태가 된 사마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또 엄청 흔한 일은 아니니까 사육자분들 너무 겁먹진 마시길.)


2. 다행히 거꾸로 매달리는데 사용하는 네 발이 제대로 기능을 한다.
사마귀의 탈피에는 망을 붙잡고 있어야 할 네 발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다리가 아파도 위 사진들처럼 매달릴 수 있다는 건 정말 천만다행인 일입니다. 발톱으로 망을 움켜쥐는 힘이 예전 같을지는 의문이지만요. 

3. 아직 한 번의 탈피가 더 남았다. 그때 멀쩡한 다리가 나올 수도 있다.
심지어 낫이 바깥쪽으로 휘어서 쓸 수 없게 된 사마귀도 다음 탈피 때 멀쩡해지는 사례를 보았습니다. 쥐미도 그렇게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죠. 절지동물의 재생력은 생각보다 대단합니다.

그런데 또 암울한 가능성도 있더군요. 어떤 사람 말로는 다리가 꺾인 부분이 탈피 때 껍질에서 잘 못 빠져나오면서 그 부분이 끊어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하...) 탈피한다고 다 좋아지는 게 아니라 불편한 몸으로 탈피를 하다보니 더 나빠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보면 미국, 유럽, 일본 사람들이 사마귀를 많이 키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열심히 정보를 뒤지면서 예전부터 자연스레 탈피 부전이 일어난 사마귀들을 많이 봐왔어요. 탈피 부전이 심한 경우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더군요. 냉동실에 넣어서 안락사를 시키거나, 또는 밥을 떠먹이면서 끝까지 키우거나. (또 한 가지 더 있는데 이건 다음 기회에)

쥐미가 다음 탈피 때 더 나빠진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저도 생각해 봐야할 문제였습니다. 저는 솔직히 상태가 심한 경우 안락사가 맞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고 웃어가면서 몸도 못 움직이는 사마귀에게 밥을 먹이는 해외 사육자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나중엔 "쥐미가 혹시 지금보다 더 나빠져도 나도 저렇게 키우면 되지뭐!"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쳤어도, 심지어 다리 몇 개를 잃게 되더라도 쥐미는 여전히 쥐미이고, 죽을 필요도, 숨을 필요도 없는 거더라구요.

사람이라면 장애가 많이 심할 경우 안 좋은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곤충은 살려는 본능밖에는 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안락사는 아닌 것 같다는 결론으로 좀 더 기울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안락사 시키는 사육자가 잘못되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정답은 없어요. 각자의 선택인 거죠.)



12월 21일

제가 밥을 먹는 건 생각도 못하던 시기였네요.

밥을 먹인 쥐미를 일광욕 시켜주기 위해 꺼냈습니다. 태평스럽게 낫 청소부터 하고 있습니다. 몸이 좀 더 굳으면서 전날 보다는 조금 나아진 듯도 한데 걸음걸이는 확실히 불편해 보였습니다.


다친 곳이 처음에는 왼쪽 중간 다리 하나인줄 알았는데 이날 보니까 양쪽 다 다쳤더군요. 거기다 왼쪽 뒷다리까지 밖으로 약간 휘었습니다.

쥐미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저희 엄마 曰 "그건 곤충 학자도 몰라. 우리가 직접 곤충이 되어 보기 전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야."


조심스레 자를 옆에 갖다 대 보았습니다.
탈피 전엔 4.5cm가 안 되었는데 이제 5.5cm 정도 되네요.


사마귀는 보통 탈피할 때마다 몸길이가 1cm 정도 늘어나다가 마지막 탈피 때는 3cm 정도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쥐미 같은 왕사마귀들은 성충이 되면 몸길이가 7-9.5cm 정도가 됩니다. 좀 더 클 수도 있는데 크면 클수록 사마귀 사육자들 사이에서 부러운 눈길을 받아요.

전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최대한 커진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냥... 크면 멋질 테니까요. 커다란 귀뚜라미도 가볍게 사냥할 테구요.

아래는 일광욕 후 집에 들어가서 발 그루밍을 하는 모습입니다. 다쳐서 이제 발 그루밍 못하나 했는데 다행히 하길래 너무 기뻤는데... 역시 예전처럼 오래 하지는 못했습니다.


12월 22일

또 발 그루밍을 하고 있네요. 그런데 이번엔 아픈 중간 다리를 하고 있어요. 감격했지만 이 또한 그리 오래하진 못했습니다.


12월 23일

관절 바로 밑에 꺾인 부분이 그대로 굳은 모습입니다. 사진에선 잘 안 보여도 실제로 보면 홈이 쏙 들어가 있어서 저게 과연 다음 탈피 때 제대로 빠져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밥은 다시 잘 먹기 시작했어요. 쥐미 말고 저 말이에요.)


응가 퐁.

그나마 잘 먹고 잘 싸주니 정말 다행입니다. 위에서 보니 왼쪽 뒷다리가 약간 휜 것이 더 확실히 보입니다. 미묘한 변화인데도 걷을 때 뭔가 불편해 보였습니다.


아래는 제가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이날 따라 절 자꾸 신기하게 쳐다보더라구요. 아기였을 땐 제가 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는데 커갈수록 저의 정체가 더 잘 보이는 것 같았어요.


약간 긴장한 모습이지만 항상 그렇듯 도망을 가진 않았습니다. 절 뭘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적이 아니라는 건 알거든요. 저에 대해 알아내려는 듯 더듬이를 제 쪽으로 열심히 흔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과연 어떤 정보를 얻는지 무척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요기까지 할게요.

긴 글 읽어주신 분들, 그냥 쭉 내리신 분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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