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타란툴라 사육자와 애호가를 위한 것입니다. 벌레 사진이 많으니 주의해 주세요.
이번엔 저의 타란툴라 유체 셋 중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렌지의 이야기입니다.
렌지 지난 이야기
탈피를 한 뒤 1월 17일에 집갈이 한 것까지 얘기했어요.
2020년 1월 18일
렌지는 워낙 열심히 숨는 아이여서 피딩을 하기가 힘든 편이에요. 그래서 자기 전에 접시 위에 음식을 놓고 다음 날에 확인하는 식으로 피딩을 해봤습니다. (접시는 파스쿠찌 커피 컵 뚜껑을 잘라서 만든 거)
이런 식으로 먹이를 줄 때는 먹이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여야 합니다. 그래야 먹었는지의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거든요. 어딘가로 도망가서 숨은 채로 죽어서 썩는 일도 없을 테고요.
이렇게 먹이를 두면 먹을 때도 있고 안 먹을 때도 있어요. 이날은 처음에 봤을 땐 접시가 비어 있어서 너무 기뻤는데 자세히 보니 오른쪽에 밀웜이 그대로 있었어요. 뭔가 신경질적으로 팍 쳐낸 느낌이네요.
집갈이를 한지 하루밖에 안 되어서 너무 긴장해서 못 먹었거나, 탈피 후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못 먹은 걸 수도 있습니다.
1월 23일
리니가 하는 것처럼 입구에 문을 만들어야 하는데 렌지는 너무 쫄아 버렸는지 은신처 뒤에 가서 꼭꼭 숨어 버렸어요.
뒤쪽은 많이 좁은데 하필 저기다 집을 만들고 있네요.
조그만 게 뭔가 열심히 만들고 있긴 한데 은신처 안쪽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요.
참고로 렌지 집 왼쪽에 있는 건 카엥이 집이고, 건너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건 리니 집이에요.
1월 31일
드디어 은신처 앞쪽에 뭔가 지어지기 시작했어요. 1월 17일부터 쭉 은신처 뒤에 끼여 있다가 드디어 용기를 내서 앞쪽으로 왔네요. 역시 셋 중 가장 쫄보인 렌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으스스한 할로윈 분위기가 나기 시작했어요.
2월 1일
문 공사를 시작한지 불과 하루 만에 완벽한 문이 만들어졌습니다. 드디어 집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하는 모습에 뿌듯했어요.
디자인은 뭔가 다급하게 흙을 때려붙인 듯 투박한 느낌입니다. 리니가 만든 문처럼 그리 섬세하진 않네요. 리니는 며칠에 걸쳐 천천히 만들던데 얘는 하루만에 이렇게 해버리는군요.
2월 4일
오른쪽에 입구도 시원하게 뚫어 놨어요. 뒤쪽까지 은은하게 연결된 거미줄이 멋집니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꽤 예쁜 집이 만들어졌네요.
갓 탈피한 귀뚜라미가 있어서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입구에 두고 피딩을 시도해 보았어요. (가슴팍 부위)
작대기로 거미줄을 살살살~
이 작대기는 양꼬치를 먹은 뒤 버리지 않고 둔 건데 제가 사용하는 도구 중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이고 있답니다. 절지동물을 키운다면 꼬치 막대를 절대로 버리지 마세요. 거미줄을 흔드는 용도뿐 아니라 정말 여러 곳에 쓰인답니다. 지네를 다른 곳으로 살짝 이동시킬 때도 쓰이고, 타란툴라 집갈이 할 때도 계속해서 쓰여요. (거미줄을 해체하거나 타란툴라를 찾기 위해 흙이나 거미줄을 뒤적거릴 때)
길이는 이쑤시개의 한 3-4배는 되어야 쓸만해요. 지네는 가끔 작대기를 타고 휘리릭 올라오기도 하는데 그럴 땐 작대기의 방향을 차분히 반대로 돌려주면 다시 사육통으로 스르륵 내려갑니다.
피딩 장면을 영상으로 올리고 싶은데 티스토리는 영상을 카카오TV로 올릴 수 있게 되어 있어서 gif로 만들었어요. 카카오TV는 광고가 너무 떠서 웬만하면 안 쓰게 되네요. 영상은 나중에 시간되는 대로 유튜브에 올리겠습니다.
2월 11일
밀웜을 잘라서 위와 같은 방법으로 피딩을 시도해 봤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밥을 거부했어요.
거미줄을 여러 번 흔들어도 나오지 않으면 적당히 물러나는게 좋아요. 끝까지 고집스럽게 흔들면 타란툴라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거든요. 몇 달 키워 보면 어느 정도 거미줄을 흔들다가 포기해야 하는지 느낌이 와요. 5일 정도 한 번 피딩이라면 보통은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 없이 팍 튀어 나와서 저렇게 밥을 가져가요. (제 타란툴라 유체 셋 모두)
밥을 너무나 오래 안 먹어서 배가 고플 것이 분명한 애가 바로 튀어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잘라서 못 움직이는 먹이를 수분을 살짝 닦아낸 뒤 거미줄에 붙여 두세요. 그러면 정말 배고픈 애들은 밤 사이에 나와서 먹을 것입니다. 안 먹는다면 탈피기일 가능성이 크니까 그 뒤부터는 절대 안정 시켜주세요.
3월 18일
렌지가 위에서 밀웜을 거부했던 것은 또 탈피기에 접어든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밥을 안 먹어서 애를 태웠는데 이날 드디어 먹었답니다. (그 사이 이사를 해서 이 사진부터는 인천이에요.)
번개처럼 빨라서 실제로 눈으로 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아요. gif는 실제 속도보다 조금 느리게 만든 것입니다.
그나저나 위 사진을 보면 렌지의 집 디자인이 조금 달라진 걸 알 수 있어요. 뭔가 문과 이어지는 캐노피canopy 같은 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먹이를 받아먹는 구멍이 뚫려 있구요.
3월 23일
아래 사진을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어요.
사육통 벽 때문에 좀 흐리게 보이지만 렌지가 만든 캐노피와 바닥 사이에 공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디자인이었어요. 언제나 어설퍼 보이는 렌지지만 어쩌면 천재일지도 모르겠어요.
가끔 저 사이에 돌아다니는 렌지가 보일 때도 있는데 제가 다가오는 걸 느끼면 그 즉시 후다닥 안쪽으로 들어가버려요.
3월 31일
마침 적당한 크기의 갓 탈피한 밀웜이 있어서 먹이 구멍 위에 두고 피딩을 시도해 봤습니다.
역시나 무서운 속도로 가져갑니다. 튀어나오는 손을 보니 오렌지 바분이라는 종명답게 슬슬 오렌지빛이 강해져 가는 모습입니다.
먹이 구멍은 먹이를 가져간 뒤엔 이렇게 뻥 뚫려 있는데 다음 날 보면 거미줄로 살짝 막혀 있어요. 사람도 지붕에 구멍이 있으면 신경이 쓰이는 것처럼 타란툴라도 이런 게 신경이 쓰이나 봅니다.
이번 사육 일기에서는 렌지가 꽁꽁 숨어 있었는데 다음 이야기에서는 렌지의 모습을 오랜만에 상세히 공개하겠습니다. 지난 회에 나온 모습과는 꽤 많이 달라진 모습이랍니다.
이야기는 요기까지 할게요. 그럼 전 이만. 😉
댓글